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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용광로

신의 용광로

  • 데이비드리버링루이스
  • |
  • 책과함께
  • |
  • 2010-04-23 출간
  • |
  • 670페이지
  • |
  • 162 X 234 mm
  • |
  • ISBN 978899122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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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용광로는 우리가 널리 알고 있듯이 여러 가지 금속을 한데 넣고 끓여서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더 크게 되는 경우의 비유이다. 이 책에서는 유럽을 만든 이슬람 문명을 상징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슬람 문명이 그 발상지인 아라비아 반도 내에서 용광로의 기능을 발휘한 것이 아니라, 유럽 땅인 안달루스에 진출하여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 등 여러 종교 신자들을 융합하면서 선진 문화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이다.

기획 의도

기존의 유럽사 서술에 정면으로 도전한 과감한 기획
732년 가을, 대규모의 기독교 군대와 무슬림 군대가 프랑스의 중부 평원 푸아티에에서 맞섰다. 우리가 지금껏 배워온 바에 의하면, 프랑크족의 지도자 카를 마르텔이 그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기독교를 이슬람으로부터 구했고, 스페인을 점령하고 이어 피레네 산맥을 넘어 계속 전진해오던 야만적인 무슬림의 기관차를 멈춰 세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책 《신의 용광로》는 이슬람-기독교가 유럽에서 공존했던 오랜 시기를 과거 역사과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다. 기독교 군대가 푸아티에에서 승리함으로써, 유럽은 ‘선진적인’ 이슬람 문명의 세례를 직접 받지 못해 오히려 400년의 세월을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기존 유럽사에서는 “이슬람 세계가 그리스ㆍ로마의 고전문화를 보존, 계승하여 유럽에 전해줌으로써 서유럽의 르네상스에 큰 영향을 끼쳤다”며, 이슬람 문명이 근세 유럽의 형성에 일정 정도 기여했다는 점만 지적한다. 그러나 《신의 용광로》는 중세 유럽 초기까지 소급하여 이슬람 문명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유럽사 해석에 정면으로 도전한 과감한 기획이다.

유럽은 이슬람 문명의 거대한 용광로에서 주조되었다
아라비아 반도 변방에서 성장한 이슬람 세력은 711년 지브롤터에 침공하여 1085년 이슬람 군대가 톨레도에서 패퇴할 때까지 무려 400년이나 유럽의 서쪽 끝 알-안달루스(스페인)에 정착했다. 종교적 관용을 표방하는 무슬림 사회는 유대교와 기독교 인구를 관대하게 포용했고, 그들의 문화를 융합하여 선진 문화를 만들어 냈다. 그리하여 알-안달루스는 이슬람 문명의 거대한 용광로가 되었다. 중세 암흑시대의 유럽은 알-안달루스에서 피레네 이동으로 대규모로 흘러들어오는 학문에 의하여 자극받고 또 촉진되었다. 특히 1085년에 무슬림 톨레도가 함락된 이후에도 약 75년 동안 기독교, 무슬림, 유대교 사이의 상호 협조라는 ‘인디언 서머’ 기간이 있었다. 당시의 사람들은 그것을 ‘콘비벤시아convivencia(상생)’라고 불렀다. 파리, 쾰른, 파도바, 로마 등의 도시에서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유클리드와 갈렌, 힌두 숫자, 아랍 천문학 등을 알게 된 것은 톨레도 컨베이어벨트를 통해서였다. 이런 이슬람 문명의 ‘유럽 만들기’는 13세기 초까지 계속되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이슬람 문명이라는 용광로에 의해 유럽이 주조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비교역사학 연구자가 쓴 흥미롭고 알찬 중세유럽사
이 책의 저자 데이비드 리버링 루이스는 W. E. B. 뒤부아의 전기를 펴내어 두 번이나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의 저명한 비교역사학자이다. 《신의 용광로》도 그의 비교역사학 연구의 결과물이다. 기독교의 관점에 치우쳐 있던 유럽 중세사를 당시 유럽에서 공존했던 이슬람 문명과 비교하며 새롭게 설명하고 있다. 반세기 동안이나 기독교 유럽과 이슬람 유럽의 긴장감 넘치고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 그들의 공존의 역사를 저자만의 뛰어난 묘사력과 세심한 글로 설명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는 서양 중세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다룬 책이 별로 많지 않다. 서양 중세와 이슬람을 대비시켜 문명 비교를 시도한 책은 더더욱 없다. 연구자들을 위한 학술 자료로 몇 권 있을 뿐이다. 일반교양서로서 역사적 정보가 충실하고 흥미로운 책을 들자면 요한 호이징가의 《중세의 가을》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주로 14~15세기의 중세를 다루고 있다. 반면, 《신의 용광로》는 6세기에서 13세기까지 주로 중세의 전반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변별된다. 게다가 파노라마의 관점으로 역사를 개관하고 거시적인 흐름을 잃지 않으면서도 역사적 주인공들의 개인적 생활까지 세밀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이 책은 매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서구와 이슬람의 갈등의 전사前史를 밝힌다
이슬람 세력은 711년 베르베르족의 군대가 지브롤터에 침공하여 1085년 무슬림 군대가 톨레도에서 패퇴할 때까지 유럽에 정착했고, 그곳에서 이슬람의 선진 문명을 발전시켰다. 이슬람이 유럽에서 무려 700년 동안 뿌리를 내렸다는 사실은 너무나 먼 과거의 이야기라서 매우 생소하게 들린다. 그래서 포스트모더니즘이 지배하는 오늘날에는 관심사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ㆍ유럽으로 대표되는 기독교 세계와 무슬림 세계의 관계가 1,300년 전 고도로 발전된 이슬람 세계와 빈한한 기독교 세계의 관계를 역전시켜놓은 것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면 새로운 의미를 띠게 된다. 문화적 역할과 정치적 패권이 역전되어 있던 시대의 장구한 사화史話를 꼼꼼히 검토함으로써, 우리는 21세기를 괴롭히고 있는 많은 문제들의 원인을 밝혀볼 수 있을 것이다.

