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을 시작할 때, 맨 처음 먹는 마음을 ‘초심’이라 한다. 순수한 의도가 있었을 것이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열정으로 들끓었을 것이다. 늘 긴장을 놓을 수 없었을 것이고, 또 늘 손과 가슴은 떨렸을 것이다. 시작했던 일이 익숙해지면 드디어 ‘중심’이 잡힌다. 중심이 잡히고 나면 실수와 실패가 줄어들고 막상 실수를 했다 해도 만회할 정신적·시간적 여유가 생긴다. 여유가 생기다보니 드디어 눈감고도 해내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런 경지를 지나면 종종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왜 하고 있는지 슬슬 궁금해진다. ‘고심’에 빠지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매너리즘이라고도 한다.
글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다. 소재를 찾고, 스토리를 구상하고, 플롯을 짜서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일은 풀고 짜고, 짜고 풀기를 끊임없이 반복해도 끝나지 않는 페넬로페의 베짜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넬로페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 과정이 언제나 가슴 떨리도록 행복한 일이라는 사실이다. 머리를 쥐어뜯는, 혹은 산고와 맞먹는 고통이라 할지라도 진정한 희열의 맛을 알기에, 그 고통마저 행복하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바로 글 쓰는 사람의 ‘초심’이다.
글 쓰는 사람에게 ‘중심’이 잡히면 그런 과정들을 즐기는 지경에 이를 수 있게 된다. 여기까지다. 딱 여기까지여야 한다. 그러나 글 쓰는 사람에게도 ‘고심’이 온다. 골드만이 소설을 일컬어 ‘타락한 사회에서 타락한 방법으로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장르라고 한 것처럼, ‘고심’에 빠진 작가는 문제적 인물을 통해 문제적 인간이 되곤 하는 것이다. 그 문제적 인간은 자신이 지금 무슨 글을 쓰고 있는지, 왜 쓰고 있는지 고심하기에 이르러 마침내 그 어떤 글도 쓸 수 없게 되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엑스레이-어제 오늘 내일을 찍다』는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초심을 자극하는 책이고, ‘글을 쓰고 싶은 사람’에게는 글 쓰는 행복을 간접 체험하게 하는 책이다. 책을 좋아하던 유년 시절, 글짓기 대회에서 상깨나 타던 학창 시절, 드디어 자신의 글이 어딘가에 채택되고, 활자로 인쇄되어 지면에 실리고, 책으로 출판되고 하던 그 일련의 과정 속에서 가슴 벅차오르던, 무슨 소재로든 자신 있게 다 써내고 말리라던, 그리하여 유명한 작가가 되리라던, 그 떨림과 설렘을, 당신은 기억하는가 하고 슬슬 옆구리를 간질거려 온다. 이 정도면 당신의 이야기도 써보고 싶지 않은가 하고 슬슬 옆구리를 찔러 온다. 그런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