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남들과 다르더라도, 조금 더디게 가더라도
저마다 ‘인생의 지도’를 완성해나갈 수 있기를
아침에 눈뜨는 것이 두렵고 후회와 불안으로 쉽사리 잠들지 못할 때, 주변 사람들과 자꾸 비교하게 되면서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 다른 사람들은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버겁다고 여겨질 때, 현실의 벽에 부딪쳐 하고 싶었던 일을 시도조차 하지 못할 때, 집과 회사만을 오가는 단조로운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어떤 사람은 음악을 듣거나 공연을 보면서 위로를 받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친구들을 만나 고민을 털어놓으며 마음을 달랠 것이다.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고민을 안고 있는 저자 성지연은 인생의 고비를 맞닥뜨릴 때마다 마음의 방에 자신을 가둔 채 우울해하면서 주변 사람을, 상황을, 세상을 탓하기보다 수많은 책을 읽으며 책 속의 또 다른 어른들이 들려주는 말들을 통해 스스로를 다잡았다. 저자보다 앞서 인생을 살다 간 어른들부터 저자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어른들의 말들은 그에게 가닿아 삶을 사유하는 힘이 되었을 뿐 아니라 무채색에 가까웠던 저자의 일상을 무지갯빛으로 바꾸어놓았다.
저자는 밤하늘을 밝혀주는 수많은 별처럼, 자신이 걷고 있는 인생길의 불을 밝혀준 많은 책들 중에서 50권을 가려 뽑아 그곳에서 길어 올린 삶의 깨달음을 전한다. 이를테면 『노인과 바다』를 “삶에 대한 이야기로 읽는 건, 이만한 나이를 먹고 보니 삶은 성공도 실패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나온 삶에는 여러 성공과 실패가 섞여 있다. 내 낚싯줄에 어떤 물고기가 걸릴지 알 수 없듯, 성공도 실패도 내 뜻대로만 되지 않았다. 언제 물고기가 튀어 올라 상처를 낼지 알 수 없듯, 삶의 모든 일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또한 『밤으로의 긴 여로』를 읽고서는 가족의 의미를 다시금 상기해본다. “연극으로 보지 못하고 대본으로만 『밤으로의 긴 여로』를 읽는 데는 시간이 적잖이 들었다. 작품 속 가족 이야기를 마주하기가 힘들었고, 또 자꾸 내 가족 이야기를 떠오르게 했다. 이 희곡을 쓰기 시작했던 쉰한 살의 오닐처럼 우리나라 대다수 오십 대에게 가족은 두 겹으로 이루어진 삶의 울타리다. 태어나면서 운명으로 주어진 가족이 한 겹이라면, 내가 선택한 가족이 다른 한 겹이다.” “나는 어릴 적 엄마에게 많이 야단맞으며 컸다. 엄마는 예민하고 엄격했다. 거리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결혼한 후 엄마와 다시 사귀게 되었다. 내가 아이를 낳고서야 엄마가 셋이나 되는 아이를 친정에서 먼 타지인 부산에서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지 돌아보게 되었다. 게다가 처음에는 가까운 친구들조차 없었으니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엄마의 어려움과 외로움을 생각해봤다고 해서 우리 모녀간의 거리감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하지만 엄마라는 존재를 이해하려 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심리적 거리감은 한 뼘 정도 가까워진 셈이다. 이제 남은 내 삶에서 나는 엄마의 삶을 얼마나 더 이해할 수 있을까. 삶이 오닐의 말처럼 여로旅路라면, 나의 이 여행 끝에선 엄마에게 좀더 가까이 다가서 있길 소망한다.”
저자가 다양한 책을 통해 마음의 불안과 우울을 이겨내고 남은 인생을 잘 살아보겠다는 동력을 얻었듯이, 이 책을 읽는 독자들 또한 삶을 긍정하는 것은 물론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가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어떻게 살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나이 들어 갈 것인가?”
하루하루를 ‘잘’ 살아가고 싶은 이들을 위한 인생 처방전
저자는 ‘죽음’과 가까워지는 나이에 이르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을지’를 고민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누구나 나이 듦을 피할 수 없으며 종국에는 죽음을 맞이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는 인생은 덧없는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이 찬란하고 아름다운 것은 결국에는 그 유한함에 있기 때문은 아닐까?
저자는 남은 인생의 후반전을 잘 살아가고픈 마음에서 『파우스트』(1831)에서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2018)까지, 고전, 역사, 철학, 소설, 시, 에세이, 예술, 경제, 자기계발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섭렵하며 이 고민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선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인생에 대한 통찰이 녹아 있는 인문 에세이로도, 다른 한편으로는 독서 에세이로도 읽힌다. 더군다나 저자의 방대하고도 깊이 있는 독서력 덕분에 우리의 세계는 한층 더 깊고 넓어진다.
수많은 어른의 인생들을 통해 저자가 깨달은 ‘좋은 삶’이란 자기 이름으로 된 아파트를 가지고 있으며 원하는 것을 마음껏 살 수 있을 만큼 경제적으로 풍족한 삶이, 사회적으로 누구나 우러러볼 만큼 성공한 삶이 아니다. 저자가 남은 인생에서 지향하는 바이자 그가 생각하는 좋은 삶이란 무엇일까. 나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고 지금 누리고 있는 행복을 당연시하지 않고 감사해하며 다른 사람이 잘되었을 때는 진심으로 축하해줄 줄 아는 것이다. 타인과 비교하느라 후회와 불안으로 하루하루를 헛되게 보내지 않는 것이다. 성공의 유무와 상관없이, 설령 나이가 많다고 하더라도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도전해보는 용기를 내는 것이다. 진실과 거짓을 가려낼 줄 아는 ‘마음의 눈’을 갖는 것이며, 때때로 주변 사람들에게 안부를 건네고 주위를 돌아보고 챙길 줄 아는 여유로운 마음을 가진 삶이다. 얼핏 진부해 보일 수 있는 결론이지만, 인생의 진리라고 하는 것은 평범하면서도 우리들 가까이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