추천사

“교조적 역사가 아니라 진정한 역사의 관점에서 현대 세계를 이해하게 해주는 훌륭한 책이다. 1천 년 전 아랍 문화와 무슬림 지도자와 지식인들이 수행했던 역할은 근거 없는 논리가 지배하는 오늘날에 하나의 경종을 울리고 있다.”
-아마르티야 센, 한국어판 《정체성과 폭력》의 저자. 199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

“로마가 멸망한 후 이슬람이 아라비아에서 흥기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유럽과 기독교가 어떻게 알-안달루스의 무슬림들과 갈등하면서 발전했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안소니 아피아, 《코스모폴리터니즘》의 저자

“미국의 가장 위대한 역사가들 중 한 사람이 써낸 대가풍의 저서이다. 《신의 용광로》는 이슬람과 기독교 유럽 사이의 충동을 아주 권위 있게 해설한 책이다. 그리고 위트, 통찰, 지혜가 가득한 정말 놀라운 책이다.”
-레자 아슬란, 한국어판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도다》의 저자

“루이스가 다루고 있는 범위의 폭은 아주 넓다. 이 책은 아직도 덜 연구되어 잘못 이해되고 있는 역사적 시대에 밝은 빛을 던져주고 있다.”
-폴 케네디, 한국어판 《강대국의 흥망》의 저자

“《신의 용광로》는 무슬림과 다른 종교들, 특히 비잔틴 제국 및 중세 유럽의 기독교와의 관계를 아주 자세하게 추적하고 있다.”
-조너선 버키, 《이슬람의 형성》의 저자

“오늘날 이슬람과 유대-기독교의 서구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갈등의 전사前史를 아주 자세하게 밝히고 있는 시의적절한 책이다.”
-아놀드 램퍼새드, 스탠퍼드 대학

책속으로 추가

중국에서 인도를 거쳐 대서양까지 자유 무역지대를 형성하다
쿠라이시의 매는 아바스 제국으로부터 알-안달루스의 정치적 독립을 지켜냈다. 하지만 문화적 독립은 사뭇 다른 문제였다. 바그다드와 코르도바는 정치적 대립의 벽이 높았지만 자금, 무역, 문화, 왕궁의 화려함에 관한 문제라면 스펀지처럼 유연하게 상호 작용했다.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 제국은 로마 제국 이래 가장 건전한 경제적 입지를 구축했다. 중국을 비롯하여 인도를 거쳐 대서양까지 상품, 생산품, 통화, 서비스, 과학, 철학이 자유롭게 오가는 무역 지대를 형성했다. 지중해는 이제 지브롤터부터 보스포루스 해협의 일부 해역에 이르기까지 무슬림의 바다가 되었다(해협 서쪽은 비잔틴 제국의 요새가 여전히 버티고 있었다). 아부 자파르 알-만수르와 후계자들의 굉장한 기념물은 군주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사례였다. 바그다드는 아브드 알-라흐만이 도저히 뒤따라갈 수 없는 대도시였지만 그래도 총독은 그 도시를 모범으로 하여 알-안달루스를 정비해 나갔다. 그런 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알헤시라스에 모스크를 건설했고, 말라가에는 알카자바(요새)를 건설했으며, 코르도바의 과달키비르 강둑의 성벽을 수리했고, 이 도시에 새로운 총독 궁전(다르 알-이마라)을 세웠다. 784년에 완공된 새로운 궁전은 무슬림 목욕탕들(한 곳이 현존한다) 부근에 자리 잡았는데 성 빈센트 교회와 수도원 가까이 있었다.
_ 413~414쪽

