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과 서양, 역사의 명암을 뒤바꾼 키워드 “해금”
1500년부터 1800년까지 3세기 동안 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생산성 높은 경제를 자랑했다.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2가 아시아에 거주했으며, 세계 생산의 약 80퍼센트를 아시아가 담당하고 있었다. 특히 중국의 산업 총생산량이 전 세계의 33퍼센트에 이르렀는데, 이는 같은 시기 유럽 전체의 산업 총생산량을 합친 것보다 많은 수치다. 그러나 불과 100년 후 유럽은 단숨에 아시아의 경제를 뛰어넘고 역사의 승자가 되었다. 이 책 《해금》은 동서양의 부가 역전되고 서양 우위의 역사가 지속되게 된 근원을 찾아 대항해시대로, 그리고 해금령이 시작된 명·청시대와 근대화의 여명이 비친 조선, 일본의 개화기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개해의 유럽, 해금의 동아시아
제1편 ‘개해의 유럽’에서는 중세의 암흑을 벗어난 유럽인들이 자본주의, 과학기술로 무장한 채 해양 개척에 뛰어드는 대항해시대 이야기가 펼쳐진다. 유럽인들은 기독교 전파를 해양 진출의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사실 그들을 바다로 이끈 것은 부에 대한 열망이었다. 동방무역 선단이 아시아에서 향신료를 싣고 무사히 돌아오면, 선단과 투자자는 많게는 60배의 이익을 거둘 수 있었다고 한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동방 무역항로를 개척하고, 무력으로 개척지를 제압해 가며 강력한 해상 네크워크를 형성하는 과정, 그리고 네덜란드와 영국에 해상패권을 넘겨준 이후까지의 과정을 파노라마처럼 펼쳐서 보여준다.
2편 ‘해금의 동아시아’에서는 중국과 조선, 일본으로 시선을 돌려 당시 동아시아 3국의 상황을 살펴본다. 송·원대에 중국은 세계 최고의 해양국가였다. 동남아시아, 인도를 거쳐 페르시아만의 호르무즈로 연결되는 해상 실크로드를 개척했다. 그러나 명나라가 들어선 이후 돌연 해금령을 실시하고 고립의 길을 선택한 중화세계가 이후 유럽 열강에 철저히 짓밟히고 아편전쟁으로 이어지게 되는 19세기 중반으로 함께 떠나본다.
근대화의 성공과 실패 원인 탐구
3편에서는 반해양·쇄국 정책으로 위태로운 안정을 이어가던 청, 조선, 일본에 대한 서양 세계의 도전과, 그에 대한 3국의 대응, 개혁의 성취와 실패를 본격적으로 파헤친다. 중국은 아편전쟁 후 서양의 신식 무기와 기술을 받아들이려는 개혁 시도를 하고, 조선도 외세의 위협 속에서 일련의 개화정책을 추진하였으나 성공적이지 못했다. 청제국의 양무운동, 변법자강운동, 조선의 갑신정변, 갑오개혁 등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놀랍도록 일사분란하게 사회 전 분야에서 근대적 체제로의 전환에 성공한다. 3편에서는 쇄국과 개항, 전쟁으로 숨가쁘게 이어지는 세 나라의 굴곡진 근대사를 한눈에 조망해 볼 수 있다.
4편에서는 동양 3국이 근대화에 실패하고 성공한 원인을 집중 탐구한다. 저자는 동아시아의 근대화 과정에서 핵심적인 부분은 기술과 문물의 도입이 아닌, 전제적 정치체제를 근대적인 분권 정치체제로 전환하는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청나라와 조선은 왕권을 위협하고 신분질서를 깨뜨리는 개혁은 절대 용납하지 않고 서양의 앞선 무기와 문물만 받아들이려 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근대화에 실패했고, 일본은 막부를 해체하고 입헌정치체제를 확립하는 과감한 변혁으로 사회를 뿌리부터 개혁할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해금의 역사를 통해 현재를 돌아보기 위한 책
유럽에서 기술이 발달하고 자본주의가 일어나 사회변혁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을 때, 동양은 관념적인 유교적 가치가 지배하고 상공업 활동을 천시하는 농업 중심의 폐쇄 경제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경제적인 풍족에 자만하여 변화의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또한 외부의 힘에 의해 문호를 개방할 때까지 내부 갈등에 국력을 소진하고 있었다. ‘해금의 역사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를 이 책은 묻고 있다. 과거의 실수를 지금도 되풀이하고 있지 않은가,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