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콘텐츠의 관점에서
‘조선의 책’을 바라보다
최근 개봉한 역사 미스터리 영화 〈올빼미〉는 소현세자의 죽음을 기록한 ‘조선의 책’ 〈인조실록〉에서 출발한 이야기라고 한다. 국사편찬위원회의 〈인조실록〉 46권 자료에 따르면 “세자는 본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병을 얻었고 병이 난 지 수일 만에 죽었는데, 온몸이 전부 검은빛이었고 이목구비의 일곱 구멍에서는 모두 선혈(鮮血)이 흘러나오므로, 검은 멱목(幎目)으로 그 얼굴 반쪽만 덮어 놓았으나, 곁에 있는 사람도 그 얼굴빛을 분변할 수 없어서 마치 약물(藥物)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과 같았다. 그런데 이 사실을 외인(外人)들은 아는 자가 없었고, 상도 알지 못하였다. (인조 23년 6월 27일)”는 내용이다. 사실 이렇게 전통 소재를 문화 콘텐츠로 끌어온 예는 셀 수 없이 많다.
이 책은 우리 문화와 역사를 주제로 오랫동안 강연과 글쓰기를 해온 저자가 서지(書誌)에 관한 정보보다는 책에 소개된 ‘콘텐츠’에 주목하여 완성한 인문 교양서다. 조선시대에는 문자(한자)를 독점한 사대부가 한자로 된 글을 읽고 쓰고 했지만, 그들이 남긴 책은 우리의 다양한 문화를 기록한 것이었다. 저자는 인문 콘텐츠의 마중물이 될 역사적, 문학적 가치가 높은 조선의 책 12권을 주제와 형식에 따라 일기문(日記文), 이야기책, 백과사전의 세 가지로 분류하고 내용과 편저자 등과 관련한 책들을 함께 소개하여 서문에서 밝힌 바대로 100여 권 안팎의 도서를 담아냈다. 이와 더불어 책 속의 재미있고, 은밀하고, 기이하고, 우스운 이야기들을 풍부하게 수록함으로써 문화 콘텐츠의 기본 원천을 마련했다. 조선의 책을 기록한 사대부들의 극적이고 흥미로운 행보도 기본 원천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삼강행실도〉, 〈경국대전〉, 〈동국세시기〉, 〈목민심서〉, 〈반계수록〉, 〈연암집〉, 〈동문선〉, 〈동국여지승람〉, 〈연려실기술〉, 〈징비록〉, 〈택리지〉 등 본문에서 자세하게 담지 못한 널리 알려진 책들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 서비스하는 사진을 싣고 설명글에서 제작 시기와 편저자, 내용과 의의 등을 기술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조선의 책’에 담긴 대표적인 책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일기, 야담, 우스갯소리, 집약된 지식’을 통해
조선의 문화와 역사를 만나다
조선의 일기문은 생활사 연구 차원에서 500년 만에 주목받고 있다. 저자는 우선 묵재 이문건의 〈묵재일기〉, 미암 유희춘의 〈미암일기〉 등을 통해 사대부의 일상과 인간관계 등을 살펴본다. 책에는 양반가의 가장으로서 노비를 비롯해 집안 식구들의 건강을 챙기는 모습, 스스로 점을 쳐서 일상의 일들을 결정하는 모습, 때로는 자상하게 때로는 엄격하게 자녀를 훈육하고 아내와는 애틋하면서도 모범적인 부부관계를 이어간 사대부의 삶이 세세하게 펼쳐진다. 율곡 이이가 쓴 〈석담일기〉는 내용 가운데 60퍼센트가 인물평인 데다 그 평가가 지나치게 직설적이고 박한 탓에 좀 더 객관적인 비교가 가능하도록 실록과 일기에 쓰인 내용을 함께 실었다. 1738년(영조 14)부터 1791년(정조 15)까지 무려 53년간 기록된 이재 황윤석의 일기 〈이재난고〉에는 풍수지리와 관련해 당시 만연했던 산송(山訟, 묘지와 관련한 소송) 문제가 어떻게 노비와 전답 소송과 함께 조선시대 3대 민사 소송에 해당하게 되었는지가 흥미롭게 전개되고, 군도(群盜)가 들끓던 시대 상황과 지방 선비로서 받는 차별과 불평등의 소회 등이 진솔하게 드러나 있다. 이외에도 문신 권벌의 관직 일기 〈충재일기〉, 명나라에 다녀온 소순의 사행 일기 〈보진당연행일기〉, 오희문의 전쟁 체험 일기 〈쇄미록〉 등이 소개되어 있다.
