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강의 활과 반야의 화살로 사상의 과녁을 깨뜨려라
경(經)을 마주함에 있어서는 공경심을 나타내어야 하고, 본지(本旨)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본지는 ‘근본 취지’를 말하므로 이를 달리 말하면 종지(宗旨) 또는 경의(經義)라고 한다. 따라서 어떤 경을 보더라도 본지를 제대로 알아차려야 함이 우선이고, 본지를 알아차렸으면 이를 놓치지 말고 경(經)의 말씀을 보아야 한다. 경의 본지는 이렇듯 아주 중요하다.
경(經)의 본지를 놓치지 않으려면 경(經)을 살피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이를 금강경 제18 일체동관분(一切同觀分)에서는 육안(肉眼)ㆍ천안(天眼)ㆍ혜안(慧眼)ㆍ법안(法眼)ㆍ불안(佛眼)이라고 하여, 오안(五眼)을 말씀하셨다. 금강경뿐만 아니라 방광반야경(放光般若經) 등에도 같은 맥락으로 말씀하셨다.
경(經)을 보는 이가 빠지기 쉬운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함정이 있다. 이는 다름 아닌 ‘틀에 박힌 사고’다. ‘금강경’ 하면 먼저 숱한 중국 선사들의 언설(言說)에 빠져들어 갇혀버리는데 이것은 아주 큰 문제다. 중국 선사들의 견해는 그들의 견해이지 옳은 답은 아니다. 그리고 그 시대의 사상에 들어맞는 표현이지, 수백 년이 지난 지금과는 생뚱맞을 정도로 거리가 멀다. 경(經)의 답은 경(經)에 있는 법이다. 덧붙여 말하면 여기 이 ‘금강경’은 숱한 선사들의 견해는 거의 다 빼버리고, 경(經)의 부처님 말씀을 전거(典據)로 하여 전개하였다.
-지홍 법상
● 반야의 묘지를 전하는 금강경
須菩提 在在處處 若有此經 一切世間 天人阿修羅 所應供養
수보리 재재처처 약유차경 일체세간 천인아수라 소응공양
當知此處 則爲是塔 皆應恭敬 作禮圍繞 以諸華香 而散其處
당지차처 즉위시탑 개응공경 작례위요 이제화향 이산기처
수보리야, 어떤 곳이든 만약 이 경전만 있으면 모든 세간의 천신들과
사람들과 아수라들에게 응당 공양받을 것이다. 마땅히 알라. 이곳은
곧 부처님의 탑을 모신 곳이 된다. 모두 반드시 공경하고 예배를 드
리며, 주위를 돌면서 여러 가지 꽃과 향을 그곳에 뿌리느니라
-제15 지경공덕분(持經功德分) 가운데서
금강경에서는 금강반야(金剛般若)가 이루어지면 바라밀다(波羅蜜多)가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이렇듯 경(經)의 제목부터 빈틈없는 체계로 붙여져 있음이다. 바라밀다(波羅蜜多)의 줄인 말이 바라밀(波羅密)이며, 이를 한역하여 극락(極樂)이라 하고, 극락을 다시 의역하면 심락(心樂)이다.
금강경은 우리에게 ‘대자유’를 안내하고 있으며, 삶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금강경은 딱딱하고 차디찬 경전이 아니라 따사로움의 경전이며, 정겨운 경전이며, 다정한 경전을 넘어 부처님께서 중생을 극진하게 생각하는 애틋한 경전이다.
-지홍 법상
● 금강경을 시작하면서
금강경은 불자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경전 가운데 하나다. 이를 산스크리트어로 나타내면 ‘바즈라체디카 프라즈냐파라미타 수트라(Vajracchedikā Prajñāpāramitā Sūtra)’이다.그러므로 금강경에 대한 해설서와 논서가 어떤 경전보다 많다. 그 가운데 하나가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이다. 오가해(五家解)는 양(梁)나라, 당(唐)나라, 송(宋)나라 때 수행하였던 다섯 선사의 견해를 조선 초기에 함허득통(涵虛得通 1376~1433) 선사가 자신의 설의(說誼)와 결의(決疑)를 덧붙여 엮은 것이다. 중국 불교는 도교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아 그 문장이나 어투가 대부분 도교적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도교의 도덕경(道德經), 남화경(南華經)을 먼저 읽어야 중국 선사들의 선문답 구조를 어느 정도 알아차릴 수 있다. 오가해도 이를 비껴가지 못하였던 것은 그 시대의 사상이 그러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선사들은 늘 후학에게 말하기를 천하의 앵무새가 되지 말라고 경책한다. 이는 사고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의 체(體)를 갖춰야지 알음알이로 남의 흉내만 낸다면 천하의 바보가 된다는 일침이다.
따라서 금강경을 강해하면서 선사들의 말씀은 될 수 있는 대로 빼버리고, 한 구절일지라도 경전의 말씀과 논소(論疏)를 인용하여 소개하였다. 더러 한 구절만 인용하여도 될 것인데 여러 경전의 말씀을 인용한 것은 그물을 넓게 펼쳐서 대어(大魚)를 잡기 위함이다.부디 조촐한 강해이지만 연(緣)으로 인(因)하여 단 한 구절이라도 수행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음이다. 나 스스로 부족한 지를 알기에 어떤 책려(策勵)와 경책(警責)도 달게 받아들일 것이다.
나무석가모니불.
- 지홍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