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 과학기술사가의 비평적이면서 객관적인 서술
1995년 말, 일본의 고속증식로 몬주에서 나트륨 누출에 의한 화재 사고가 일어나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어났다. 이에 1996년 일본 정부는 원자력 정책 원탁회의를 개최한다. 이때 일본의 대표적 반핵 활동가이자 시민과학자로 유명한 다카기 진자부로가 물리학사 및 원자력 개발사 전공자인 저자 요시오카 히토시를 원탁회의에서 시민 입장을 대변하는 학자로 추천하였고, 이후 그는 원자력자료정보실 및 몬주사고종합평가회 멤버, 내각부 원자력위원회 전문위원, 경제산업성 에너지조사회 임시위원 등 일본의 원자력 에너지 관계 정부 심의회 위원을 맡으며 활발히 활동한다. 요시오카 히토시는 원자력 업계 관계자들이 다수를 이루는 위원회에서도 원자력 개발 이용에 비판적인 입장을 일관되게 개진하고 원자력 정책의 민주주의적 통제와 시민 참여 방안을 제안해 왔다. 일본의 과학기술 통사를 저술하는 등 정력적으로 학술 활동을 하면서도 마지막까지 탈원전 전문가 조직인 원자력시민위원회에서 단장을 맡아 활동하는 등 시민들과도 호흡했던 학자였다.
이 책은 처음 원자력 개발에 착수하고 후쿠시마 제일 원전 사고에 이르기까지의 70년간, 일본의 원자력 개발이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를 설명한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고서도 세계에서 보기 드문 “안정 성장”을 구가해 온 일본의 원자력 개발이지만, 핵연료 사이클 시설 관련 문제나 사용후연료 처리 등 산적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강한 반발과 문제를 일으키며 각종 문제를 일으켜 왔다. 책에서는 특히 사건 사고 연발을 상세하게 보여주면서 해결 과정에서 드러나는 각종 문제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일본 원자력 개발 이용 체제의 전개 과정을 6단계로 구분하여 제시한다. 시기마다 주요 인물 및 사건과 시대의 특징 및 국제 정세와 국내 사정을 충실하게 담아 일본의 원자력 개발 이용의 역사를 밀도 있게 전한다. 특히 원자력 관련 논의들에서 항상 문제가 되는 정보 부재와 전문가주의, 통산연합으로 표현되는 관료 집단과 지자체의 갈등 등 여러 측면에서 원자력 개발과 이를 둘러싼 사회의 여러 모습이 통사라는 서술 방식을 통해 일관되게 드러난다. 책은 정부, 관료, 산업계와 학계 및 민간에 이르기까지 원자력 개발 이용의 배경에 있는 일본 국내의 사회 변동을 거시적 시점에서 바라보며 일본 원자력 개발 이용의 전체상을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이로써 독자들은 일본 원자력 개발 이용을 둘러싼 국제 관계의 변화까지 다각도로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비평적이면서도 원자력 개발 추진 당사자들에는 비공감적인 태도로 책을 저술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탈원전 시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중립적 자세로 일본 원자력의 사회사를 다각도에서 살핀다. 이 책은 단순한 원자력에 관한 과학기술 발전사가 아니라 전후 이루어진 세계 원자력 개발사와 함께 일본에서 발생했던 다양한 문제들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기술하고 있다. 특히 저자는 핵에너지 기술이 지닌 본질적인 이중성(민군양용성)을 지적하며 ‘평화를 위한 원자력’이라는 이상이 얼마나 다다르기 어려운 것인지 증명한다.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통사를 읽으며 독자들은 원자력 개발 이용의 역사와 앞으로의 과제도 생각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