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1987년이 아니라 1991년이 중요하나
1991년을 단지 한 해가 아니라 1987년을 전후해 시작된 어떤 사건과 구조, 질문들이 1990년대 방식으로 전환하는 중요한 결절점이라고 좀 더 넓게 이해해보자. 꼭 1991년 그해 벌어진 일이 아니더라도 1989년이나 1990년쯤 전개되기 시작한 쟁점, 또는 1992년부터 1994년 사이 조금 늦게 터진 쟁점, 그리고 그 후과로서 1996년까지 지속되고 1997년 남겨진 쟁점들을 모두 1991년이라는 계기로 모아 살펴볼 수 있다.
1991년은 격동의 해였다. 특히 5월에 많은 일이 집중적으로 터져 나왔다. 그해의 일들은 한 해 전인 1990년 1월 22일 이뤄진 민자당 3당 통합의 후과로서 전개된 것인데, 집권 세력 내의 분열과 경합, 이와 맞물린 야당의 복잡한 대응, 1987년 이후 영향력을 키워온 재야와 학생운동, 노동운동 등 사회운동 세력의 대응이 더해져 양상이 매우 복잡해졌다.
1991년은 1987년 위기를 ‘자유주의적으로 전환’하려는 시도에서 난점과 갈등이 집약되어 표출된 시기였다. 지배 구조의 측면에서 보자면 준전시 체제하에서 위로부터 중화학공업화를 추진한 유신 체제를 개방 지향적 자유주의적 경제 구조로 전환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던 시점이었다. 3당 통합은 그런 시도의 일환으로 등장했고 재벌 개혁의 시도가 부분적으로 시작됐다. 사회운동 세력은 이런 상황에서 ‘PD 3파 통합’과 ‘전노협 해소’를 거치며 노동운동 현장에서 철수하고 합법 혁신정당 운동으로 방향을 전환하는데 이는 적지 않은 혼란을 불러왔다.
1987년 ‘직선제 쟁취’라는 변화에 과도하게 몰두해 이후 벌어진 중요한 변화를 놓쳐서는 안 된다. 우리는 1991년의 제도적 변화가 낳은 후과 속에서 아직도 대립과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두 가지 제도 변화가 대표적이다. 경제 관리 측면에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종료되고 자유주의적 시장 관리 방식이 자리 잡았다. 또 공권력의 중심이 안기부에서 검찰로 이동하면서 ‘법치’의 제도화가 이때 이뤄졌다. 즉 1991년은 한국 자본주의 축적 구조를 유지하는 통치성의 수선기로서 경제 자유주의와 법률 자유주의가 제도적 수선을 거쳐 새롭게 결합하는 계기였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보면 우리는 통치 집단에 대한 전면적 분석은 하지 않고 주체의 의지와 역량만을 앞세웠음을 알 수 있다. 책은 1987년 이후 한국 역사를 단순히 ‘위대한 민중 승리의 역사’와 ‘계속 지속돼야 할 적폐 청산의 역사’로 보는 관점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한다.
◎ 한국 사회에 자유주의 헤게모니는 있나
“자유주의 사상 및 실천과 진지하게 대결하지 않는 사회주의는 불가능하며, 그것은 일시적으로 보수적 사회주의 형태로 출현했다가 곧 분노의 정념들의 대치를 동반한 새로운 권위주의의 변형으로 귀결될 뿐이다.”
“자유주의 헤게모니 수립의 취약성은 ‘영남당’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은 집권 세력과 ‘포퓰리스트’에게 장악된 민주당 간의 적대적 공생으로, 결국 비자유주의적 포퓰리즘의 득세라는 위기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책은 자본주의 질서의 ‘통치’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자유주의 제도 실천의 변천을 통해 살펴본다. 즉 한국에서의 자본주의 발전의 역사를 ‘자유주의 제도’의 착근과 변용의 역사 속에서 검토한다. ‘적폐 청산’이나 ‘87 체제론’의 관점이 아니라 자유주의 통치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려는 것이다. 그러면서 1991년 이후 30여 년간 자유주의 헤게모니를 수립하려는 시도가 반복됐는데도 지속적으로 실패한 맥락에서, 자유주의 제도가 어떤 위기를 겪고 어떤 돌파를 했는지를 분석한다.
한국 현실에서 자유주의라는 쟁점은 누구나 쉽게 비난하는 대상이지만 제도 배치의 차원에서 진지하게 검토된 적은 별로 없다. 현실 제도는 자유주의적 제도 실천이 공고화돼왔으나 정치 이념의 지형은 비자유주의적 포퓰리즘의 원심력이 발휘되면서 계속 회피됐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1991년은 자유주의 제도에 토대한 한국 자본주의의 전반적 점검기였다고 할 수 있다. 1960년대 혼종적 결합을 보이던 자유주의 제도 결합이 유신으로 단절된 뒤, 유신 체제의 특성으로부터 탈피해 제도를 자유주의적 방식으로 전환하는 시도가 본격화하는 시점이 바로 1991년이었다고 볼 수 있다.
◎ 2022년 20대 대선 평가: ‘정치의 사법화’와 ‘자유주의 제도’의 질문
책은 2022년 대선 과정을 ‘차도 응징’이라고 지칭한다. 즉 ‘문재인 정부의 칼을 빌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응징한다’는 구도가 두드러졌다. 20대 대통령 선거의 특이성을 이해하려면 차도 응징이라는 태도가 나온 이유, 특히 촛불에 참여했고 문재인 정부 등장에 어느 정도 우호적이었던 세력들에게서 그런 태도가 나온 이유를 찾아봐야 한다. 이들이 선거에 직면해, 대체 민주당 세력은 ‘제도’와 ‘통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묻게 됐다는 것이다.
이는 ‘정치의 사법화’(‘적폐 청산’)와 ‘자유주의 제도’에 대한 질문이다. 문재인‑민주당 집권 세력이 정권을 상실하게 된 것은 언론과 공안 권력 두 세력을 완전히 자기 통제하에 두지 않으면 몰락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또 제도의 상호 연관성에 대한 경시와 대중이 자신들을 지지한다는 착각과 맞물려 무모한 모험주의적 시도를 한 결과였다. 여기서 ‘자유주의’가 어떻게 폐기되고 무너지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