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 담기 close

장바구니에 상품을 담았습니다.

성자 셰익스피어

성자 셰익스피어

  • 우영창
  • |
  • 문학의문학
  • |
  • 2010-06-25 출간
  • |
  • 371페이지
  • |
  • 148 X 210 mm
  • |
  • ISBN 9788943103682
판매가

11,000원

즉시할인가

9,900

배송비

2,300원

(제주/도서산간 배송 추가비용:3,000원)

수량
+ -
총주문금액
9,900

※ 스프링제본 상품은 반품/교환/환불이 불가능하므로 신중하게 선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출판사서평




유려한 문체에 스피디한 문장, 여전히 솟구치는 재치와 반어!

세상의 중심에서 누추하고 속되게,
외롭고 서럽게 존재하는 이들에게 바치는 진진한 소야곡!

‘범속한 삶으로의 트임!’
-김병익(문학평론가)

‘한국문학에서 실종된 40~50대 남성들이 위선자나 꼰대나 패배자만이 아니라 엄연한 자존감과 빛나는 꿈을 지닌 ‘성자’일 수 있음을 역설한 작품!’
-김별아(소설가)

▶ 변두리 인생의 우스꽝스런 한여름 밤의 꿈과
페이소스가 빚어내는 일탈의 미학!

2008년 제1회 <문학의문학> 5천만 원 고료 장편 공모에서 ‘성과 돈이란 두 줄기 욕망이 오늘의 세태 속에서 어떻게 힘차게 요동치고 있는지 그 현장의 모습들을 그려내고 있는데, 그 묘사는 스피드하며 문체는 박력 있고 어투는 함축적이면서 그 풍경에 대한 소감은 오히려 냉철해서 ‘쿨’하다. (……) 천박한 세계를 생생하게 드러내면서도 값싼 인문주의적 센티멘털리즘으로 비난하지 않고, 그것의 싱싱한 힘을 보여 주면서도 그 ‘어두운 욕망’의 세계가 지닌 비인간적인 속성을 도외시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이의 없이 합의했다’ 라는 김병익, 박완서, 황석영 본심 심사위원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당선된 『하늘다리』 작가 우영창이 2년간 심혈을 기울여 야심 찬 후속작을 출간하였다.

시대의 변두리로 밀려난 한 힘없고 ‘빽’없는 40대 가장의 애환과 우스꽝스런 한여름 밤의 꿈, 범속한 현실의 탈출구로서 성자되기를 꿈꾸는 인간적 고뇌와 페이소스가 빚어내는 일탈의 미학을 보여 주는 《 성자 셰익스피어 》가 바로 그것이다.
일회적이고 사소한 것에서 영원하고 근원적인 것을 유추하는 능력이 있어 성자적 자질이 보이면서도, 인구 13만의 서울 근교 소도시에서 명함에 ‘아시아바둑문화연구원장’의 번듯한 이름을 박고는 있지만, 하루하루의 운영이 쉽지 않은 바둑집을 경영하는 평범한 시정인, 조한도―그가 성인이 되기로 작정한 이후 일어난 이 소설 속의 일련의 사건들은 바로 우리들 자신이 겪는 세상의 경험이기도 하며, 시련의 체험이기도 하고, 그래서 이 책은 세속의 만화경 같은 모습들의 진열이기도 하다.
그의 결심 ― ‘성인되기’는 셰익스피어라기보다 돈키호테에 가까운 발상이지만 작가의 유려한 문체에 스피디한 문장을 읽으면서, 그리고 시정 바닥을 헤매는 ‘성자’의 거취를 따르면서, 우리는 어느새 조한도의 일부가 되어 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천민자본주의를 비판하는 풍자로 읽힐 수도 있는, 비루한 성인 남자의 애환을 다루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현실에 영합하고 안주하며 살아가는 소시민의 속물적 허위의식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헤집는 솜씨 또한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찰케 하는 미학이 있다.

