"글짓기가 아니라 말 짓기라는 데 더욱 선명한 인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글이 아니라 말이다. 우리가 표현하려는 것은 마음이요 생각이요 감정이다. 마음과 생각과 감정에 가까운 것은 글보다 말이다." -문장강화(이태준)
이 책 평설의 주인공인 이태준(李泰俊)은 1904년 강원도 철원군 묘장면 산명리에서 태어났다. 호는 상허(尙虛) 또는 상허당주인(尙虛堂主人)이다. 단편소설의 서정성을 높여 예술적 완성도와 깊이를 세워 나갔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대표적 단편소설 작가로 평가받을 수 있었다.
1909년 개화파 지식인인 부친 이문교(李文敎)의 망명을 따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했다가 그해 8월 부친의 사망으로 귀국하였다. 1912년 모친마저 별세하자 철원의 친척집에서 성장하였다.
1920년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당시 그 학교의 교원이었던 이병기(李秉岐)의 지도를 받아 고전문학의 교양을 쌓았다. 그런데 학교의 불합리한 운영에 불만을 품고 동맹휴학을 주도한 결과 1924년 퇴교를 당하였다. 1926년 일본 도쿄에 있는 조오치대학[上智大學] 문과에서 수학하다 중퇴하고 귀국하였다. 1925년 문예지 『조선문단』에 단편 소설 「오몽녀」가 입선되며 『시대일보(時代日報)』에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29년에 개벽사(開闢社) 기자로 일하였고, 이화여자전문학교 강사, 조선중앙일보 학예부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1933년 친목단체인 구인회(九人會)를 이효석(李孝石)·김기림(金起林)·정지용(鄭芝溶)·유치진(柳致眞) 등과 결성하였다. 이어 순수문예지 『문장(文章)』(1939.2∼1941.4.)을 주재하여 문제작품을 발표하는 한편, 역량 있는 신인들을 발굴하여 문단에 크게 기여하였다.
1934년 첫 단편집 『달밤』 출간을 시작으로 『가마귀』, 『사상의 월야』, 장편소설 『해방전후』 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1930년대 전후에 아동잡지 [어린이]에 발표한 많은 동화들은 여전히 많은 어린이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주고 있다. 해방 후에는 문학가동맹, 남조선민전등 조직에 참여하다가 1946년 월북하였다. 월북 후 ‘구인회’ 활동 과거와 사상성을 이유로 임화, 김남천과 함께 가혹한 비판을 받고 숙청되어 함흥노동신문사 교정원, 콘크리트 블록 공장의 파고철 수집 노동자로 전락하였다. 정확한 사망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960년대 초 산간 협동농장에서 병사하였다는 설이 있다.
그의 작품 성향은 일제강점기 민족의 과거와 현실적 고통을 비교하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작품을 썼으며, 그의 간결하면서도 호소력 있는 묘사적 문장은 독자의 호응을 크게 받았다. 그가 취택한 인물들은 가난하고, 무력하지만 우리의 전통적 삶의식을 잘 드러내며 인간미가 풍기는 것이 특징으로 되어 있다. 또 민족의식의 주제는 상당히 많은 편수에 이르고, 장편 「사상(思想)의 월야(月夜)」(1946)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다른 한편, 소외된 인물들의 현실적 고난과 그 인물의 내면세계의 순수무구함을 드러내어 인간애의 의식을 촉구하는 주옥 같은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특히, 광복 이전의 그의 작품은 대체로 시대적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경향을 띠기보다는 구인회의 성격에 맞는 현실에 초연한 예술지상적 색채를 농후하게 나타내었다. 인간 세정의 섬세한 묘사나 동정적 시선으로 대상과 사건을 바라보는 자세 때문에 단편소설의 서정성을 높여 예술적 완성도와 깊이를 세워 나갔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대표적 단편소설 작가로 평가받을 수 있었다. 광복 이후에 그는 조선문학가동맹의 핵심 성원으로 활동하면서 작품에도 사회주의적 색채를 담으려고 노력하였다. 월북한 후에 종군기자로 전선에 참여하면서 쓴 「고향길」(1950)이나 「첫 전투」(1949) 등은 생경한 이데올로기를 여과없이 드러냄으로써 일제하의 작품에 비해 예술적 완성도가 훨씬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 그가 월북한 것도 자의적인 것이 아닌 강제된 것이라는 후문을 남기고 있고, 결국 한국전쟁 이후 숙청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은 그가 철저한 사회주의적 작가가 아니었으며 그의 열정은 오히려 순수성으로 해서 오해를 받는 인간적 서정성에 기초하였음을 잘 보여준다 하겠다.
