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연약한 존재’에 다가가기
책은 12개의 짧은 장으로 구성된다. 제목 없이 이어지는 글들은 단순하면서도 비장하게 다가온다. 처음 세 장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출생 과정에서 절대적인 분리를 경험하는 두려움에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새로 태어난 인간은 외부 세계를 거부하기 위해 자신을 가두길 원하게 된다. 저자는 다음 장에서 파괴함으로써만 달랠 수 있는 존재의 고통을 위로해주는 것은 생물학적이든 아니든, 여성이든 아니든, 어머니라는 존재의 절대적인 사랑임을 강조한다. 이어지는 장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살인적인 증오심을 없앨 수 있는 이러한 사랑에 대해 채워진다. 타인에 대한 이 무한한 사랑 덕분에 사람은 두 번째 다른 사람, 세 번째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게 된다.
“타인에게, 나와 비슷한 존재에게 그저 도움을 구하며 유한한 존재로서 갖는 이 고독을 감내할 수 있지 않을까? 어떤 관계를, 말하자면 나의 개별성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죽음 앞에서 느끼는 끔찍한 고독감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이 놀랍고도 생생한 관계를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1장」)
“우리는 “서로에 의한” 존재일 것이기에 “서로를 위한 존재”일 수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윤리학은 일종의 인류학이므로, 우리는 우선 “서로에 의한 존재”, 즉 다른 인간의 무한한 사랑에 의한 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서로를 위한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4장」)
“나의 공포, 극심한 두려움을 달래주는 타자는 내게 무슨 말을 할까? 그는 이렇게 말한다. “너는 죽지 않아. 내가 너를 죽음에서 구할 거야. 너에 대한 내 사랑은 죽음을 초월해. 너를 위해 죽을 수 있어. 너를 너무도 사랑해서 너 대신 죽을 수 있어. 이제 죽음은 더 이상 네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야.” (「7장」)
철학을 전공한 뤽 다르덴은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나는 영화를 만드는 동안 이타성의 철학자 레비나스를 읽고 또 읽었다. (…) 인간의 얼굴에 대한 레비나스의 글에서 나는 해방감을 느꼈다. 레비나스를 통해 생각하기, 그리고 영화로 생각하기는 모두 하나의 장면과 마주하는 일이다. 그것은 바로 얼굴과 얼굴이 서로를 응시하는 장면이다.” 그동안 다르덴 형제의 작품들이 보여준 면면을 보면, 그가 타자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강조한 레비나스의 사상에 매료된 건 당연해 보인다. 처음 자신의 에세이를 모은 이 책에서 뤽 다르덴은 여전히 유효하고, 진행 중인 질문들을 끝없이 던지며 다르덴 형제 영화관(映畵觀)에서 출발한 철학적 사유를 더해간다.
“내 두려움을 달래줄 너의 시선은 어디에 있는가?”
“다르덴 형제는 초기 작품부터 지금까지 줄곧 빈곤, 실업, 소외, 차별 등의 사회 부조리를 삶과 죽음, 사랑과 용서, 공감과 연대라는 인류 보편의 틀 안에서 다루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저자는, 이 책에서 서로를 나누는 ‘관계 맺기’만이, 서로를 인정해주는 ‘함께하기’만이 힘겨운 현실을 견뎌내는 길이라 역설하고 있다.”
-「옮긴이의 말」에서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구체적이면서도 매우 세련된 접근 방식으로 영화적 미학과 내러티브를 새롭게 해왔다. 그것은 지극히 인간을 향한 시선을 담은 다르덴 형제 영화의 정체성을 구축했다. 영화에서 숭고하게 표현된 그들의 타자성에 대한 철학은 뤽 다르덴의 에세이 『인간의 일에 대하여』에서도 계속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삶과 죽음, 책임과 용서 등 다르덴 형제의 영화가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주제의 핵심을 뤽 다르덴의 글쓰기와 사유로 파헤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 인간을 비추는 빛이기도 하다.
마침내 우리는 〈자전거 탄 소년〉의 두 인물 시릴과 사만다를 다시 돌아본다. 그 누구도 신뢰할 수 없었던 소년이 겪었을 고통과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게 해준 절대적 사랑의 관계를 재발견하게 된다. 이 책은 영화 〈자전거 탄 소년〉이라는 한 작품에서 시작되었고, 동시에 ‘인간의 일’을 바라보며 걸어온 영화감독 다르덴 형제의 삶과 인간을 향한 시선을 여실히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는 2022년 칸영화제 75주년 특별상 수상 작품 〈토리와 로키타(Tori et Lokita)〉가 한국에서 첫선을 보이는 2023년 5월,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예술은 인간의 고통을 표현한다. 표현하지 않고는 달리 방법이 없어 보인다. 예술 작품을 볼 때마다 우리는 놀라운 공감의 능력을 되찾거나, 우리의 연약한 모습을 함께 나누거나, 인간적인, 그토록 인간적인 공통의 무기력을 발견한다. 죽는다는 두려움, 타자의 무한한 사랑, 타인을 위한 고통을 느끼기 때문이다.” (「12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