또, 고루하고 진부한 뒷방 늙은이 같은 구시대적 퇴물인 기원(아바연)을, 평범한 인간 군상, 즉 천태만상 소시민들의 희로애락이 담긴 인간 사랑방(복덕방)으로 코믹하게 재탄생시킨 작가의 솜씨가 일품이다.

특히, 이 시대가 과연 ‘우리의 가장에게 체면과 권위라는 걸 있게 만드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문제작이 될 여지도 있다.

힘없고, 일없고, 돈 없는 소시민적 애환을 피부에 짝짝 달라붙을 정도로 리얼하고 적나라하게, 때로는 현미경을 들이대듯 탁월하게 묘사해 낸 문장력이 더 한층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다.

이 작품은 우리 사회 평범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착한 40대 가장, 즉 보편적 인물을 주인공으로 건전한 소시민의 애환과 출구 찾기를 보여 준다.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성실히 자신의 본분을 다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 그리고 가족과의 소통과 화해를 통해 비로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완성을 향해 가는 성인되기의 모델을 제시한다. 따라서 소시민들에게 위안과 구원이 될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 주기도 한다.

한편, 우리 시대 소시민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은 결국 희망을 버리는 것’뿐이라는 주인공의 독백은 고단한 삶의 단면을 풍자하는 시사성을 지닌다.

거기다 ‘시대와 삶의 공간을 잃어버린 닭 한 마리’를 등장시켜 주인공 조한도의 존재의 비극을 사유해 내는 능력 또한 압권이다.

▶ 추천사

‘범속한 삶으로의 트임!’
연극 예술가를 범상한 바둑집 주인으로 몰아가고, 그를 ‘성인’으로의 길로 내몬 것은 아내, 즉 ‘범속한 현실’이었다. (……) 주인공의 성자적 인내의 결과는 저만치 떨어진 멀찍이에서 다가와 식구들과 함께 자리를 모으는 화해스러움이다. 이 화해가 이른바 ‘범속한 삶으로의 트임’을 가리키는 것은 아닌지. 나는 벤야민의 ‘범속한 트임(profane Erleuchtung)’을 비틀어서 이 말을 쓰는 것인데, 그것은 작가 우영창이 범속한 세계에 대한 수락이 아니라 그 세계에 대한 해명을 통해 인식의 새로움을 발견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_ 김병익(문학평론가)

‘한국문학에서 실종된 40~50대 남성들이 위선자나 꼰대나 패배자만이 아니라 엄연한 자존감과 빛나는 꿈을 지닌 ‘성자’일 수 있음을 역설한 소야곡!’ 자기 세대를 독자로 가진 작가는 행복하다. 작품 속에서 그들은 함께 성장해 늙어 가고, 좌절하며 희망하고, 시간만이 가르쳐 주는 진실에 공감한다. 자기 세대를 대변하는 작가를 가진 독자들은 행복하다. 전(前)세대가 짐짓 잊어버리고 후대가 미처 알지 못하는 그들만의 눅눅한 비밀이 내부 고발자의 손을 통해 쨍한 볕살을 받기 때문이다. 《성자 셰익스피어》에서 작가는 언제부턴가 한국 문학에서 실종된 40~50대 남성들이 위선자나 꼰대나 패배자만이 아니라 엄연한 자존감과 빛나는 꿈을 지닌 ‘성자’일 수 있음을 역설한다. 작가의 우스꽝스럽고도 슬픈, 조용하지만 힘 있는 웅변은 세상의 중심에서 누추하고 속되게, 그러나 외롭고 서럽게 존재하는 그들에게 바쳐지는 진진한 소야곡(小夜曲)이다.
_ 김별아(소설가)

