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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설 1: 신문기사와 신문 공판조서

권오설 1: 신문기사와 신문 공판조서

  • 안동독립운동기념관학예연구실
  • |
  • 푸른역사
  • |
  • 2010-01-04 출간
  • |
  • 643페이지
  • |
  • 200 X 265 mm
  • |
  • ISBN 9788994079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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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권오설, 그는 누구인가
권오설은 누구인가? 우리에게 낯선 이름인 듯하지만, 권오설은 한국독립운동사에서 일찍부터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1897년 경북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곳은 풍산들을 끼고 있는 가일마을로 안동의 대표적인 반촌이다. 15세기 초에 권항權恒이 이곳으로 입향하여 안동권씨 동성마을의 단초를 열었고, 그의 손자자 권오설의 15대조인 화산花山 권주權柱가 1480년 문과에 급제하여 가일마을을 일으켜 세웠다. 또 9대조 병곡屛谷 권구權?는 이현일의 문인으로, 18세기 안동을 대표하는 학자로 이름을 떨쳤다. 이처럼 가일문중은 퇴계학맥을 잇고, 한편으로는 명가들과 혼인을 맺으면서 안동문화권에서 전통명가로 자리 잡았다.
양반유림의 유학적 바탕에서 성장한 권오설은 고향에서 남명학교와 동화학교를 마치고 대구와 서울로 유학하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제대로 마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1918년 전라남도 도청에서 잠시 근무했으나, 1919년 광주 3?1운동의 배후 인물로 지목되어 옥고를 치르게 되었다. 이는 그의 민족의식 성장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후 권오설은 고향으로 돌아와 학술강습소를 열어 교육?계몽운동에 힘을 쏟았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풍산소작인회를 조직하고 농민대중을 선도해나갔다. 이 과정에서 그는 사회주의를 수용하고 조선공산당을 이끄는 핵심인물이 되었다. 그가 택한 사회주의는 민족을 해방시키기 위한 것으로, 해방시킬 대상은 식민지가 된 우리나라요, 우리 겨레였다.
권오설은 1926년 4월 말경부터 6?10만세운동을 기획하고, 3?1운동과 같은 전 민족적 만세운동을 펼치기 위해 통일전선체 조직에 나섰다. 그 결과 천도교와 조선공산당?학생 등 다양한 주체들이 정치적 이념을 초월하여 통일전선을 형성했다. 권오설은 운동 직전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어 6?10만세운동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그 뜻에 동참했던 민족지성들은 만세운동을 펼쳤다. 6?10만세운동은 계급해방이 아니라 민족독립에 목표를 둔 점, 또 좌우합작으로 일구어냈다는 점에서 그가 선택한 사회주의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체포된 권오설은 출소 100여 일을 앞둔 1930년 4월 17일 고문과 굶주림을 견디다가 끝내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다.

그가 남긴 많은 자료
2005년 3?1절은 특별한 날이었다. 사회주의운동을 벌인 인물들이 대거 독립유공자로 포상되었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항일투쟁을 벌이며 몸 바쳤으나 그 길이 사회주의였다고 해서 포상되지 않은 선례가 바뀐 때가 바로 그날이었다. 반론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큰 걸음을 내딛는 판단에 박수를 보내는 소리가 매우 컸다.
그 중심에 권오설이 있었다. 이러한 인물 권오설의 일생을 충실하게 추적하고자, 그와 관련된 자료를 하나하나 찾고 정리한 책이 《권오설》이다. 지금까지 권오설의 자료가 남아 있으리라고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지나온 세월이 그런 자료를 간직하거나 그런 것이 보존되어 있으리라고 상상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 그에 관한 자료는 다양하게 남아 있다. 물론 판결문이나 일제 정보문건, 그리고 신문기사와 같이 공공기관들이 남긴 자료들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밖에 그가 남긴 자료는 예상과 다르게 상당히 많다. 그의 인생 33년,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는 기간이지만 자료는 결코 적지 않다. 부모와 형제, 동지들 사이에 주고받은 편지와 엽서가 주류를 이룬다. 여기에 그가 읽고 소장한 서적, 기고문, 강연 원고, 장부 등도 있다. 풍산학술강습회 출석부나 지출장 등이 대표적이다.

많은 자료가 전해질 수 있었던 가슴 아픈 사연
이처럼 생각 밖으로 많은 자료가 전해지는 데에는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권오설은 계몽운동과 노동?농민운동으로 민족독립을 추구했고, 6?10만세운동을 총괄 기획한 최고 지도자였다. 따라서 그가 남긴 자료를 보존한다는 것은 일제강점기만이 아니라 광복 이후에도 힘들었다. 특히 분단과 전쟁을 겪으면서 사회주의운동가와 관련된 자료를 간직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잦은 경찰의 발걸음과 감시, 이웃의 멸시와 냉정한 눈길, 그 속에서 두 번이나 원인 모를 화재를 겪었다. 그 틈에서 끄집어내고 살려낸 자료들이다. 그래서 책이나 편지를 비롯한 문서들의 끝부분이 까맣게 타고 그을려 있다. 자료를 만지는 것조차 두려울 정도다. 손으로 들추어보는 것만으로도 새까맣게 타버린 모서리가 부석부석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이를 목숨만큼 귀하게 여기며 간직해온 가족들, 특히 권오설의 조카자 양자인 권대용 선생의 노력이 결정적이었다.

책의 구성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은 지난 1년간 이런 귀중한 자료들을 선별하고, 한글로 옮겨, 2권의 자료총서로 역어냈다. 책 속에는 권오설의 이러한 공적公的?사적私的 행적들이 잘 드러나 있다. 1권에는 신문조서와 공판조서, 신문?잡지와 같은 공식자료를, 2권에는 권오설이 주고받은 엽서와 편지자료를 담았다. 1권에 수록된 자료들은 그동안 학계에 알려진 편이다. 이것들은 1920년대 안동지역의 독립운동과 서울에서 펼쳐진 노농투쟁, 그리고 제1?2차 조선공산당과 6?10만세운동의 전반적인 상황을 보여준다. 이에 반해 2권에 담긴 자료는 대부분 처음 알려지는 것이다. 권오설이 부모와 형제, 그리고 동지들과 주고받은 편지와 엽서가 주를 이룬다. 특히 옥중에서 가족들과 주고받은 편지에는 옥살이의 힘겨움과 고통, 이를 덜어주기 위한 가족들의 애환이 담겨 있다. 다시 말해, 신문과 판결문 등에는 그의 혁명적이자 투쟁적인 면이 오롯이 담겨 있다면, 편지와 엽서에는 그의 다정다감한 인간적인 면모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목차


권오설 1―신문기사와 신문?공판조서
Ⅰ 신문자료
Ⅱ 잡지자료
Ⅲ 신문?공판조서 및 판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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