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를 향한 따스한 관심
이화주의 동시는 그 무엇보다 따뜻하다. 자연과 사람, 관계에 깃든 아름다움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채고, 누구보다 먼저 언어로 담아낸다.
“안녕하세요?”
내가 인사할 때마다
환하게 웃으시는
우리 아파트 청소하시는 아주머니
흰 구름, 파란 하늘 놀러 오라고
아파트 현관 유리창 말갛게 닦으신다
내 동생 세수시키는 우리 엄마처럼
_「내 동생 세수시키는 우리 엄마처럼」〉 전문
이 동시에는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뽀득뽀득 유리를 닦는 아주머니를 묘사하고 있다. 시인은 그이의 행위를 그저 범상한 노동으로 보지 않는다. 동생을 세수시키는 엄마처럼 따스함과 진지함, 진정성을 함께 담아낸다. 「손에서 손으로」에 나타나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오롯이 한 마음으로 아이를 건네고 건넴으로써 새로운 삶을 열어주는 감동의 순간도 시인은 놓치지 않는다. 아저씨의 웅크린 몸 위에 소복소복 내리던 눈이 화들짝 놀라 내리기를 멈추는 「함박눈이 깜짝 놀라서」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마음들이 모이고 또 모여, 우리 주위와 이웃을 환하게 비춰주는 것이다.
사물을 보는 새로운 관점
이화주의 동시는 새로움으로 충만하다. 기존의 상투적인 의식을 흔들어, 눈이 활짝 열리는 느낌을 건네는 동시들이 가득하다.
할머니 집 뜰에
홀로 서 있는 항아리
“할머니 이거 무슨 항아리야?”
“응, 빈 항아리.”
뒤꿈치 들고
빈 항아리 속으로 얼굴을 디민다.
“아아아아아〜” 부르니
“아 아 아 아 아 아〜〜〜” 대답한다.
‘쌀 항아리’, ‘김치 항아리’
이름을 버리고 나니
내 말이 잘 들리나.
_「빈 항아리」 전문
비어 있음에 비로소 모든 것을 담아낼 여지가 생길 뿐만 아니라 더불어 온전히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문이 없기에 수많은 곳으로 열려 있게 되는 「아기 새와 둥지」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느낌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감각
묘사야말로 동시를 동시답게 만드는 힘이다. 이화주의 동시는 시각적, 청각적 묘사가 돋보인다.
어린 잉어들
빨간 열매 따고 싶어
온종일
호수 속에 비친
산사나무 그늘을 들락인다.
산사나무가
그림자 속으로
톡
톡
열매를 떨어뜨려 준다.
와!
내가 땄다.
와! 와!
나도 땄다. 나도 땄다.
_「산사나무 물그림자에서 열매를 따다」 전문
어린 잉어들은 빨간 산사나무 열매가 갖고 싶다. 그 빨간 단단한 반짝임을 누군들 가지고 싶지 않으랴. 어린 잉어들은 시종 그 열매에서 마음을 거둘 수가 없다. 그러던 차에 나무는 열매를 떨어뜨리고, 어린 잉어들은 자신들이 따낸 것이라 우쭐해한다. 이 작은 풍경 하나가 이 시에는 호수, 어린 잉어, 산사나무 그늘, 붉은 열매가 주거니 받거니 이미지를 축조해 낸다. 열매가 떨어지는 소리와 어린 잉어들의 외침도 이미지의 역동성을 거든다. 이 단정하고 아름다운 동시야말로 동시 본연이 서정이 아닐 수 없다.
이화주 시인의 신작 『토끼 두 마리가 아침을 먹는다』는 보기 드물게 풍성한 맛과 멋을 담고 있는 동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