▶ 고개 숙인 40대 남자의 애환과 자본의 노예가 되어 버린 우리 시대 가장의 비루한 일상을 연민과 해학이 넘치는 주도면밀한 문체로 그려낸 수작!
《성자 셰익스피어》는, 자식들에게도 짜증나는 세대가 되어 버린, 고개 숙인 힘없고 ‘빽’ 없는 비루한 40대 가장의 애환과 일장춘몽을 ‘성자로 거듭 난다’는 에피소드를 통해 리얼하게 그려낸 수작이다. 재치와 풍자, 체험에 바탕한 비수를 꽂는 신랄한 묘사가 압권이며, 행간 행간마다 단단히 배어나는 사유의 깊이와 문학적 성찰이 두드러진다.
특히, 현대인들의 현실 도피 및 일상 탈출의 출구를 제시하며, 힘없는 소시민들에게 위로와 구원을 열어 주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 상세 줄거리
이 작품의 배경은 서울 근교의 H시 구흥동 골목, 주인공은 45세 남자로 이 골목의 철물점 건물 4층에 세든 기원(명칭은 아시아바둑문화원, 줄여서 아바연, 본래는 시민기원)을 운영한다.

“구흥동 골목은 내린 눈이 얼어붙으면서 내리막길 군데군데가 빙판이었다. 몇몇 가게 앞에는 연탄재와 흙더미가 뿌려져 있었고 여기저기 삽질과 빗자루질의 자국도 보였다. 갈라진 도로 틈에 매복한 얼음조각이 아침 햇살에 수정체처럼 반짝이는가 하면 돌부리들의 표면에는 살얼음이 번들거렸다.”

배경에 대한 묘사에서 알 수 있듯, 이 지역은 서민들이 몰려 사는 고만고만한 동네이다. 이 묘사로 그곳의 기원이라면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들 것인지의 복선을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주인공은 과거에 셰익스피어 정극의 주인공 역을 소화했던 연기 경력을 갖고 있다.
작품 안에서 이 부분은 주인공의 내면세계와 현실 너머를 꿈꾸게 하는 접을 수 없는 이상, 아울러 주변의 세계를 해석하고 인식하는 동인(動因)으로 작용한다.
주인공인 아바연 원장 조한도의 일상은 밤새 대국을 펼치는 대형 사우나에 유사 의료기기를 다년간 공급한 바 있는 진주 3급 방씨와 PC방 사장 봉씨의 짬뽕 주문을 받아 배달 전화를 걸어주고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커피 한잔씩을 대접하는 것, 수북이 쌓인 담배 재떨이를 비우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는 일 등이다.
한편 조한도의 아내 43세 부사옥은 한때는 남편이 벌어오는 월급으로 때때로 아들 조진과 함께 돼지갈비를 사먹기도 했지만 남편의 퇴직과 거듭된 실패로 일식당에 나가고 있다. 이들의 아침 풍경이다.

“신문은 왜 못 끊어. 밥이 나와 쌀이 나와. 아파트 시세표나 들여다보면 뭐하냐고? 진작 팔아먹은 아파트, 그게 다시 돌아오기라도 해? 내, 아파트는 꿈도 안 꾼다. 전세 한 번 살아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달마다 나가는 월세, 그거 어쩔 거여. 3개월 밀린 거 어쩔 거냐고?”
“아침마다 날 들들 볶아서 얻는 게 뭐야. 왜 날 붙들고 분풀이를 하냐고? 내가 그렇게 바보로 보여?” 그러자 부사옥은, “내가 틀린 말 했어? 틀린 말 했냐고?” 하고 앉은 채로 대들었다. 조한도는, “아, 참 뭐 같다. 똥이나 실컷 싸라” 하고 현관문을 쾅 닫고 나왔다.
“나가 죽어!”
부사옥이 뒤늦게 소리 질렀다.

돈뭉치를 부사옥의 발치에 던지는 건 조한도 평생의 꿈이었다. 그러나 이제 주인공 조한도에게는 정말 꿈이 하나 생겼다. 그건 꿈이라기보다 자신이 가야 할 숙명과도 같은 길이다. 바로 성인이 되는 것이다.