이야기책은 서거정이 〈태평한화골계전〉의 서문에서 “후세에 전하려는 뜻을 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근심을 잊어버리고자 한 것이다”라고 밝혔듯이 사대부 지식인들의 삶의 여유를 바탕으로 한 사랑방 문화가 담겨 있다. 이야기 속에는 유교 사회에서 비주류로 통하는 승려, 기생, 여인 등이 자주 나오는데, 저자는 그 이유를 그들의 눈을 통해 허세와 무능, 욕심에 찬 지배 계층을 지적함으로써 사대부 지식인으로서의 여유와 자신감을 보이려 한 것으로 분석했다. 또 등장인물의 대화체 서술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에도 주목하면서 이러한 특징이 생동감과 입체감을 느낄 수 있는 서술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어우당 유몽인의 〈어우야담〉은 그야말로 흥미로운 콘텐츠의 보물창고라 할 수 있다. 야담류의 효시로 알려진 이 책에는 귀신 이야기, 흉가 이야기, 현실을 뛰어넘는 기기묘묘한 이야기 등 지금 당장이라도 끌어와 쓸 수 있는 창작 거리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성종의 명으로 성임이 엮은 설화집 〈태평광기상절〉, 여러 계층의 인물을 수록한 성현의 〈용재총화〉, 소화집(笑話集)인 강희맹의 〈촌담해이〉, 패관문학의 대표작인 어숙권의 〈패관잡기〉 등이 소개되어 있다.
백과사전은 새로운 세계와 지식을 다룬 유서(類書)였다. 특히 17세기 전반기에 편찬된 지봉 이수광의 〈지봉유설〉은 프랑스의 백과사전파보다도 150년이나 앞설 정도로 근대적 지성의 출현을 알린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이었다. 사대부 지식인들이 유서 편찬에 눈을 돌린 이유는 〈유원총보〉를 편찬한 김육의 일화에서 짐작해 볼 수 있다. 당시 명나라 조정은 조선 사신단의 서적 구매 요청을 번번이 거절했고, 귀국길에는 짐 수색까지 벌였다고 한다. 결국 김육은 자신의 손으로 유서를 편찬하기로 결심하고 〈유원총보〉를 완성했다. 서문에서 “이 책으로 두 아들을 가르쳤다”고 밝힌 조재삼의 〈송남잡지〉는 박물학적 지식욕에 대응하는 학습서로 평가했다. 왜냐하면 〈송남잡지〉에 중국 유서인 〈운부군옥〉과 〈사문유취〉에서 선별한 내용을 많이 수록했는데, 이 책들은 당시 과거 준비나 시문 창작에 참고할 수 있는 유용한 서적으로 사대부 문인들에게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로 치면 적중률이 높은 족집게 수험서였다고나 할까. 한편 오주 이규경이 지은 〈오주연문장전산고〉는 근대와 전근대를 잇는 유서로 평가되는데 저자는 이 책이 변증(辨證), 즉 직관이나 경험에 의하지 않고 논리적으로 분석하여 대상을 설명한 점에 주목했다. 이외에도 잡록의 일종인 홍만종의 〈순오지〉, 속담집인 정약용의 〈이담속찬〉 등이 소개되어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 ‘나의 소원’에서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며,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길 원한다”고 하였다. 그 바람대로 이제 강력한 문화 콘텐츠 강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조선의 책’을 일독할 것을 권하는 이유다. 콘텐츠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나 일반 독자들에게는 두고두고 참고하기 좋은 정보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