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이 청소년문학’ 시리즈, 개정판 열 권을 매듭짓다
-자기 앞의 생과 마주한 청춘들을 위한 찬가
청소년문학의 오랜 얼굴이자 독보적 존재인 이금이 작가의 청소년소설 『얼음이 빛나는 순간』이 출간되었다. 깨지고 아파하고 흔들리면서도 자기 앞의 생과 마주한 청춘들을 위한 찬가로, 2013년에 출간된 소설의 개정판이다. 이로써 지난 2년 동안 진행한 청소년소설의 개정 작업이 마무리되었다.
열 권으로 완간된 ‘이금이 청소년문학’은 청소년들의 ‘지금과 여기’를 살피고, 꿈과 미래를 힘껏 응원하는 이금이 작가의 청소년문학 시리즈이다. 『유진과 유진』을 시작으로, ‘너도 하늘말나리야’ 3부작 등 어린이·청소년·어른 모두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작품들을 새로이 다듬고 갈무리하여 펴냈다. 이 개정 및 시리즈화는 단순히 책의 옷을 갈아입히는 데 그치지 않고,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인권·다양성·젠더 감수성 등을 살피고 공들여 손보는 일이기에 더욱 뜻깊은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시리즈 마지막 책인 『얼음이 빛나는 순간』은 청소년과 성인을 아우르는 소설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삶의 풍경을 깊이 있게 들여다본 작품이다. 지오와 석주 그리고 은설, 이 세 인물 앞에 펼쳐진 인생길에서 ‘빛나는 순간들’을 발견하길 바란다.
⚫ 우연으로 시작해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빛나는 순간들’
『얼음이 빛나는 순간』은 같은 기숙 고등학교에 온 두 소년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삶의 모든 순간들은 우연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그 우연들을 연결하는 것은 선택이며, 이 선택들이 모여 인생이 된다. 이 책의 주인공 석주와 지오도 우연히 떠난 자전거 여행 이후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되고, 전혀 다른 삶의 방향으로 각자 나아간다.
청소년과 어른의 경계에서 흔들리는 지오와 석주의 5년 동안의 여정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세계도 폭넓게 해 줄 것이다. 청소년의 삶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삶까지 다룸으로써 책에서 말하고 있는 “그동안 살아온 세상의 경계를 넘는 일”을 좀 더 확장된 시간과 공간으로 체험할 수 있다.
또한 지오의 이야기는 현재에서 과거로, 석주의 이야기는 과거에서 현재로 진행되다가 둘이 만나자 비로소 현재의 시점으로 모아진다. 이같이 서로 다른 시간의 흐름으로 번갈아가며 진행되는 이야기는 탄탄한 구성과 섬세한 심리묘사로 작품에 깊이를 더해 준다. 뿐만 아니라 밋밋한 구조를 벗어나 입체적인 플롯을 꾀해, 납작하지 않은 공감과 감동 또한 선사한다.
깨지고 흔들리면서 얼음의 때를 건너고 있는 청춘들은, 햇빛이 비추는 어느 시간 속으로 자신을 데려다 놓는 때가 곧 올 것이다. 그때 석주와 지오 그리고 은설처럼 ‘얼음이 빛나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 자기 발로 페달을 밟고 달려온 거리와 시간
이 작품의 서사 곳곳엔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해 주는 은유와 상징의 장치들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게다가 이야기를 끌고 가는 큰 서사와 이 서사를 뒷받침해 주는 작은 서사의 연결 또한 유기적이어서 축소된 이야기로써의 기능 또한 충실히 해 주고 있다.
지오와 석주가 우연히 떠난 자전거 여행에서 둘은 큰길보다는 그 길에서 갈라져 나간 작은 길로 달린다. 그리고 처음으로 부모의 날개 아래에서 벗어난 석주는 “자신의 발로 페달을 밟아 달려온 거리와 시간에 대해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낀다. 이처럼 ‘큰길’이 아닌 ‘작은 길’이나 스스로 페달을 밟은 시간과 거리에 대한 묘사 등은 앞으로 석주의 삶을 암시할 뿐만 아니라 인물의 심리묘사, 서사의 근거에도 영향을 준다. 게다가 자전거는 누군가 대신 운전해 주거나 혹은 끌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구르는 힘으로만 갈 수 있는 탈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석주와 지오의 ‘자전거 여행’은 서사로써의 의미뿐만 아니라, ‘자전거’라는 속성으로써의 의미도 함께 부여돼 이야기가 더욱 풍성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지오가 석주를 만나러 가기 위해 탄 기차에서 지오는, 자신의 삶에서처럼 제자리에 앉지 못하고 계속해서 다른 자리로 옮겨 다닌다. 이 역시 축소된 작은 이야기가 지오의 현재 삶을 더욱 잘 드러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어린아이인 서은이를 나무에 빗댄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나무에게 필요한 ‘이때’를 놓쳐 버리면 사과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것처럼, 어린 서은이도 그때그때 필요한 것을 해줘야 잘 자랄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래야 자기 몸에 맞는 열매를 맺을 수 있을 테니까. 이건 비단 서은이 이야기만은 아니다. 석주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처럼 자기 발로 페달을 밟기 위해 분투한 시간과 거리에 대한 묘사를 서사 곳곳에 배치한 이 작품은, 문학이 갖는 의미가 결코 단순하지 않음을 아주 잘 보여 주고 있다.
줄거리
-스물셋의 지오가 열여덟의 지오를 복기하는 기차 여행
어느 날, 지오는 고등학교 동창인 석주에게 메일을 받는다. 5년 동안 아무런 연락도 없다가 갑자기 보낸 메일 내용은 어이없었다. 추풍령역에서 기다리겠다는 일방적인 말만 남기고 연락처도 남기지 않은 것이다. 지오는 고민 끝에 석주가 자신을 왜 부르는지 궁금함에 이끌려 기차에 몸을 싣는다. 그리고 기차 안에서 자신의 과거를 하나씩 복기하는 시간을 갖는다. 적응에 실패한 캐나다 조기유학 시절, 아빠의 강압적인 명령과 지시, 친구들의 폭력에 쉽게 굴복해버린 무력감…….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도 변한 것 없이 도망만 다니는 자신의 지리멸렬함을 직면한다.
-열일곱의 석주가 스물들의 석주가 되기 위한 선택의 순간들
석주는 영동에 있는 기숙 고등학교에 온 이상, 절대로 1등을 놓칠 수 없었다. 졸업할 땐 원하는 의대에 합격해서 엄마 아빠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우연히 떠난 지오와의 자전거 여행으로 석주의 삶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른다. 길을 잃고 헤매다 만난 아저씨와 은월농장, 그리고 은설. 은설이 자꾸 석주의 삶과 생각에 균열을 냈다. 지금까지 믿어 의심치 않았던 성공을 위한 자신의 생각과 신념이, 은설을 만나고부터는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석주는 두 갈래길 앞에 서서 어느 쪽으로 갈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