‘성인 앞에서 그녀의 악다구니는 바람처럼 흩어지고, 사나운 표정은 묶인 개가 짓는 두려움에 다름 아니며, 자기 가슴을 두들기는 자학은 잔잔한 동정을 불러일으킬 따름이라. 오, 불쌍한 여인! 그대는 잔인한 운명의 희생자요 대지의 고통 받는 딸이로다. 내게서 위안을 찾으라. 사람의 모습을 한, 네 남편처럼 보이는 나를 욕하고 헐뜯으며 괴롭히고 저주하여 마침내 가슴속 맺힌 한을 다 쏟아내고 정화되어라. 나는 가여운 그대를 받아들이리라. 여인이여, 그대는 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라. 그대, 죄인이여!’

해결책은 성인(聖人)이 되는 길에 있었다. 성인의 마음만이 상처 받지 않고 부사옥의 광기를 감당할 수가 있다. 그는 어차피 성인이 될 운명이었다. 부사옥은 그를 시험하려 이 세상에 왔겠지만, 오히려 그의 행로를 밝혀 주는 역할을 맡기에 이르렀다. 결국 부사옥은 주어진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야 할 한 여인으로 귀착되었다. 소크라테스의 아내가 그렇듯이.
하지만 성인이 될 그에게는 하나의 시험이 남아 있다. 바로 길 건너 왼쪽으로 대략 60여 미터 올라간 곳, 사거리 코너 못 미쳐 있는 몽블랑 빵집, 간판도 단연 멋져 멀리서 봐도 영어와 한글이 뒤섞인 것이 이국의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애드벌룬을 연상시키는 그 환상의 빵집과 그곳에서 나와 길 건너 으뜸분식집에서 김밥으로 추정되는 음식을 싼 봉지를 들고 다시 유유히 빵집으로 돌아가는 신비의 여인.
조한도는 그녀에게 ‘몽’이란 이름을 붙여주고 매일 그 시간 그 길을 오가는 몽에 대한 사랑을 키워간다. 살집이 있는 몸매에 보름달이 무색한 얼굴, 화색이 도는 뺨, 아름다운 걸음걸이는 한번 보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는 그녀가 연예인이 되기엔 지나치게 순수하기에 지금 빵집 종업원의 모습으로 자신을 억제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가다 뛰는 박씨, 예비군 중대장 장씨, 벤처사업가 다니엘 백, 화단에 이름이 올라 있는 공 화백, 의자 뒤로 상체를 젖히고 팔짱을 낀 수학강사, 소설가이면서 영화를 기획하고 있는 주인공의 학교 동창 고희규, 아바연에서 아니 H시 전체에서 최고수로서 판을 거시적으로 읽기에 거시녀라 이름 붙은 강혜정, 늘 검은 슈트와 검은 선글라스, 검은 구두 차림의 뻘랙 등이 이 기원의 단골이고 소설은 이들과 주인공이 얽혀들며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조직에 있는 뻘랙에게 이끌려 유명 여배우를 협박하는 일에 증인으로 참여하는가 하면 고희규가 제작하려는 독립영화 주인공으로 ‘몽’과 함께 캐스팅되어 한여름밤의 꿈을 꾸기도 하지만 ‘몽’은 결국 고희규와 뒤얽히고, 독립영화 기획은 주인공이 성인이 되는 길의 하나의 과정으로 남는다.
글 말미에서 주인공은 협박당하던 여배우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연극 맥베스에서 문지기 역을 수행한다. 원래는 장군 역을 맡기로 하였으나 당일 그에게 주어진 역할은 술이 덜 깬 문지기였다. 부사옥 여사와 조진, 어머니와 여동생은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객석에 참석한다.

