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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사에서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불가문학佛家文學은 조선을 거치며
방외의 문학, 비주류문학으로 차별받았으며, 오늘날 연구에서도 소외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연구는 유가문학을 비롯한 여성문학,
지방문학 등의 연구와 함께 반드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분야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불교문학 연구를 새로운 시각으로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확장해
나갈 때야말로 한국문학사의 전모가 온전히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러한 필요성에 부응하고자 불가문학과 선가문학에 대해 문예 미학적
으로 접근한 저술이다. 이를 위해 고려 말 동시대를 살았던 선승 백운 경한과
태고 보우, 나옹 혜근의 문학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세 사람은 선
수행에 몰두한 선사이면서도 그 과정에서 남긴 선시와 선어록은 각기 개성적이
다. 그러면서도 이들이 나아간 문예 미학적 성취는 그 어느 시대 작가에
비해서도 높은 수준을 보여 준다. 이 책은 이들의 개성과 문학적 성취를
그 선적 이념과 연관하여 유기적으로 드러내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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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먼저 백운 경한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한다. 백운의 선어록인 백운화상어
록의 편집 체제를 살펴보고 그 산문 서술을 분석하고 있는데, 여기서 쌍방적
말하기, 일방적 말하기, 시적 말하기의 수용과 같은 표현의 다양성을 보여
주고 있음을 확인한다. 이어서 백운이 내세운 선을 집중 분석함으로써 그의
선을 무심선無心禪으로 보았던 기존의 주장을 교정하고, 조사선과 조사선
수행법으로서의 회광반조廻光返照라는 선이 백운 선의 특징임을 밝히고, 어록
에서 산문으로 이러한 선을 어떻게 문예 미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는지를 논하고
있다.
다음 장에서는 태고 보우의 선시와 선어록에서 보인 선의 비언어적 표현
원리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는 선에서 보이는 비언어적 행위를 동작과 음성으
로 나누어 그 기능과 역할에 대해 밝힌다. 그리고 태고 선의 체계성과 문예
미학적 표현 방식을 논하고 있다. 그의 선은 조사선에서 출발하여 회광반조와
간화선, 염불선로 이어지는 상하 위계성과 간화선과 염불선 사이에 계열성이
라는 두 가지 체계를 동시에 보이고 있어서 그의 선 체계가 매우 역동적이며,
이것이 극적이고 서술적으로 표현되어 선어록의 산문을 살아 움직이는 문예
미학적 작품이 되게 한다는 것을 입증해 보이고 있다.
끝으로 나옹 혜근의 선이 가지는 성격을 논한다. 우선 나옹은 회광반조를
강조하고 있는데, 간화선 수행법에서는 백운의 선 수행 방식과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고, 간화선과 염불선에 있어서는 보우의 선 수행법과 유사하지만 양자
의 구체적 수행 방법에 있어서는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이어서 나옹이 선시에
서 선을 표현하기 위하여 사용한 어휘를 통계적으로 분석하여 논하고 있다.
체언과 용언 계열의 어휘는 선문에서 말하는 살殺과 활活, 살활동시라는
기준으로 어휘를 분류하여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한편 선에서 사용되는
특정 어휘들은 고도의 상징으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논리적, 체계적
으로 분류하여 그 의미를 추출하여 선시나 선어록의 문예 미학적 특성의
이해를 돕고 있다.
3.
선가문학 연구의 과정은 만만치 않다. 일반 문학 연구 이론과 작품을 보는
안목을 갖추고 한문 독해 능력이 있어야 하며, 더하여 불교 한문 독해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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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불교 한문 독해력은 문장 이해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작품 내면에 표현된 불교 이념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한문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불교와 선을 모르면 선가문학은 접근이 불가능한
영역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문학 이론과 한문 독해력은 물론이고 입적한 고우古愚
선사의 가르침을 통해 선에 대한 안목을 갖춘 저자이기에 가능한 문예 미학적,
선적 통찰을 만날 수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