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엔 깡다구와 고독이라는
독주가 더 필요하다
한 치 앞은 어둠이고 빛이기도 하다. 어둠에 내던져질지, 빛으로 뛰어들지는 본인의 의지에 달려 있다. 인생을 타자에게 맡기는 타율적인 삶 속에서는 절대 빛을 얻을 수 없다. 안정은 언제나 겉보기에 불과할 뿐, 한 치 앞에는 칠흑 같은 어둠이 기다리고 있다. 안정은 망상이거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안정은 아버지의 무사안일주의에서 태어나고, 어머니가 심어 준 신기루에 불과하다. 아무리 좇아가도 멀어지기만 하지, 손에 잡히는 일은 없다. _102쪽
‘은둔 작가’로 알려진 마루야마 겐지는 그보다 먼저 ‘작가들의 작가’로 불린다. 혼이 깃든 작품을 쓸 뿐 아니라 그런 작품을 쓰기 위해 명예와 돈 등 삶의 순수한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잔가지들을 쳐낸 강단 있는 실천가이기 때문이다. 일찌감치 문단과도 선을 그었다. 역설적이게도 문단 밖에 있으면서도 일본 문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작가로 평가된다.
인간에 대한 연민과 통찰
산송장인가, ‘산 자’인가
겐지는 인간은 “(무슨 인과응보에선지) 태어나 죽을 때까지 지옥에서 살아갈 운명에 처해 있다”고 단언한다. 삶 자체가 고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책 곳곳에서 거듭 “편안하게 살 수 없는 세상”임을 강조한다. 그렇다고 이런 운명에 주저앉는 비관주의자나 염세주의자가 될 것인가. 겐지는 비록 타의에 의해 태어났지만, 태어난 이상 이성으로 정신의 불을 밝히고 삶을 헤쳐 나가라 한다. 오히려 비관적인 현실을 추동력 삼아 살아 있음을 만끽하라 전한다.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죽을 몸인데, 왜 그렇게까지 겁을 내고 위축되고 주저해야 하는가. 자신의 인생을 사는 데 누구를 거리낄 필요가 있는가. 그렇게 새로운 마음가짐과 태도를 무기로, 애당초 도리에 맞지 않고 모순투성이인 이 세상을 마음껏 사는 참맛을 충분히 만끽해라. _200쪽
겐지는 자신과 세계를 마주하고, 거기서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산송장이 아닌 ‘산 자’로 살기 위해 분투해왔다. 이 차디찬 이성 밑바닥엔 인간에 대한 연민도 짙게 깔려 있다. “자유와 자립의 정신이야말로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증거”이고, “불안과 주저와 고뇌야말로 살아 있는 증거”다. “살아 있는 한 이런 것들에서 헤어날 수 없고, 헤어나려 몸부림칠 필요도 없다.” “살아 있으면서 절대적인 안녕을 얻으려 한다면, 살아 있되 삶을 내던진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산송장의 삶이다.
홀로 가는 길의 유일한 벗,
고독이 가르쳐주는 인생의 가치
이 책에서 겐지가 말하려는 것은 단순하다. 홀로 자신만의 길을 가라는 것이다. 그 길에서 벗은 오직 고독뿐이다. 그는 “지상의 보물인 자유에는 언제나 고독의 그림자가 따라다닌다”며, 삶의 진정한 가치가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를 알려 준다.
나는 칠십 가까이 살면서 절체절명, 고립무원, 사면초가 등의 궁지에야말로 명실상부한 삶의 핵심이 숨겨져 있음을 느꼈다. 그 안에서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과정에야말로 진정한 삶의 감동이 있다고 확신했다.
한 번 그 맛을 알고 나면 이성으로 자신을 계몽하면서 나아간다. 갖은 고난과 역경을 굳이 배척하려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런 상황에 단호하게 대항하는 것에 삶의 참된 가치가 있음을 깨닫고 ‘자기 의존’이야말로 궁극의 목적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_201쪽
그에게 ‘인간’이란 존재는 “기온이 오르내리는 하찮은 외적 변화 하나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언제나 멸종과 파멸이라는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 있는” 너무도 연약하고 허망한 존재다. “딱딱한 바위로 뒤덮이고 그 바로 아래에는 펄펄 끓는 마그마가 흐르는 별의 표면에서 간신히 살아가는” 존재다. 그러므로 이런 인간이 “고뇌하고 무릎 꿇고 울며불며 매달릴 때까지 뒷짐을 지고 있는” 걸로만 봐도 신은 없노라 단호하게 말한다.
인생의 최종 목적지 ‘자유’
완전히 홀로선 인간이 빛난다
홀로 서는 것은 인생길에 첫걸음을 내딛는 일. 그러나 대다수 사람은 첫걸음도 떼지 못한 채 제 인생을 남의 인생인 양 살다 죽는다. 작심하고 홀로 서려는 순간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것들이 있다. 부모와 가정, 직장, 국가, 종교, 술과 도박, 섹스, 죽음 등이다. 부모는 자식을 영원한 유아 상태로 묶어 놓아 성장을 가로막으며, 국가는 국가를 독점한 소수자들의 영원한 안녕을 위해 국민들을 순종적인 무뇌아로 개조해버린다. 학교를 졸업하면 망설임 한번 없이 들어가는 회사란 조직은 또 어떠한가. 한마디로 자유를 스스로 반납한 노예들을 사육하는 장소일 뿐이다.
거울을 들여다볼 때마다 선명하게 비치는 것은, 젊음이라고는 한 톨도 지니지 않은, 회의에 절고 뭐라 말할 수 없는 허탈감에 칭칭 휘감겨 있는, 온갖 결점을 드러낸 채 신빙성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노예의 처지에 깊이 길든 ‘가축 인간’이다. 노동자라는 호칭에 속아서는 안 된다. 그 실질적인 처지는 바로 노예이다. _104쪽에서
인생의 최종 목적지는 ‘완전한 자유’의 상태. 겐지가 이 책에서 거듭 부모에게서 독립하고, 국가를 믿지 말라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모와 국가만큼 집요하고 교활하게 자유를 차단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 안에서만 빛나도록 생겨 먹었다.”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자유 안에서만 충만감과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타고났다. 모든 것을 주어도 부자유 상태에선 결코 행복할 수 없다. 그래서 잠시의 안식을 위해 자유를 저버린 자는 참된 인간이랄 수 없는 것이다.
살수록 인생이란 재미없고, 기대한 만큼은 아니었다고 실망하면서 행복이 멀어짐을 절감한다.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기 어려워지고, 강한 자를 우러르며 우습기 짝이 없는 영웅을 은근히 기다리면서 출퇴근 전철 안에서 죽은 사람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인생의 절정기는 학교 축제 때뿐이었음을 절감하게 되는 이유는 바로 자유를 스스로 내던졌기 때문이다. _108쪽에서
노작가는 경고한다. 안정은 망상이거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이제 그만 정신을 차리고, 이성이란 불을 밝혀야 한다고. 그리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를 앞을 향해 한 걸음 내딛으라 한다. 어둠이 입을 쩍 벌리고 있을지, 빛의 길이 열려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진정한 삶의 가치는 내딛는 그 걸음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