조한도는 아까 무대로 등장할 때 객석에 앉아 있는 부사옥과 조진을 보았다. 그는 오늘 그 어느 때보다 뱅코 역을 잘할 수 있는 자신이 있었다. 한물 간 배우지만 화술도 모르는 애송이들하고 자신을 비교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늘 하루만 안 되겠나? 아들 녀석이 오네. 장군 아버지를 보여 주고 싶네.”
공연 전 조한도는 마지막으로 애원했다. 며칠 전부터 해온 유치한 소리였다. 연출은 그의 팔을 꽉 잡더니 ‘그건 아무나 하는 역이네. 제대로 된 문지기는 자네만 할 수 있지’ 하고 말했다. 열흘 전 뱅코 대사를 다 외워 갔더니 새 배우를 섭외했다며 미안하다며, 다리도 저는데 문지기 역을 하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문지기가 되었다.

작품 속에서는 행간마다 재치와 풍자, 페이소스가 번뜩임을 발견할 수 있다. ‘몽’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넘어, 아내와 아들 앞에 ‘무엇’이 되고 싶은 주인공의 모습은 소설의 끝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 가장의 모습과 아울러 한켠에 꿈을 뭉쳐 안고 있는 소시민의 아름다움을 정감 있게 보여준다. 그래서 끝 장면은 그대로 읽어보는 것도 맛이 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가슴을 치며……
“199x년 어느 여름밤이었다. 후줄근한 네 사내는 맥주를 마시며 입구에 걸린 주렴을 통해 흩날리는 비를 내다보고 있었다. 갈수록 심해지는 마님의 잔소리에 죽을 지경이라는 한 친구의 푸념에 나를 포함한 사내들은 각기 해법을 내놓았다. 그러려니 해라, 가슴에 새겨들어라 등등. 사회적으로도 ‘간 큰 남편’이라는 시리즈가 유행하던 시기였다.
좀 더 혁명적이고 건실한 생각이 없을까? 나는 속으로 엉뚱한 상상을 하고 있었다. 그 상상이 씨앗이 되어 10년 넘게 가지를 치더니 이토록 긴 글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셰익스피어의 망토를 두른 조한도와 억척 어멈 부사옥, 거리의 숙녀 몽과 동거한 지 어언 일 년이 다 되었다. 이제 나는 길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본다.

‘너 자신을 알라’ 이는 크산티페가 남편 소크라테스에게 ‘네 주제를 알라’고 한 말이 와전된 것이라는, 농담 같은 얘기가 있다. 플라톤의 《파이돈》에 나오는 철학적인 대사들은 다 잊어버렸지만 사형 선고를 받은 소크라테스 앞에서 가슴을 치며 울부짖던 크산티페만은 잊지 못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진리 따위를 따지다 죽게 놔두고, 크산티페와 한잔 하며 저잣거리의 삶과 사랑을 논해 보지 않겠는가? 셰익스피어도 초대해서.”
_ 우영창

[ 책속으로 추가 ]

조한도는 성인의 걸음걸이와 행동에 대해 숙고해 본 바, 행동의 신중함은 말할 것도 없고 걸음걸이 또한 길에 떨어진 동전을 주우려는, 음험한 비밀로 낯이 달아올라 고개를 푹 숙인, 거의 엎어지려는 모양새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마땅했다. 목표는, 인위적인 노력을 하지 않아도 본연의 사상과 인품이 저절로 뿜어져 나오는 그런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아이러니하게도 인위적이나마 자세를 바로 잡을 필요가 있었다. 무대를 떠난 지 10여 년 만에 고전극 전문 배우의 고상한 자태가 거의 마모되어 버렸던 것이다.
-<스타와 차 한 잔> 중

남이 안 보는 데서 틈틈이 그리고 묵묵히 할 일을 하는 것, 이는 성인으로 가는 도정에 있는 자들의 통과의례이다.
수양이 깊어지면 몰아의 상태에서 그저 알을 닦고 앉아 있기도 한다. 스피노자가 종일 렌즈를 닦듯이. 돌이켜보면 아무 생각 없이 그 비슷한 행위를 한 적이 꽤 있었다. 그렇다면 성인의 경지는 수시로 현현되어 이루어지고 있으나 우리가 그걸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을 따름인가? 물론 조한도가 바라는 건 전방위적인 인격체, 무엇을 해도 이치에 어긋남이 없는, 참된 각성에의 도달이었다.
-<사랑으로 등극하다> 중

