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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서울

사라진 서울

  • 강명관
  • |
  • 푸른역사
  • |
  • 2009-12-30 출간
  • |
  • 455페이지
  • |
  • 148 X 210 mm
  • |
  • ISBN 9788994079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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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단성사 일등석은 옛 포도청 자리?
20세기 초 신문?잡지 기사를 통해 본 서울 이야기
원래 좌포청터로 말하면 퍽 광활하여 지금 단성사까지도 그 구내에 들었다. 요즘 모든 남녀가 동행을 해서 단성사 일등석에서 활동사진이나 연극 구경을 하면 가장 호화스러운 듯하지만 실상을 알고 보면 ‘보두청[포도청捕盜廳의 속와음俗訛音]’에 들어가 앉은 셈이다. 가가呵呵!―<서울의 옛날 집과 지금 집> 중에서

서울에 살아도 서울이 그리웠던 옛 사람들의 회상기
하루가 다르게 서울이 변하고 있다. 전에 없던 것들이 생기고 전에 있던 것들이 없어지고 있다. 광화문 광장과 피맛골이 그렇다. 100년 전 서울도 같은 진통을 겪었다. 한일강제병합이 있었던 1910년 이후 서울의 모습은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일제는 1909년 창경궁 안의 전각을 헐어내는가 하면, 1915년 식민통치의 효과를 선전하기 위해 조선물산공진회를 개최하면서 경복궁의 주요 건축물을 헐어냈다. 서울의 성곽도 크게 훼손되었다. 총독부와 조선신궁 등 식민통치를 위한 건물들이 지어졌고 근대적 건축물이 하나 둘 서울 시내에 들어서게 되었다. 조선시대 서울은 1910년 이후 본격적으로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산도 옛 보던 산이요, 물도 옛 보던 물”이라 함은 강산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 말이다. 그러나 상전벽해桑田碧海라 하였거니 산인들 어찌 변함이 없으며 벽해상전碧海桑田이라 하였거니 강인들 어찌 변함이 없으랴?
그러므로 현재 경성부 내의 이현梨峴, 황토현黃土峴, 야조현夜照峴 등 속칭의 ‘현峴’자 거리 이름은 옛날 한양 시대의 대소 산악이 평지화한 유명遺名이니, 이것은 산이 변한 증거요, 숭례문崇禮門 밖에 있던 남지南池가 숭례문 밖 삼각도三角道의 중심점이 되고, 천연정天然町에 있던 서지西池가 미근소교渼芹小校의 대지가 된 것은, 이것이 소지沼地가 변하여 평토화한 실증이다.―<경성 옛터와 유화> 중에서

각종 신문과 잡지에 서울 특집 기사들이 종종 실렸던 것도 이 무렵부터다. 이렇게 실린 글들은 박물관에 진열된 유물 못지않은 사료적 가치를 지니며 옛 서울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 글들이 다시 한 번 강명관 교수의 손에 의해 지면에 옮겨졌다. 1910~1945년 사이 신문과 잡지에 실린 서울 관련 글들을 선별해 풀어 엮은 책 ≪사라진 서울≫이 그 결과물이다.

사람이란 제가 익숙한 것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법이다. 나는 지금 부산에 살고 있지만, 부산에 관한 기록을 남기지 않고 있다. 정작 이 공간에 대한 관심은 이곳을 떠났다가 한참 뒤 우연이거나 필연이거나 다시 찾아와 모든 것이 변한 것을 보고서 아, 예전에 저기 그런 것이 있었지 하는 탄식과 함께 시작될 것이다. 1910년 이후 신문과 잡지가 서울에 대한 기록을 남기게 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서울이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1910년을 기점으로, 일본인의 손에 의해 없던 길이 뚫리고 수백 년 묵은 궁궐과 관청과 성벽이 헐려나가고, 동리의 이름이 바뀌고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았던 주거지의 성격이 달라졌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서울을 보게 되었다. 예전에 마냥 익숙했던 것이 문득 생생한 관심사로 떠올랐던 것이다.―<책을 엮으면서> 중에서

성벽에 새겨진 문자를 더듬다
≪사라진 서울≫에는 그간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자료가 다수 수록되어 있다. 그중 일본인 오다쇼고小田省吾가 1916년에 쓴 <성벽문학>은 성벽에 새겨진 문자를 통해 서울 성곽의 역사를 추적한 글이어서 흥미롭다.

