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라는 단어는 누구에게나 낯설지 않습니다. 우리의 전통적인 정서 안에서는 신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물음이 별로 의미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신 있음’의 풍토 속에서 비교적 자연스럽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종교가 논의의 주제가 되면 신의 존재 여부가 가장 우선하는 주제로 등장합니다. 어느 틈에 신을 이야기하는 틀이 그리스도교적이게 된 거죠. 신의 존재 여부에 대한 논의에서부터 그가 지녔으리라 예상되는 속성의 기능적 발현, 그리고 우리의 삶 안에서 자리 잡을 규범적 실재로서의 그의 현존에 이르기까지의 논의가 거의 ‘신학적’이라고 해야 할 구조를 지닌 틀 안에서 펼쳐집니다. 이러한 우리의 현실이 옳으니 그르니 할 생각은 없습니다. 자칫 판단이 선행되면 실재 또는 현실을 간과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어떤 선의의 판단도 부정직한 인식을 낳게 되니까요. 분명한 것은 우리의 ‘신에 대한 논의’는 자못 서양적이거나 ‘신학적’인 ‘유일신적 실재’를 전제로 펼쳐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신 이야기’가 불가피하게 그럴 수밖에 없다면 그렇게 물어지고 이야기되는 ‘신 이야기’가 우리에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적극적으로 살펴보아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유념하면서 이 책 『신 이야기』가 펼칠 ‘이야기’가 과연 어떤 것이게 될까 하는 것을 예상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공감 여부와는 상관없이 어쩌면 일지 모르는 충격을 미리 완화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틀림없이 ‘신이라는 사물’에 대한 인식론을 담을 겁니다. ‘신이 하는 이야기’에 대한 고백적 진술이 어떤 형태로든 또한 담길 거고요. 게다가 신의 예사로운 용례도 끼어들 거고, 서양적인 ‘신학적인 분위기’도 스스로 모든 것의 준거인 양 단단히 한자리를 차지할 겁니다. 그리고 이 여러 ‘요소’들이 뒤섞일 게 뻔합니다. 그렇다 해도 아주 잘 풀리면, 이야기가 끝없이 되돌면서도, 그것이 무언지 지금 장담할 수는 없지만, ‘어떤 주제’를 상실하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의 생각을 되살필 만한 어떤 것으로요. 만약 그렇지 못하면 『신 이야기』는 정연한 논문도 아닌, 친절한 산문도 아닌, 붓 가는 대로 쓴다는 수필도 아닌, 그렇다고 상상의 세계를 열어 주는 시는 더더구나 아닌, 그런 모호한 것이 될 게 틀림없습니다. 모호한 주제만이 온통 잡다한 이야기 위에서 떠돌 수도 있고, 소란스러운 이야기의 소용돌이에서 그 모호한 주제의 행방마저 묘연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야기’가 과연 ‘이야기다울 수’ 있을는지요. 아마도 개념의 명료성도 없고, 방법론의 치밀함도 마련 못 하고, 논리의 일관성도 잃은 채 중얼거리는 독백이기에 꼭 알맞을 것만 같습니다.
그래도 신을 주제로 한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이도 저도 아닌, 주저리주저리 말이 말을 쫓아 이어지는 군소리가 될지라도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감히 말하자면, 누구나 신에 대한 자기 생각을 거리낌 없이 펼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못한 현실을 우리는 때로 겪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대체로 뜻밖에 소심합니다. 그런가 하면 뜻밖에 무모하기도 합니다. 그 둘 사이를 그네 타기처럼 오가기도 하고요. 자기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사물과의 만남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이야기답지 않은 이야기’일지도 모를 ‘신 이야기’가 우리의 이러한 경험을 조금은 더 편하게 해 주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히려 없던 소용돌이를 일게 할 수도 있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