지난 초가을, 20여 명은 되는 노인이 가로수 밑으로 들쭉날쭉 나다니고 있었다. 반 이상이 새마을 모자 밑으로 길게 수건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들은 ‘H시장’ 낙인이 찍힌 바다 빛 대형 비닐봉지를 끌다시피 들고 다니며 집게로 풀을 집어 담거나 호미로 땅바닥을 찍어댔다. 그중엔 집게를 휘휘 내젓는 영감, 호미로 허공에 십자를 그리는 할머니도 있었다. 그들의 머리 위로 공활하고 푸른 가을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조한도는 아바연을 누구에게 맡기더라도 당장 그 사업에 동참했어야 했다. 개시도 전부터 전국을 들썩이게 한 희망근로사업이었다. 허나 부 여사의 언급이 없었다. 남편의 체면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조한도에게 과연 체면이라는 게 있는가? 신랑이 요번 달에 보너스로 삼백만 원밖에 안 갖고 왔네, 그이 월급으로 무슨 유럽을 가니 서귀포나 사나흘 가고 말지 하고 쫑알거렸다는 그 두 여편네를 부사옥이 의식하고 있다면? 그들 앞으로, 새마을 모자에 주황빛 복장을 한 조한도가 아침저녁으로 지나가서는 곤란할 것이었다.
이토록 체면을 중시하는 조씨네는 배가 덜 고파도 한참 덜 고픈 3인 가구였다. 강남 귀부인이 운동 삼아 희망근로 한다는 뉴스를 보지 못했는가? 공공장소에 울려 퍼지는 그들의 건강한 웃음소리를 듣지 못했는가?
-<사랑으로 등극하다> 중