저서로 단편소설집 『달밤』 『가마귀』 『복덕방』 『해방 전후』 『구원久遠의 여상女像』 『딸 삼형제』 『사상思想』, 등이 있다. 수필집 『무서록(無序錄)』(1944)과 문장론 『문장강화(文章講話)』(1946) 등도 그의 탁월한 문학적 저서로서 크게 공헌한 책이다.
학력사항
철원 봉명학교
1921년 ~ 휘문고등보통학교(중퇴)
1927년 ~ 일본 도쿄 조치대학교 - 예과(중퇴)
경력사항
1933년 ~ 구인회 동인 활동
1945년 ~ 문화건설중앙협의회 조직 활동
1946년 ~ 조선문학가동맹 부위원장
한국전쟁 당시 종군기자
수상내역
1925년 작품명 "오몽녀" - 조선문단에 「오몽녀」가 입선
1941년 제2회 조선예술상
작품명 "해방전후" - 제1회 해방기념 조선문학상
작품목록
오몽녀
도향(稻香) 생각 몇 가지
모던껄의 만찬
행복
그림자
온실화초
누이
엇던 날의 베토벤
기생 산월이
오십전 은화
연작소설개평
동심예찬
문제막연
어떤 날 새벽
고완
도변야화
시인 명상 예언
구원의 여상
고향
학생연작소설개평
결혼의 악마성
불도 나지 안엇소
아무일도 없소
참새 생각
독서소론
봄
불우선생
천사의 분노
실낙원이야기
서글픈 이야기
마부와 교수
슬픈 승리자
어떤 젊은 어미
코가 복숭아처럼 붉은 여자
꽃나무는 심어 놓고
법은 그렇지만
제이의 운명
예술의 동서
투르게넵흐와 나
아담의 후예
달밤
평가에 좀 더 겸손하여라
‘무지한 평자’라는 것
작품과 생활이 경주중
어머니
박물 장사 늙은이
빙점하의 우울
촌띄기
박화성 저 ‘백화’
불멸의 함성
글 짓는 법 A. B. C
점경
어둠
달밤
애욕의 금렵구
성모
소설과 문학
구인회에 대한 난해 기타
색시
손거부
순정
내가 본 톨스토이
가마귀
삼월
장마
철로
신춘창작계 개관
산사람들
황진이
바다
한글문학만이 조선문학
아담의 후예
복덕방
코스모스 피는 정원
누구를 위해 쓸 것인가
‘휴머니즘’ 운운은 평론을 위한 평론
평론 태도에 대하여
사막의 화원
화관
생활양식과 입체적 구성
‘인격존중’ 비판을 대망-[특집] 작가와 비평가의 변
노산수필집 ‘노방초’를 읽고
가마귀
구원의 여상
패강랭
작품애
참다운 예술가 노릇, 이제부터 시작할 결심이다
김상용의 인간과 예술
일인칭소설과 초연의식
탄식하는 동방정신
이광수씨의 전작 ‘사랑’을 추천함
춘원의 전작 ‘사랑’ 독후감
화관
딸 삼형제
영초영감
문장강화
단편과 장편, 환경에 적응하는 형태로서
모방
아련
농군
소설선후
소설선후
딸 삼형제
이태준 단편선
황진이
고완품과 생활
소설의 어려움
작가 지망인을 위하여
청춘무성
문장의 고전ㆍ현대ㆍ언문일치
신작가 최태응군
밤길
통속성 기타
통속성 ‘춘향전’의 맛
기생과 시문
청춘무성
허민군의 ‘어산금’을 추천함
토끼 이야기
사상의 월야
소설평
문학구성의 특질
이태준 단편집
별은 창마다
행복에의 흰손들
우리 문단의 길조-신춘문예선후감(소설)
사냥
석양
무연
두 연재물에 대하여-연재장편과 작가
왕자호동
석교
돌다리
왕자호동
즐거운 기록
아동문학에 있어서 성인문학가의 임무
예술과 생활
별은 창마다
시대성과 예술성
전망이라기보다 주장
너
국어재건과 문학자의 사명
문학과 정치
문화인의 정치항전
불사조
정열과 지성
국어에 대하여
해방 전후
복덕방
사상의 월야
세 동무
문학가동맹 여러분에게
붉은 광장에서-소련기행
해방 전후
농토
구원의 여상
제2의 운명
신혼일기
고향길
복덕방
이태준 전집
이태준 전집
제2의 운명
화관
황진이
해방 전후
[네이버 지식백과] 이태준 [李泰俊]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권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