‘성벽문학’이라는 제목이 이제부터 쓰고자 하는 내용과 꼭 맞는지 않는지 모르겠으므로 먼저 한마디 해둘 필요가 있겠다.
내가 경성에 산 지 이미 6,7년이 되었으나, 아직 경성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것이 많으므로 지난해부터 조금씩 옛날의 경성에 대하여 조사하곤 하였다. 하지만 짬이 없어 뜻한 대로 조사하지 못하겠기에 먼저 중앙에서 바깥쪽, 즉 경성 안의 여러 가지 사항보다 경성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에 대해 조사를 시작하기로 하였다.
경성에 있어서 날마다 허물어져 가는 성벽을 바라보는 사람은 누구라도 이 성벽이 언제 어떻게 또 누구의 손으로 쌓은 것인가 하는 의문을 흉중에 일으키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성벽문학> 중에서

이 글이 쓰인 1916년에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성곽이 남아 있었고 접근도 비교적 용이했을 것이다. 오다쇼고는 당시 성벽에 새겨진 문자들을 조사하여 이를 근거로 서울의 궁전과 대문, 성벽의 건축 역사를 이야기한다. 물론 서울 성곽의 축조에 대해서는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바이지만, 성곽을 직접 답사해 거기에 쓰인 문자를 확인한 부분들은 성곽이 대부분 없어진 지금 상황에서 귀중한 자료다. 비록 일본인이 정리했지만 말이다.
서울의 궁전, 종묘, 팔대문과 궁문 등 성벽 안 이야기는 <경성이 가진 명소와 고적>과 <경성 팔대문과 오대궁문의 유래>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경성 팔대문과 오대궁문의 유래>를 쓴 민병한閔丙漢(1861~?)은 성균관대사성, 궁내부대신 서리 등을 지낸 인물로, 구한말을 살았던 이의 생생한 경험담을 들을 수 있다.

종로통에서 육주비전을 말하다
<경성 시전의 변천>과 <상계의 금석>은 시전의 역사와 합방 직후 시전의 몰락상을 그리고 있다. 특히 <상계의 금석>은 1916년 ≪매일신보≫에 연재된 글로 선전?지전?백목전?청포전? 상전 등의 처지를 의인체 독백으로 묘사했다.

나는 면주전이로세. 이왕에는 지금 이 자리에 있어 가지고 조선 안에 면주綿紬는 내가 독차지 하였었네. 나의 허가를 받지 아니하며 우리 도중都中에 이름을 걸지 아니하면, 면주를 감히 팔지 못하였다네. 그러므로 이왕에는 지방에서 철원주鐵原紬이니 영흥주永興紬이니 하는 유명한 면주로부터 각 지방의 토산주土産紬까지라도 경성에 들어오면, 객주에서 으레 우리 집으로 들여오며, 금도 우리 집에서 놓는데, 만일 다른 집에서 면주를 매매하면 ‘평시서平市署’에서 즉시 금지하여 면주에 대한 전권專權을 가지고 있었더니, 지금은 각 포목전에서 마음대로 매매를 하며 정말 오랜 역사를 가진 우리 면주전은 이름만 남아 있네.―<상계의 금석> 중에서

1910년 왕조가 멸망하고 조선이 식민지가 되자, 시전의 붕괴는 자명한 사실이었다. <상계의 금석>은 붕괴하는 시전의 마지막 풍경인 셈이다. 이 글은 시전의 소멸 과정뿐 아니라 조선시대 시전의 상업 관행에 대한 중요한 정보 또한 제공하고 있다. 다만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에 연재된 글이라 식민통치를 옹호하는 어조로 쓰였음에는 유의할 필요가 있다.