지금처럼 부족한 대로 꾸준히 단돈 몇 푼이라도 추가해서, 월별로 분기별로 해를 넘겨 갖다 바치는 기존의 형식을 답습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부지런한 성인이 되자.
다시 생각해 보니 옛 성인이나 책에 나오는 인격자들은 돈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은 가족을 초개같이 알았다. 가족의 사소한 고통에 눈감은 대신 이웃과 동포의 고통에 동참하고 그들의 자유와 생존을 위해 내 한 몸을 불살랐다.
조한도는 그런 차원까지 자신을 드넓혀야 하나 물어야 했다. 성인이 된 그는 현실 참여를 해야 하나, 묵묵히 봉사 활동을 해야 하나, 그저 명상하면서 질문을 받는 스승의 입장에 서야 하나, 명확한 판단과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조한도는 생각했다. 한꺼번에 모든 걸 정리하고 입장을 바로 세울 순 없다. 윤곽이 떠오르고 그림이 그려질 때까지 뜸을 들이며 기다려보자. 책을 좀 읽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여자는 스무 명으로 제한하고, 한 주에 5일 술을 마시며 훌륭한 말씀을 남긴 성인이 책에는 있을 것이다. 그런 분은 방중술과 섭생법까지 남기기 마련이다.
주로 이런 갖가지 생각을 하느라 밤이 깊도록 조한도는 잠들지 못했다. 핵심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의미망을 획득해 가는 사려 깊고 유연한 사고는 그를 명철한 사내로, 폭넓은 인식의 소유자로 부각시키고 있었지만 여기엔 뭔가 실질적인, 그러니까 속되다고 일컬을 만한 기쁨이 결여되어 있었다. 지금은 성인이 되기 전에 온전히 그가 누려야 할 세속의 시기였던 것이다. 무엇보다 사랑의 계절이었다.
오, 고요한 밤에 부풀어 오르는 이 느낌을 뭐라고 불러야 하나? 어떻게 신은 하나의 물상을 저와 같이 빚고, 그러한 물상에 호흡과 움직임과 매력을 더해 신비의 광채를 뿜어내게 하여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가? 요괴가 아니고 유령도 아니고 요정도 아니면서, 눈부시게 살아 있는, 그 웃음, 그 동작, 그 눈빛, 그 자태, 그것들을 어떻게 빚어내어 미묘한 변용을 통해 천 가지 기쁨과 고통을 선사하는가? 신이 아니라면 누가?
어떤 자연의 법칙이 그토록 오묘하게 솜털 하나까지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어 용솟음치는 사랑 외의 다른 감정은 눈멀게 하는가? 그녀는 그녀 자신의 것이면서 동시에 자연에 속하고, 보다 높은 법칙, 우주의 섭리에 따라 수준 높게 연주되나니, 그 감미로운 음률에 미혹된 나의 영혼은 놀라운 여행을 떠나는구나. 그녀는 누구인가? 일찍이 사랑은 형체 없이 여기저기 방황하다 그녀를 통해 현현하며 마침내 온전히 그녀 속에 머물러 있도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그녀를 추구하고 속눈썹의 떨림 하나까지 느끼고 향유하는 나는 누구인가?
몽, 나는 그대를 안는다. 그대의 가늘게 떨고 있는 어깨와 따뜻한 팔의 감촉, 이 메마른 가슴에 살포시 와 닿는 뛰는 젖가슴. 그리고 풍요로운 넓적다리는 지금은 떨어져 있어도 좋으리. 그곳의 숨 막히는 뭉클함은 미뤄 두리다. 성스러운 배꼽, 아, 그곳도 아직은.
내 이전에 그대의 손아귀에 막대기 하나를 쥐어 줬던 기억은 잊어주오. 그때 우리는 성급했소. 우리는 이제 다시 시작합시다. 드넓은 바다와 불타는 초원으로 달려갑시다. 세계의 끝까지 작은 발자국을 남깁시다.
그대 지금 어디 있소? 새근새근 잠든 얼굴, 찰랑이는 주렴처럼 이마를 가리는 검은 머리카락, 입김이 흩어지듯 그렇게 그대는 자신을 드러내며 동시에 더 많은 걸 감추며 잠들어 있소. 아아, 그대를 사랑하오.
- <한겨울 밤의 꿈> 중

그래서? 뛰지 않고 걸어서 그는 어디까지 왔는가? 시민기원 원장 자리에 올라왔는가? 그리고 계속 걸어서…… 세속의 성공을 포기하고 성인의 반열에 오르는 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 정열이면 성공한 사업가가 되지 않겠는가? 실패가 두려워, 노력하는 과정이 두려워 성인이라는 피안의 세계로 도망가려는 건 아니고? 과연 성공과 인격은 양립할 수 없는 건가? 훌륭한 사업가 중에 훌륭한 인격자가 있지 않든가? 심지어 정치가, 사업가, 인격자를 모두 합친 인물, 중국 춘추시대의 재상 ‘범려’도 있지 않은가?
이렇듯 정직하게 자신을 뒤돌아보고 예리한 질문을 연이어 던지는 조한도의 성품은 결코 가볍다고 볼 수 없었다. 그는 애초부터 뛸 수가 없는 위인인 것이다. 어쨌든 지금은 사업을 논할 시점은 아닌 것 같다. 예정대로 ‘성인’으로 가는 거다. 그 후에나 중요한 문제를 찬찬히 생각해 보자, 성인은 아예 돈을 못 버는지, 같은.
이제 몽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녀는 건널목을 향해 걸어간다. 손에는 역시 흰 비닐봉지가 들려 있다. 어제 그렇게 술을 마시고 딱딱한 김밥 덩어리로 속을 채우려 하다니. 조한도만 해도 얼큰한 선짓국이나 짬뽕 국물이 머리에 어른거린다. 몽과 함께 해장거리를 먹을 수 있다면…… 그는 벌써 달려가고 있었다.
“비닐봉지를 이리 주오.”
“왜 이러시나요?”
-<세 번째 내리는 눈> 중

