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사태에서 비롯된 기현상 중 하나는 법무부 장관이 과도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전까지만 해도 법무부 장관 이름 석 자조차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는데 지금은 무미건조한 취임식 영상의 조회수가 100만이 넘는 시대가 되었다. 조국 이후, 양 진영의 구도가 더욱 첨예하게 대립된 탓으로 보인다.
1인 출판을 6년 가까이 경영해오면서 요즘 기현상을 자주 체험한다. 어르신 전화 문의가 폭주까지는 아니더라도 비교적 많이 온다는 것. 전화와 팩스가 겸용인데 과거에는 99퍼센트가 팩스였지만 요즘은 휴대폰 전화가 잦아졌다.
발신자 번호를 꼭 확인해서 수화기를 들면 영락없이 어르신이다. 『한동훈 스피치』가 너무 일찍 공개된 탓에 어르신들이 ‘언제 나오나 싶어’ 심심치 않게 전화를 하는 것이다. 하루는 한동훈 장관을 보러 청사에 갔다가 목표를 이루지 못한 채 허탈한 심정으로 발길을 돌렸다며 하소연하는 어르신도 있었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법무부가 불철주야 뛰고 있는 건 알겠으나 서민의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데 그럼에도 어르신들은 한동훈 장관을 물심양면으로 응원하고 있다.
70~80대라면 한 장관 또래의 자녀가 있을 터, 언론을 통해 그의 이력이 대부분 공개된 까닭에 한 장관이 자식 같다는, 어미의 마음과 아비의 마음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지. 그게 아니라면 한동훈 신드롬은 설명하기가 어렵다.
“할 일을 제대로 하는 검찰을 두려워 할 사람은 오직 범죄자뿐입니다.”
백미로 꼽히는 금언이다. 취임사에서 발췌한 대목인데, 여러 갈래의 해석이 가능한 명제다. 우선 무고한 사람이 검찰을 두려워하는 사회가 돼서는 안 되며, 역으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검찰이 두렵지 않은 사회가 돼서도 안 된다는 뜻이다. 즉, 죄 없는 사람을 무리하게 기소하여 겁을 주거나, 범죄자의 죄를 덮어주어 겁을 상실하게 만든다면 일을 제대로 하는 검사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명언은 범죄자를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검찰을 향해 일을 똑바로 하라는 주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자신의 발언이 상식과 진리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정권이 교체되면 과거의 발언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내로남불’ 비판을 받는 사람이 비일비재한데, 한동훈 장관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동훈 스피치』는 자신의 발언을 곱씹어보며 늘 초심을 잃지 말라는 편집자의 마음도 담겨 있다. 동영상은 많이 보았을 테니 이젠 활자로 의미를 곱씹으며 한 장관의 ‘스피치’를 거듭 새겨보자.
책을 읽다 보면 신임 검사로 ‘빙의’가 되기도 하고, 야당 의원이나 기자가 되어 한 장관을 지근거리에서 질의하거나 취재를 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불의 앞에서 소신을 감추지 않는 한동훈 장관의 워딩을 만끽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