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이크 양식의 성경 이야기 그림
모자이크는 가 장오래된 미술양식 중 하나이다.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에서 모자이크는 가장 보편적인 생활 장식 미술에 쓰였고, 비잔틴 건축물에서는 기둥과 벽 등에 광범위하게 활용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엔 안료의 발달로 벽 장식에서 모자이크의 인기가 떨어지기도 했지만, 새로운 표현 기법으로 라파엘과 같은 화가가 그 계보를 이어 주었다. 종교화에서는 물론 꽃이나 동물들을 작은 유리조각 혹은 세라믹 조각으로 이어서 그려나간 고대와 중세 유럽과 중근동의 장식미술을 감상하다 보면 모자이크만의 독특한 형상미가 눈으로 또 마음으로 다가오게 된다. 모자이크만의 형상미란 어떤 것인가? 그것은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색면을 잘게 쪼개어 이어 붙여 표현한다는 측면에서 색에 대한 분석적 옵티컬 연구를 수반하다는 점이다. 이는 색을 아닐로그 안료의 섞는 행위에서 최소 단위의 절대색을 잘게 썰어 스팩트럼을 디지털적으로 직접 핸들링하는 작업으로 이어진다. 세잔느가 이런 면분할 물감 칠하기로 풍경을 그린 것은 회화사에서 ‘물감을 단위로 끊어 모자이크처럼 이어나간’ 최초의 사건처럼 여겨지게 되었고, 이는 곧 인상주의라는 새로운 미술의 발견으로 이어지게 된다.그 이후 모자이크 스타일의 미술은 그 가짓수를 일일이 나열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발전해 왔다.
다른 한 측면은 무언가를 뜯어 붙이거나 나무 조각을 쌓듯 랜덤하게 한 유니트 한 유니트를 이어가는 행위가 만들어 내는, ‘순간의 집합체’가 던지는 화합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유니트를 하나씩 이어간다는 것은 가장 견고한 구조를 드러내주는 방식이기에 여러형태의 민속 미술과 주요 현대미술의 언어로 자주 등장해 왔다. 우리의 전통 자수나 나전 칠기 같은 공예품 속에서도 이런 모자이크가 주는 감흥을 느낄 수 있으며, 구스타브 클림트나 훈데르트바서, 가우디 같은 아티스트의 회화와 건축 장식을 통해서도 모자이크적인 느낌이 압도하는 조형미가 무엇인지 잘 알 수 있다.이호연의 성경 이야기 연작들에서도 이런 모자이크 스타일만의 친근함과 단단함이 느껴진다. 한편으로 모자이크 스타일로 작업한 다른 화가들과 구분되는 그만의 특징이 있다. 전체적으로는 옵티컬의 차가운 논리에 따른 합리성에 의존한 모자이크의 전개가 아니지만 빛이 번지는 틴트의 과정에서는 옵티컬의 조화를 극대화한 모자이크를 구현한다. 무의미한 장식적 패턴의 모자이크로만 보이지 않는 이유는 이 모자이크가 그림의 형상에 적극적으로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계적인 모자이크가 아니라 다른 성격의 면과 함께 다양한 크기와 모양으로 면을 구성하여 그림 한 폭이 주는 맛을 그림마다 다르게 표현한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고전적인 종교화의 느낌과 장식적인 모자이크의 화려함, 인상주의 같은 빛의 느낌 모두를 그의 화폭에서 만나게 된다. 이 책자에 수록된 16점의 작품은 그의 초기부터 최근 작업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들을, 모자이크의 변환이라는 일련의 흐름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컴필레이션한 것이며, 한 장 한 장은 명화를 감상하듯 감상할 수 있게 편집하였다. 회화 작업을 통해 한 땀한 땀 신앙에 다가가는 그의 경건함은 물론, 밝은 빛으로 번지는 소망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색면 하나하나에 사랑의 소식이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기에.......
서로 이웃한 작은 산들처럼
작은 나라를 만들어 사랑을 나누고 노래하는
바로 그곳에 영광의 모자이크가 있어요.
성경 이야기를 새로운 스타일의 그림으로 묵상하는 기회
어떤 화가들의 눈은 아주 특별합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말하자면, 화가의 눈에 세상은 돈과 명예와 권력의 관계로 보이지 않고, 점과 선과 면의 관계로 보입니다. 그래서, 화가의 눈에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의존하거나 대립하는 것이 아닌 이 색과 다른 색의 공존입니다.
이호연 화가의 색들은 공존합니다. 이웃한 색들이 예측할 수 있는 옵티컬의 범주에서 선택된 색들이기보다 화가가 꿈꾸는 완성된 그림을 위해 무심코 선택하듯 가져온 색들입니다. 그래서 이웃한 색과 비슷한 색일 수도, 보색일 수도 있으며, 유난히 그 색만 두드러진 색일 수도 있습니다. 색깔 하나하나의 개성이 뚜렷한 모자이크를 이루어 나가지만 부분적으로 대상을 그려나가는 전통적 모자이크 그림과는 다릅니다. 무엇을 그렸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완성된 그림을 거리를 두고 오랫동안 ‘묵상’을 하듯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호연만의 "빛의 묵상"을 감상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가 추상의 언어를 익혀 그 "묵상법"에 참여해야 합니다.
이호연 화가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라 성경 속 이야기를 많은 그림의 모티브로 삼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표면적인 뜻으로 이해하지 않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살피는 일이 중요하듯, 이호연 그림의 소재인 성경 속 ‘장면’들은 그 내재한 뜻을 찾아가는 그만의 "묵상" 과정을 통해서 면과 색으로 분해됩니다. 그래서 구상이지만 추상입니다. 추상을 구성하는 색과 형태의 울림이 곧 이호연만의 신앙 묵상법입니다. 화사하게 퍼져나가는 따뜻한 색조를 비집고 냉철하고 시원한 청색 조가 스며들거나 곁에 함께 머무릅니다. 강렬하게 대비를 이루는 보색들은 산과 바다의 모양이 되어 그 속에 안주합니다.
눈에 선명히 보이는 물질적 세상의 상식과 언어의 표면에 쉽게 안착할 수 있는 일차원적인 메시지를 넘어, 우리가 모르는 구도의 힘과 그 근원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추상을 다룰 줄 아는 화가에게 의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빛으로 "묵상"하는…….
- 이호백(재미마주 대표)의 작품 설명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