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음에 우리가 사랑을 하고
사랑이 우리를 살아 있게 하고”
사랑으로 맺어지는 일상의 시간들
1장은 현우로부터 동희에게로, 2장은 동희로부터 현우에게로 편지가 전달된다. 분명 편지의 시작과 끝은 다른데, 여름의 끝에서 쓴 편지가 겨울에 이르기까지 참 오래도록 오가면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생의 기쁨과 슬픔의 시간들을 거슬러 마주한 여러 모양의 감정이 ‘사랑’이라는 열매로 맺어진 것이다.
그것은 일상에서 찾은 발견들이다. 빗소리를 통해 살아 있음을 느끼고, 라디오를 들으며 다정히 귀 기울이는 마음을 알게 되고, 편지를 주고받으며 그리움과 애틋함의 온도를 전달받고, 엄마의 일기를 보며 가난이 부끄러운 게 아님을 깨닫고, 하얀 눈이 슬픔을 타일러주는 등의 경험을 통해서 얻은 것이다. 이렇게 일상에서 찾은 빛나는 보물들을 두 사람은 서로에게 띄워 보내면서,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고백한다.
아, 내가 몰랐던 세상이 있네. 아, 내가 놓쳤던 시각이 있네. 그 시절의 내 수많은 발견들은…… 음악 인생에 큰 도움이 되어가고 있어. (동희)
저는 자꾸만 머릿속으로 되뇝니다. 지금도 슬픔을 지나가고 있고 새로운 기쁨들이 햇살 고명처럼 우리 어깨 위에 있다는 것을요. 그리고 이것 또한 문학 안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기쁩니다. (현우)
인생에 여러 모양으로 찾아온 슬픔과
그 슬픔을 받아들이는 마음에 대하여
슬픔은 인생에 제멋대로 찾아온다. 두 사람에게도 슬픔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정현우가 꺼내놓은 무른 과일을 자주 먹었던 가난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 조동희가 꺼내놓은 돌아가신 부모님의 이야기. 그들은 편지에서 자신의 고난과 실패, 어려웠던 순간들과 그때의 먹먹했던 감정들을 전한다.
우리가 눈물을 그칠 수 없는 것은 갈비뼈에 슬픔 같은 것들이 진주알처럼 끝없이 박혀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우리는 눈물을 지우려 해도 지울 수 없어요. (현우)
슬픔은 내가 침몰하는 웅덩이 같아. 해가 나면 그 웅덩이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마르고 말아. 그렇지 않은 적은 없었어. 내 어린 날의 기억 속에도. (동희)
우리의 삶을 흔들 만큼 강력한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흐릿해지는 법이다. 하지만 그때 느끼는 감정은, 그 슬픔은 갈비뼈에 박히듯 오랫동안 우리 곁에 머무른다. 때로 마음의 웅덩이에 슬픔이 가득 차오르면 침몰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인생에 느닷없이 온 슬픔을 우리가 막을 방법은 없다. 그러나 그 슬픔을 다른 모양으로 바꿀 수는 있을 것이다. 정현우의 시처럼 “슬픔을 들키면 슬픔이 아니듯” 우리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인다면 ‘슬픔’이 ‘진주알’이 되는 마법도 일어날 것이다. 인생에 차고 넘치는 슬픔도 언제 그랬냐는 듯 바짝 마를 날도 오지 않을까.
일상에서 매 순간 감각하며
“그것은 사랑이야”라고 속삭이는
두 사람의 다정한 편지
생각해보면 인생을 만드는 것은 평범한 일상이다. 내일이면 기억나지 않을, 오늘 스쳐 지나간 찰나가 모여서 인생이 된다. 슬픔도 머물렀다 가고, 절망에 빠지기도 하고, 기쁨에 취하기도 하는 그런 순간들. 우리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그냥 흘려보내기 바쁘다. 그러나 두 사람처럼 일상을 감각한다면, 그것은 곧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되고, 그때의 수많은 발견들이 내일을 살게 할 동력이 되어준다.
우리가 사랑이라 말하는 것들이 우리를 살게 한다. 그리고 그것을 찾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
지금이라는 슬픔에게 말을 빌려 결국 “그것은 사랑이야”라고 말하기를. 그 사랑이 우리를 넘어트리고 울리겠지만, 앞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슬픔에게 “너는 또 다른 사랑의 얼굴이야”라고 말하기를. (현우)
어느 힘든 하루의 끝에서 이 생각을 하곤 해. 아무리 어두워도 밤이 계속될 수는 없다는 걸. 무릎 위 떨어지는 하루가 잠들고 나면 다른 하루가 깨어난다고. 그러니 후회 없이 사랑하라고. (동희)
정현우, 조동희가 일상에서 찾아낸 보물들은 이 책의 책갈피가 되어 곳곳에 자리했다. 이제 당신이 이 책의 페이지를 넘기며 어쩌면 슬픔으로 찾아왔을지 모를, 때로는 다른 모양의 아픔으로 찾아왔을, 그런 순간들에서 비로소 ‘사랑’을 발견할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