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원로 법조인 이진강의 80년 인생 고백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부장검사, 대한변호사협회장을 거쳐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장까지, 법조 3륜과 공익 분야를 두루 경험한 원로 법조인 이진강의 치열한 삶의 고백을 소개한다. 1965년 대학 재학 중 제 5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법무관 복무 후 1971년 검사로 임명된 저자는 이후 23년간 검사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한 후 변호사로 개업하여 서울지방변호사회장, 대한변호사협회장까지 역임한다. 이어 법조계를 잠시 떠나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등 공익 분야에 투신하기도 한 저자는 이후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함으로써 검찰ㆍ법원ㆍ변호사협회의 법조 3륜을 모두 경험한다. 대한민국 법조계의 산증인이자 존경할 만한 사회의 어른인 이진강 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의 자서전을 통해 우리나라 법조인의 삶과 한국 현대사의 한 흐름을 엿볼 수 있다.
베트남전쟁 중 살인사건에서 12ㆍ12 내란사건까지
이 책에는 저자의 어린 시절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삶의 궤적이 담겨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은 검사로서, 변호사로서 담당한 사건 기록이다. 저자는 군 법무관 시절 베트남전쟁에 파병되어 경험한 부대 내 살인사건에서부터 강릉지청 검사로서 조사한 탄광 내 승강기 추락사건, 그리고 변호사 개업 이후 변호에 참여한 12ㆍ12/5ㆍ18 내란사건 재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건들을 소개한다. 이러한 사건들을 통해 저자의 균형 잡힌 객관성, 가슴 따뜻한 인간미와 더불어 법조인의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사실 저자는 중앙수사부 1과장 시절이던 1987년, 〈중앙일보〉 신성호 기자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1보 특종을 터뜨릴 때 검찰 내부에서 박 군의 사망 사실을 확인해 준 장본인이다. 이렇게 세상으로 펴져 나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결국 독재정권을 쓰러뜨리고 민주화를 불러오는 데 결정적 동력을 제공했다. 당시의 사연을 본인이 직접 집필하지는 않았으나, 권말에 수록된 〈신동아〉 2007년 인터뷰를 통해 당시의 실상을 확인할 수 있다.
개인적 아픔을 이겨내다
검찰 출신 법조인의 자서전이라면 으레 딱딱하고 엄격한 분위기일 것이라 상상하기 쉽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는 개인적인 아픔과 가족사, 즐겨 읽는 문학 작품도 솔직하게 다룸으로써 독자의 인간적 공감을 자아낸다. 1980년대 중반, 시국이 혼란한 가운데 중앙수사부에서 밤낮 없이 수사에 몰두하던 저자는 그만 건강을 잃고 죽음 직전까지 내몰린 데 이어 잘나가던 검찰 조직에서도 물러나는 좌절을 겪는다. 이러한 고통 속에서 건강을 되찾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한 저자와 그에게 헌신적인 도움을 아끼지 않은 법대 동기동창 출신 아내의 삶의 이야기는 법조인뿐만 아니라 삶에 지쳐 있는 이들, 무엇이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인지 고민하는 독자들에게도 하나의 지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