이슬람 유럽의 선진 국가 경제
쿠라이시의 매가 관리하는 화폐경제와, 샤를마뉴가 의존한 물물교환 경제는 그야말로 천지 차이였다. 양국 경제는 둘 다 농업에 바탕을 두었지만, 알-안달루스의 농부와 목축업자는 도시 발전에 이바지했고 도시인과 서로 주고받는 상업은 시골에 이득을 주었다. 반면에 프랑크란드의 도시들은 도로망이나 하천 운수로 유지되었던 로마 도시의 잔해 또는 상설 시장에 지나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살펴볼 때, 카롤링거 국가는 경제에서 직접적인 수입을 올리지 못했다. 후대의 행정적 모범이 된 카이사르나 바그다드의 칼리프도 그러했지만, 아브드 알-라흐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디완으로 들어오는 세금 수입이었다. 총독과 정부는 납세자들이 어떤 종교를 믿는지 묻지 않았다.
_ 424~425쪽

알-안달루스 기독교인과 이슬람의 문화적 유대관계
알-안달루스에서 기독교인은 편안한 마음으로 활발하게 이슬람의 과학과 인문학을 흡수했다. 이것은 아랍 대가들에 의한 언어와 문화의 응용이 9세기 내내 발전한 것을 감안하면 놀랄 일도 아니다. 마을의 세금 징수 기록을 살펴보면, 안달루시아 기독교 주민의 약 40퍼센트가 쿠라이시의 매가 서거한 지 1세기도 채 지나지 않아 무슬림으로 개종했음을 알 수 있다. 개종 선언은 지즈야를 면제받을 수 있었고 의복, 혼인, 법률 등의 규제를 완화되었다. 하지만 우마이야 왕조 치하에서 강제적 개종은 사실상 없었다. 교회는 틀림없이 기독교인의 이슬람 개종이 늘어나는 것에 놀랐을 것이다. 명백한 개종 이외에도 모즈아랍, 다시 말해 아랍의 언어, 이름, 의상, 음식을 받아들인 기독교인들이 있었다. 종교적 공존의 게임 규칙에 따라 가톨릭교회는 신중하게 저자세를 취해야 했다. 총독부는 아랍인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은 금지시켰고 기독교로 개종한 아랍인을 엄벌했다. 이런 규제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성직자들은 모즈아랍-무슬림의 종교적 유대관계가 발전하지 못하도록 은근히 신경을 썼다. 이슬람이 “‘새로운 종교’라는 얘기는 진지한 기독교인들에게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다.”
_ 476쪽

세계의 찬란한 장식품, 코르도바
칼리프 국가의 코르도바는 세계 수도라 할 만했고 라흐만 3세의 전성기에 그 웅장한 모습을 갖추었다. 10세기 말 70개가량의 코르도바 도서관은 박학한 기독교인을 경악시켰을 뿐만 아니라 현대의 학자들도 놀라게 한다. 주로 종이 원고로 된 40만 권의 장서가 진열된 코르도바의 대도서관은 피레네 이동 지역에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대규모였다. 스위스 세인트 갈의 베네딕트 수도원이 소장한 책의 숫자는 불과 600권이었고, 그나마 모두 송아지 가죽이나 양피지로 되어 있었다. 아랍 제국의 종이 사용은 지식의 확산을 크게 촉진했으며 도서관의 장서 수를 늘려주었다. 종이-이집트의 갈대를 압착한 파피루스가 아니라 나무껍질, 아마포, 삼 등으로 만든-는 700년 뒤의 인쇄술이 유럽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 못지않게 무슬림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주었다. 11세기 초 안달루시아의 종이 공장이 마침내 발렌시아 남쪽의 계곡 마을인 하티바에 세워졌다. 에드워드 기번은 책을 존중하는 코르도바 시민을 높이 평가했고, 애서가답게 기독교 서방국가에 책이 별로 많지 않은 것을 경멸하듯 말했다. 코르도바의 비좁은 거리에는 직공이 비단, 실크, 모직을 만들던 가게와 작업장들이 즐비했다. 장인들은 고급 유리그릇을 만들고, 유명한 코르도바 가죽을 다듬었다. 드물게 학식을 갖추고 당대의 여성에게 큰 영향력을 지닌 색슨 수녀, 간더스하임의 흐로스비타는 유명한 서간집에서 아브드 알-라흐만 3세의 코르도바를 가리켜 “세계의 찬란한 장식품”이라고 말했다.
_ 489~490쪽