“장군? 장군이고 왕이고 연기 꼴들이라니. 그것도 연긴가? 똥장군에 마왕이라고 하는 게 낫지. 아가씨, 봤죠? 변사처럼 왱왱대며 말하는 꼴들.”
부사옥이 거품을 물었다.
“오빠처럼 자연스럽지는 않았어요.”
“자가 원래 술을 좀 먹잖냐. 쪼금만 점잖았으면 좋았으련만.”
어머니가 말했다.
“어머니, 다들 웃었잖아요. 진짜로 웃고 싶어서 웃게 한 사람은 애비 하나였어요.”
부사옥이 말했다.
“그건 그랬다만.”
어머니는 더 얘기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언제 또 올지 모르는 대학로 극장 골목을 걸어 내려갔다. 조한도는 이제 다리를 조금만 절고 있었다.
“출연료 얼마 준대?”
옆에 따라붙은 부사옥이 조그맣게 말했다.
“조금이야. 단역이잖아.”
“많이 달라고 해. 학원비 내야 해.”
그리고 뒤를 돌아보며 목소리를 높여 ‘어머니 뭐 드실래요?’ 하고 물었다.……
-<무대 위에서> 중


목차


· 옛날에 배우
· 성인 연습
· 스타와 차 한 잔
· 한 지붕 세 식구
· 사랑으로 등극하다
· 노래여 그대여
· 한겨울 밤의 꿈
· 세 번째 내리는 눈
· 몽과의 거리
· 헝겊 인형
· 슬픈 여배우
· 밀회
· 닭의 영혼을 거두다
· 비극적 티켓
· 영화처럼 연극처럼
· 무대 위에서

해설 _ 범속한 삶으로의 트임/김병익(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_ 가슴을 치며

교환 및 환불안내

도서교환 및 환불
  • ㆍ배송기간은 평일 기준 1~3일 정도 소요됩니다.(스프링 분철은 1일 정도 시간이 더 소요됩니다.)
  • ㆍ상품불량 및 오배송등의 이유로 반품하실 경우, 반품배송비는 무료입니다.
  • ㆍ고객님의 변심에 의한 반품,환불,교환시 택배비는 본인 부담입니다.
  • ㆍ상담원과의 상담없이 교환 및 반품으로 반송된 물품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 ㆍ이미 발송된 상품의 취소 및 반품, 교환요청시 배송비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ㆍ반품신청시 반송된 상품의 수령후 환불처리됩니다.(카드사 사정에 따라 카드취소는 시일이 3~5일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 ㆍ주문하신 상품의 반품,교환은 상품수령일로 부터 7일이내에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 ㆍ상품이 훼손된 경우 반품 및 교환,환불이 불가능합니다.
  • ㆍ반품/교환시 고객님 귀책사유로 인해 수거가 지연될 경우에는 반품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 ㆍ스프링제본 상품은 교환 및 환불이 불가능 합니다.
  • ㆍ군부대(사서함) 및 해외배송은 불가능합니다.
  • ㆍ오후 3시 이후 상담원과 통화되지 않은 취소건에 대해서는 고객 반품비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반품안내
  • 마이페이지 > 나의상담 > 1 : 1 문의하기 게시판 또는 고객센터 1800-7327
교환/반품주소
  • 경기도 파주시 문발로 211 1층 / (주)북채널 / 전화 : 1800-7327
  • 택배안내 : CJ대한통운(1588-1255)
  • 고객님 변심으로 인한 교환 또는 반품시 왕복 배송비 5,000원을 부담하셔야 하며, 제품 불량 또는 오 배송시에는 전액을 당사에서부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