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 작품 개평
1부는 활달한 시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시들로 이루어져 있다.
피아노를 마치 바뀐 주인을 낯설어 하는 애완 동물에 빗대어 표현한 시 ‘피아노’는 피아노 초보자 시절을 떠올리게 하면서, 읽다 보면 저절로 웃음을 짓게 한다. 또한 시 ‘선풍기’에서는 ‘바람 파이프’만 묻는다면 지리산 바람도 전기, 가스, 수돗물처럼 끌어올 수 있다고 상상하는가 하면, 시 ‘팔씨름’에서는 아파트 공사장의 포크레인이 마주보이는 집의 거실에서 벌어진 고등 학생 형과 삼촌의 팔씨름 시합을 구경하다가, 팔씨름에서 이긴 형이 만세를 부르자 엄지를 치켜세우며 “너 정말 짱이로구나./나랑 한번 겨뤄 볼래?”라고 소리친다고 상상한다.
그 밖에 아이에게 옆구리를 차인 축구공이 뻥! 날아올라, “홧김에/하늘을 그냥/쾅! 들이받는다.”고 한 ‘홧김에’나, “가지런히 머리 빗고/라일락 앞에 섰더니//아빠 손에 들린 카메라/코를 벌름거린다.//나보다 먼저 찍히는/연보라 진한 향기.”라고 노래한 ‘사진 찍기 1’ 등의 시에서도 신현배 시인 특유의 천진한 상상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1부는 이처럼 동심적 상상력이어서 더욱 매력을 주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2부는 감각적 표현을 사용하여 이미지가 선명한 시들을 모았다.
“바다라도 낚을 듯/설레는 갯바위 낚시//손 떨리는 입질에/잽싸게 릴을 돌리면//미끼를 삼킨 파도가/줄줄이 끌려온다.”(‘바다 낚시’)에서 보듯, 감각적인 표현으로 선명한 이미지를 나타내 보여 준다. 동시조가 시조의 형식에다 천진한 동심적 상상력을 이미지로 빚어 내는 장르라는 특성을 살려, 시의 본령을 지키면서 이미지에 충실한 작품들을 2부에서는 쉽게 만날 수 있다. “꽃샘바람보다 먼저/ 눈을 뜬 망울들이//겨우내 끼고 있던/벙어리장갑 벗고//다 같이 가위바위보/하얀 손을 내민다.”는 ‘목련 1’, “덧니처럼 삐쭉빼쪽/돋아난 바위들이/치약 거품 같은/안개에 싸여 있다./오늘은 산이 모처럼/양치질을 하나 보다.”고 노래한 ‘봄산 2’ 등을 보면 동시조의 표본을 보는 듯 시인의 특기가 잘 드러나 있다.
2부에는 바다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여러 편 실려 있어 색다른 정취를 느끼게도 해 준다.
3부는 청각적인 이미지를 추구한 작품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종소리, 매미 소리, 귀뚜라미 소리, 쓰르라미 소리, 빗소리, 북소리, 천둥 소리, 범종 소리, 죽비 소리, 풍경 소리 등 다양한 소리들과 그 청각 현상을 뚜렷한 이미지로 처리해 보여 준다. “뙤약볕 매미 소리도/허물 벗고 나왔겠지.”(‘매미 2’)라거나, “천 년쯤 살았으면/목청도 녹슬 만한데//울리는 그 소리만은/하늘빛을 닮았다.//날마다 하늘을 깨워/그렇게 맑은가 보다.”(‘범종’)라는 표현들은 가장 허구적이면서도 사실적이다. 따라서 환상적 가능성과 현실적 개연성을 동시에 인지시켜 주며 그만한 재미성을 지니게 마련이다.
이러한 특징은 ‘바위’라는 시에서도 볼 수 있는데, “잠자리가 잠시 앉아/졸다 간 그 자리에//나도 가만 누웠다가/깜박 잠이 듭니다.//잠자리 꾸다 만 꿈을/내가 대신 꿉니다.”에 나타나 있듯이, ‘잠자리’와 시적 화자인 ‘나’의 교감을 내면적인 꿈의 경지로 승화시키고 있다. 시적 자아가 자연에 몰입된 광경으로 이끌어 가며 자연과 합일된 세계를 보여 준다.
4부는 자연 친화적인 서정시들과 동심의 눈에 비친 시골 풍경을 그린 시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뙤약볕 여름 한낮/나무는 서서 졸고//다리 뻗고 길게 누워/그림자가 대신 잔다”는 ‘여름 한낮’이나, 미루나무 잎새들이 까치들의 힘찬 날갯짓을 부러운 눈길로 여름내 지켜보다가 “가을날/바람을 타고/하늘을 맘껏 날아 본다.”는 ‘미루나무 잎새’ 등의 시에서는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정감 있게 펼쳐 보인다. 또한 “바람도 견디다 못해/주춤주춤 물러난다.”는 고추 널린 풍경을 그린 ‘고추 말리는 날’, “겨울 방학 돌아오자/할머니 댁에 갔다.//나보다 한 발 앞서/자리잡은 별난 손님.”이라며 메주를 독특하게 표현한 ‘메주’ 등은 시골 집 풍경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그려 놓았다.
5부는 도시 변두리에 사는 아이들의 생활 터전에서 건져 올린 작품들이다. 그 곳에는 “풍뎅이 한 마리가/방 안에 뛰어든 듯/구급차 한 대가/거리를 휘젓는다.”(‘구급차’)거나, “사람 좋은 웃음을/함께 튀겨 내면서//골목길에 자리잡은/뻥튀기 할아버지”가 있어 “우르르 골목길 열고/쏟아지는 튀밥들//냄새가 한 자루 풀려/온 동네가 고소하다.”(‘뻥튀기’) 뿐만 아니라 “먼 발치에서 보면/우리 집은 한 점 불빛”이고 알전등 같은 사랑이 밤마다 켜져 있지만(‘불빛’), “연립 주택을 헐고/새 아파트가 들어선다.”며 “버려진 누렁이 같은 건물/한 동만을 남긴 채.” “옥이네도 준이네도/이삿짐 싣고 떠났다.”(‘빈집’)
6부는 한국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어린이들에게 우리 것을 알려 주고 우리 민족의 얼을 일깨워 주는 작품들이 주류를 이룬다. 탑, 산성, 보신각 종소리, 완도배, 암각화, 박물관, 옛날 지도 등 전통적인 소재를 다루었다.
‘산성 2’에서는 “붉은 수건 동여 맨/진달래 군사들이//갑옷 입은 소나무들/지켜선 산성으로//나른한 봄날을 틈타/우르르 쳐올라온다.”고 하여 옛 산성을 지키는 우리 나라 군사들을 ‘갑옷 입은 소나무’들로 나타냈다. 또한 바위에 고래 그림이 그대로 새겨져 있는 것을, “청동기 시대라면/3천 년도 넘었는데,//바위는 고래들을/잊을 수가 없었나 봐.//그 모습/그대로 담아/간직하고 있으니.”라고 상상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