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러 그런 게 아닌데 아빠는 왜 내 마음을 몰라줄까요?”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는 앞뒤로 화사하게 펼쳐진 노란색 면지에서부터 눈길을 끕니다. 면지에는 작가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그림이 들어가 있어요. 아이들의 그림과 글씨에는 가족 중에서도 ‘아빠’에 대한 애정이 가득 담겨 있어요. 이를 통해 아이들이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빠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지요.
아이들의 그림과 글씨에서도 잘 알 수 있듯이 현재 많은 아빠들은 아이들과 충분히 놀아 주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고 바쁩니다. 작가는 아이들과 미술 수업을 하면서 이러한 아이들의 고민과 바람을 포착했어요. 그래서 모든 아이들을 응원하는 따스한 마음을 담아 이 그림책을 완성했어요.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에서 아이는 집에 온 아빠와 함께 놀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아빠는 지금은 안 된다고, 나중에 같이 놀자고 말하지요. 아빠는 여전히 집에 와서도 바쁩니다. 피곤해서 온종일 쉬기도 하고, 집에 와서도 일에 몰두하기도 하지요. 그런 와중에도 아빠가 잊지 않고 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아빠의 아빠의 아빠의 의자를 닦는 거였어요.
이 작품에서 ‘의자’가 나타내는 의미는 중요합니다. 이야기 속에 정확하게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아빠의 의자는 아빠에게 의자 이상의 가치가 있는 물건이에요. 할아버지나 아버지와의 소중한 추억이 담겨 있어서 아빠에게는 그들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는 물건일 수도 있어요. 그래서 아빠는 아무리 피곤하고 바빠도 아빠의 의자만큼은 소중하게 닦지요.
하지만 아이에게 아빠의 의자는 집에 있는 여러 의자 중 하나에 불과해요. 그래서 아이는 아빠의 의자를 가져다 기차놀이를 하기도 하고, 아빠가 괜히 미워서 아빠의 의자에 낙서를 하기도 하며, 장난감 자동차를 타고 놀다가 아빠의 의자를 들이받기도 해요. 이런 아이의 행동과 실수에 아빠는 화를 내지요.
아빠를 사랑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담은 그림책
아빠는 아이가 실수하거나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생각 의자’에 가서 앉으라고 말합니다. 아이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은 중요하겠지요. 하지만 아이는 계속 아빠에게 서운하기만 합니다. 왜 아빠의 의자에 낙서를 하고 싶었는지 아빠는 물어 보지 않거든요.
그래서 아이는 장난감 자동차로 아빠의 의자를 들이받았을 때 또 생각 의자로 가라는 아빠의 말을 듣지 않고 종이 집 안으로 숨습니다. 이런 아이의 모습을 본 아빠도 마음이 편치는 않았겠지요? 결국 아빠는 종이 집 안에서 자신이 선물한 곰 인형의 품에서 자고 있는 아이를 발견합니다.
아이에게 생각 의자에 앉아 자신의 잘못을 생각해 보라던 아빠는 자신의 의자를 들고 자신의 잘못을 생각해 보기 위해 밖으로 나갑니다. 오랜 시간 고민한 아빠의 생각은 바로 다음 날 빛을 발해요. 평소 무뚝뚝하고 말이 많지 않았던 아빠가 아이에게 진심으로 ‘미안해’, ‘사랑해’라는 말을 먼저 건네거든요. 이러한 아빠의 진심은 금세 아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입니다. 그 결과 아빠의 마음도, 아이의 마음도 말랑말랑해지지요.
작가의 그림 스타일도 따스하면서도 독특합니다. 아이만 온통 노란색으로 칠하고 배경은 마치 스케치처럼 단순하게 표현하는가 하면, 아이와 아빠가 한 장면에 있는 그림에서도 아이의 테두리선과 색을 칠한 재료와 아빠의 테두리선과 색을 칠한 재료를 다르게 사용했어요. 또한 천이나 종이 등을 오려 붙인 콜라주 기법을 사용하기도 하고, 여백을 잘 활용해 작가가 강조한 선이나 색이 잘 두드러지게 표현하기도 했어요.
이제 벽에 걸린 사진 속에서 아빠도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항상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던 아빠의 의자와 아이의 생각 의자도 다정하게 나란히 놓이게 되었고요. 이렇듯 이 그림책은 모든 아이들이 가족의 따스한 품에서 밝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잘 담긴 작품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