원동의 명물은 모기?
서울의 각 동리의 동명 유래와 역사를 살핀 글들도 눈에 띈다. <경성 동정 이름의 유래와 금석의 비교>, <서울의 옛날 집과 지금 집>, <서울 동명에 숨은 이야기>, <경성 행각>, <경성백승> 등은 1914년 일제가 서울의 지명을 일본식으로 바꾼 것을 염두에 두고, 그 이전의 명칭을 떠올려 본 것이다. 서울의 옛 지명과 지명에 얽힌 역사, 또 서울의 주민구성이 지역에 따라 달랐음을 증언하고 있는 글들이다.
그중 <경성 행각>과 <경성백승>이 전하고 있는 내용들은 매우 소중한 것들이다. 주로 동소문 일대에 관한 자료를 담고 있는 <경성 행각>에서 어의동궁에 관한 자료, 성균관 일대에 형성되어 있던 반촌泮村과 주거민인 반인泮人의 성격 및 사회적 위상에 관한 자료는 다른 데서 찾아볼 수 없는 희귀한 것이다.
1927년 단행본(동아일보)으로 엮인 이후 ≪사라진 서울≫에 다시 소개되는 <경성백승>은 국회도서관이나 서울대학교 도서관에서도 보기 힘든 것으로, 신문 원문만 검색 가능한 자료다. <경성백승>은 원래 “일백정一百町, 일백물一百物, 내 동리 명물”이라는 제목으로 1924년 6월 25일에서 8월 16일까지(50회) ≪동아일보≫에 연재된 글이다. 당시 그 동리에 주거하는 독자들의 투고를 토대로 서울의 주요 명승지 100곳을 사진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각 동네에 얽힌 흥미로운 일화들을 상세하고 재치 있게 표현하는 행간에 때로 항일적인 의식을 깔고 있기도 한 이 글들은 당시 민중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원동(현재의 종로구 원서동)은 ‘모기’가 명물이랍니다. 원동 모기는 한 동리 명물 노릇을 하는 까닭인지 여간 주제넘지 아니하여 지체를 대단히 본답니다. 그래서 계동 모기와는 혼인도 아니 한답니다. …… 그 근처에 ‘파나마’라는 나라가 있다나요. 거기도 모기의 세력 범위인 듯합니다. 파나마운하 같은 세계적 대공사도 한참동안은 모기의 방해로 진행을 못하였답니다. 종류는 3백종, 목숨은 약 4일, 날기는 1마일 가량은 헌그럽게 나는 모기들이랍니다. 또 좀 우리에게 가까운 중국 소주 지방에도 모기세력이 굉장하다는 사담史談이 전합니다. 이 사담은 별 것이 아니라 어느 처녀가 남녀가 섞이어 잘 수 없다고 노숙하다가 모기에게 목숨을 바쳤다는데 살을 다 뜯겨서 힘줄이 드러났더랍니다. 거기 사람이 불쌍히 여겨서 노근비露筋碑를 세워주었답니다. 이런 이야기를 원동 모기에게 들려주면 그 주제넘은 것이 아마 좀 줄겠지요? 원동 이병목李秉穆 ―<경성백승> 중에서

이 외에도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경성 명물집>, <경성 어록>, <경성의 화류계>, <풍속의 고금>은 조선시대 서울 기생과 기방의 풍습, 기생제도의 붕괴 이후 출현한 권번, 서울의 특이한 언어관습 그리고 설렁탕, 선술집과 같은 서울의 음식문화와 꽃, 조류, 특산품 등을 다루고 있어 서울 풍속사 이해에 결정적 자료가 된다.

서울 타임캡슐, 옛 신문과 잡지 기사
이 책을 풀고 엮은 강명관 교수는 5백 년 역사를 가진 수도 서울에 관한 자료에 갈증을 느껴 오던 터에 일제시대 신문과 잡지에서 귀중한 자료를 많이 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모아두었던 자료를 꼼꼼하게 선별한 후 어려운 것은 풀고 모자란 것은 채워 ≪사라진 서울≫로 엮어냈다. 대가의 비법노트가 공개된 셈이랄까?

이 책은 사라진 서울에 대한 기억을 더듬을 수 있는 자료집일 뿐이다. 서점에 가면 서울에 관한 책이 더러 있고, 모두 좋은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이 책은 조선시대에 서울을 경험한 사람들이 쓴 것이라, 이방면에 관심을 가진 분들에게 혹간 참고 될 것이 있지 않겠나 싶어 묶은 것이다.―<책을 엮으면서> 중에서

이 책에 실린 글들은 한 편(1949년 ≪민성≫에 실린 <서울 동명에 숨은 이야기>)을 제외하고 1910년에서 1945년까지 ≪개벽≫ ≪별건곤≫ ≪조광≫ 등의 잡지와 ≪매일신보≫ ≪동아일보≫ 등의 신문에 게재된 기사들 중에서 가려뽑은 것이다. 옛 기사들을 모은 자료집이지만 그간 숨 가쁘게 변해온 서울을, 이미 우리의 기억에서 잊힌 서울을 되돌아보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그 힘은 우리 서울의 내면을 읽어내는 독서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목차


책을 엮으면서

궁궐, 대문 성벽
경성이 가진 명소와 고적
경성 팔대문과 오대궁문의 유래
성벽문학
경성 아카이브

시전
경성 시전의 변천
상계의 금석
경성 아카이브

서울의 각 동리
경성 동정 이름의 유래와 금석의 비교
서울의 옛날 집과 지금 집
예로 보고 지금으로 본 서울 중심세력의 유동
경성 옛터와 유화
서울 동명에 숨은 이야기
경성 행각
경성백승
경성 아카이브

서울의 각 동리
경성 명물집
경성 어록
경성의 화류계
풍속의 고금
경성 아카이브

해제 /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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