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 책은
우리가 자주 쓰는 ‘말’에는
사람들의 어떤 ‘생각’이 담겼을까?
- 빅데이터 전문가가 말의 바다에서 길어 올린 가장 신선한 말들
‘왜 이런 말을 하지?’ 빅데이터 분석 기업 ㈜바이브컴퍼니의 정유라 연구원이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다. 사람들이 온라인 공간에 남긴 말들은 소셜 빅데이터로 저장되는데, 정유라 연구원은 이를 수치화한 뒤 의미를 발굴하는 작업을 하다 보면 무미건조한 데이터에서 시대의 생생한 표정을 읽을 수 있다고 한다. 이런 평소의 생각을 담아 《말의 트렌드》를 집필한 저자는 “거칠고 삭막하며 도무지 알 수 없는 게 ‘요즘 말’이라지만, 모든 언어에는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애정이 방울방울 담겨 있다. 사회를 향한, 내가 속한 집단을 향한, 내가 맺는 관계를 향한 애정이 담긴 언어들을 기꺼이 소개하고 싶다”라고 한다.
이 책은 소셜 빅데이터 속 광활한 ‘말의 바다’에서 시대적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언어들에 주목한다. 예를 들어, 신조어 ‘별다줄’에 대한 분석은 이렇다. ‘별걸 다 줄인다’는 언어 현상마저 줄여서 말하는 세태를 보며 누군가는 ‘국어 파괴’라며 혀끝을 쯧쯧 차지만, 줄임말 입장에서는 좀 억울한 일이다. 문화체육관광부를 문체부로 줄이는 것처럼, 매일 시간에 쫓겨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고등학생들에게는 그 말이 그만큼 익숙하기에 ‘삼김’이라고 줄여서 말할 뿐이다. 이렇듯 줄임말은 사용하는 이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힌트이자, 소통의 노력을 아끼는 단축키 역할을 한다.
‘To meme or not to meme that is the question.’ 새로운 말들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해력은 밈을 활용하는 능력, 즉 ‘밈해력’이라고 지적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밈’을 알지 못하면 요즘 대화에서 말뜻의 절반밖에 이해하지 못한다. 고사성어 대신 촌철살인의 밈을 통해 행간에 뼈와 유머를 녹이는 요즘 대화는 새로운 문화 코드가 통용되는 소통 양식을 보여준다.
당신이 사용하는 언어에도
새로고침이 필요하다!
- ‘밈해력’부터 ‘별다줄’까지, 맥락과 뉘앙스가 결정하는 요즘 말 사용법
“때밀이계의 에르메스, 때르메스 꼭 사세요!” 호들갑스러운 이 영업 멘트는 한번 들으면 좀처럼 잊을 수 없는 강력한 영업력을 자랑한다. 최상위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를 접사로 사용하여 제품의 이미지를 강렬하게 어필하고 단숨에 마음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1인 생활의 대중화을 알리는 접사 ‘혼-’(혼밥·혼술·혼영), 한국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반영하는 ‘K-’(K-pop·K-방역·K-장녀) 등 신조어에 자주 쓰이는 접사는 시대의 가치관과 관심사를 보여준다.
떼어놓고 보면 그저 뜻 모를 신조어였던 요즘 말이지만 묶어 놓고 보면 일정한 공통점을 보인다. 《말의 트렌드》는 요즘 말들의 이러한 경향성에 주목한다. 얼굴, 천재, 햇살, 맛집… 평범하기 그지없는 단어들이 서로 만나는 순간 ‘얼굴 천재’, ‘햇살 맛집’이라는 신박한 조합의 ‘하이브리드 언어’가 탄생한다. 그 밖에도 시너지를 내는 관계의 언어 ‘묶임말’, 연결되고 확산하며 트렌드를 이끄는 ‘해시태그’, 클릭을 부르는 새로운 문법 ‘콘텐츠 제목’ 등 유행하는 말들의 공통점을 분석한다.
이 책은 새로고침이 한창인 말들의 현장도 살핀다. 언어는 시대상을 반영하지만, 때로는 시대의 변화를 이끌기도 한다. 웬만한 평론가 저리 가라 할 만큼 정교해진 ‘K-드라마의 감상 언어’는 역으로 그 기준을 만족시키려는 콘텐츠 업계의 분발을 이끌었고, 그 결과 〈오징어 게임〉과 같이 한국을 넘어 세계를 열광케 하는 K-드라마가 나올 수 있었다. #온더테이블, #오늘의집, #인생샷 등 인증 언어의 유행은 식탁 위, 집안 인테리어, 여행의 풍경을 송두리째 바꾸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관계의 언어, 심리학의 언어, 광고의 언어 등 세상과 연결되어 한창 동기화 중인 말들의 업데이트 목록을 정리했다.
세대 간 소통이 단절된 시대,
MZ세대는 왜 그렇게 말할까?
- 스불재, 웃수저, 민초단… ‘요즘 말’을 만들어내는 ‘요즘 애들’의 속사정
“걔는 MZ세대라서 그래.” “MZ세대 말은 못 알아듣겠어.” 사회 곳곳에서 불통의 범인으로 ‘요즘 애들’, 즉 MZ세대가 지목되고 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생각과 영문 모를 신조어를 내뱉는 당황스러운 존재인 동시에, 사회문화 트렌드를 주도하는 표본 집단이기도 하기에 좋든 싫든 전 사회적으로 MZ세대는 끊임없는 탐구 대상이 되고 있다. 이 책은 ‘말의 트렌드’를 형성하는 중심축으로서 MZ세대의 언어 습관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역으로 MZ세대를 이해하려고 한다.
MZ세대의 말을 통해 살펴보는 그들의 모습은 이렇다. 그냥 ‘구수한 원두’가 아니라 ‘에티오피아 내추럴 원두’를 고집하고, ‘노란색’이 아니라 ‘버터 한 방울 들어간 노란색’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민초단/MBTI/쪄죽어도뜨거운물샤워협회 등 느슨한 연대로 좋아하는 것을 따라 자유롭게 헤쳐모이고, 선망하는 ‘이름’을 따라서 소비하고 인증하며, 덕질이 일상화되어 무언가에 ‘미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MZ세대의 이런 모습이 자기중심적이고 유난을 떠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근원을 파고들면 ‘자존감 도둑’이 가득한 현실을 살아가면서도 자신을 지키려는 절실한 노력, 타인만큼 나도 소중하기에 서로의 선을 존중하며 관계를 지키려는 노력이 있다. 불황 속에서 성장한 이 세대는 ‘N포’라는 무거운 굴레를 뒤집어썼지만, 그럼에도 이들의 언어를 ‘텐션과 사랑이 넘치는 요즘 말’이라고 정의하며 이해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불재의 뜻을 알아도 소통이 안 되는 두 집단은 영원히 소통할 수 없고, 싸강을 몰라도 말이 통할 사람들은 통한다. 소통에서 어휘보다 중요한 것은 태도이기 때문이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결국은 새로운 말, 새로운 대상, 새로운 시대를 대하는 ‘태도’가 모든 것을 판가름한다. 새로운 언어는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이끄는 법. ‘요즘 말’에 나의 언어 세계를 동기화하여 언어의 지평을 확 넓혀보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