알-안달루스에서 피레네 이동으로 지식이 전달되다
안달루시아 사람들은 아무 장애 없이 활발하게 과학과 인문학의 새로운 지식을 수용했고, 그리하여 기독교 세계 국가들이 나중에 접촉하게 되는 르네상스의 지식 기반을 형성했다. 12세기의 다극화 세계에서 지식의 흐름은 사실상 홍수를 이루었다. 무슬림 학문은 수십 년 동안 물밀듯이 흘러넘쳐 안달루시아로부터 기독교 서방국가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금씩 흡수, 모방하는 과정이었는데 나중에는 컨베이어벨트나 다름없이 대량으로 전달되었다.
_ 551쪽

기독교, 무슬림, 유대 지식인들이 협력해 알-안달루스에 고도의 문화를 이룩해내다
바그다드의 요람을 거쳐 우마이야 알-안달루스에서 성숙한 시, 이성, 과학 등의 문화는 라틴 서방국가의 대학에 뒤늦게 소개되었다. 900년부터 1100년까지 오랫동안 실험되었던 종교 간의 관용이 시들어갈 무렵에도 톨레도에서는 종교들끼리 서로 협력했고 그리하여 주목할 만한 ‘인디언서머’를 만들어냈다. 유럽의 뛰어난 많은 기독교, 무슬림, 유대 지식인들은 문헌을 해석하고 논쟁하고 번역하기 위해 톨레도에 모여들었다. 이들을 카스티야의 알퐁소 7세의 환영과 라이문도 대주교의 격려를 받았다. 톨레도 학계는 서방국가의 문화 수준을 대단히 향상시킨 번역 자료들을 풍부하게 쏟아냈다. 카린티아의 헤르만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체계》뿐만 아니라 알-크와라즈미의 천문도를 번역했다. 크레모나의 제라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리》를 새롭게 번역했고 그 외에 ‘절판되었거나’ 형편없이 번역된 약 70권의 책을 다시 번역했다. 기독교 세계에서 출판된 2차 방정식의 첫 번째 해법은 아브라함 바르 히야의 계산법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이 해법은 끈기 있는 티볼리의 플라톤이 고안한 것인데 그는 무슬림 천문학과 삼각법 자료를 상당수 번역했다. 인멸된 것으로 알려진 프톨레마이오스의 저술, 가령 《알마게스트》, 《4분의》 등도 다시 복원되었다. 클루니 수도원장인 가경자 베드로는 케턴의 로버트에게 코란의 라틴어 번역을 요청했는데 로버트는 카린티아의 헤르만과 신원 미상의 무슬림의 도움을 받아가며 완벽하게 번역했다. 이 번역본(1143년)은 공식적으로는 ‘마호메트의 이단’으로 기록되었다. 바그다드와 알-안달루스의 무슬림 학자들은 나름대로 2세기 이상이나 기독교 저서들의 아랍어 번역본을 소유하고 있었다. 톨레도에서 유대-기독교-무슬림 협력이 그 후 100년 동안 더 지속되면서 고대의 학문을 상당히 복구했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_ 552~553쪽


목차


1장 초강대국들
2장 “아랍인들이 오고 있다!”
3장 지하드!
4장 칼리프들의 권력 투쟁과 비틀거리는 지하드
5장 711년
6장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의 유럽
7장 푸아티에 전투의 신화
8장 우마이야 왕조의 흥망성쇠
9장 교황 구출
10장 무력과 신앙의 제국
11장 카롤링거 왕조의 지하드: 론세스바예스와 삭소니
12장 대모스크
13장 최초의 유럽 문화
14장 절묘하고 위험스러운 균형
15장 불균형, 펠라요의 복수
16장 전파된 지식, 거부당한 합리주의: 이븐 루슈드와 무사 이븐 마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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