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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군파

적군파

  • 퍼트리샤스테인호프
  • |
  • 교양인
  • |
  • 2013-02-04 출간
  • |
  • 388페이지
  • |
  • 148 X 210 X 30 mm /540g
  • |
  • ISBN 9788991799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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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너희에게 베트남 동지들을 멋대로 죽일 권리가 있다면, 우리에게도 너희를 멋대로 죽일 권리가 있다.
너희에게 흑표범당 동지들을 죽이고 게토를 전차로 짓밟을 권리가 있다면,
우리에게도 닉슨, 사토, 키신저, 드골을 죽이고
펜타곤, 방위청, 경시청, 너희의 집을 폭탄으로 폭파시킬 권리가 있다.
너희에게 오키나와 동지들을 총검으로 찌를 권리가 있다면,
우리에게도 너희를 총검으로 찌를 권리가 있다.
- 공산주의자동맹 적군파 군사혁명위원회, ‘전쟁 선언’ 중에서

혁명을 꿈꾼 청년들은 왜 동지들을 잔인하게 살해했을까?
일본 사회의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 적군파를 해부한다!

다섯 명의 청년들이 219시간 동안 3만 5천 명의 경찰과 대결한 사상 초유의 인질극 ‘아사마 산장 사건’. 북한에 혁명 기지를 건설한다며 평양으로 간 일본 최초의 비행기 납치 ‘요도호 사건’. 이스라엘 공항에서 총기를 무차별 난사해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텔아비브 공항 습격 사건’. 그리고 잔인한 동지 살해로 일본 진보 운동에 찬물을 끼얹은 ‘연합적군 숙청 사건’…….

40년이 지난 지금도 적군파의 악명은 잊혀지지 않았다. 적군파는 당대의 어떤 학생 운동 조직보다도 과격하고 급진적인 투쟁 노선을 걸었다. 대학에 들어와 사회 문제에 눈뜬 평범한 청년들이 적군파에서 세계 혁명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투사로 변신했다. 그러나 그들이 다다른 종착점은 동지 살해라는 참혹한 비극이었다. 《적군파》는 일본 진보의 역사에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남긴 이 문제적 조직을, 그들이 저지른 숙청 사건의 실체를 객관적 시선으로 치밀하게 추적한 최초의 책이다.

그때 그곳에 있었다면 당신도 도망치지 못했을 것이다!
내부 폭력의 집단 심리를 분석한 사회심리학 다큐멘터리

혁명을 꿈꾸던 젊은 남녀 31명이 산속에 비밀 혁명 기지를 꾸렸다. 두 달 만에 12명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그들을 때리고 찔러 죽인 것은 다름 아닌 나머지 19명, 그들의 동지였다. 1972년 3월, ‘연합적군 숙청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남은 이 참사는 일본 열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언론은 앞다투어 ‘피의 숙청’을 세부까지 묘사했다. 좌파 활동가들은 좌파 내부의 자멸적 광란에 망연자실했다. 한때 운동의 지지자였던 이들이 잇따라 등을 돌렸다. 동지 살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혁명’은 일본 사회의 금기어가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비극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동지를 살해한 당사자들조차 자신들이 저지른 과오를 쉽게 설명할 수 없었다. 연쇄 살인이 벌어진 산속의 ‘밀실’에서는 희생자를 선택하는 기준이 없었다. 내일은 누가 묶이고 고문당할지 알 수 없었다.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두려움과 의구심을 모두들 하나같이 눌러 죽였고, 오히려 더욱 열성적으로 폭력에 참가했다. 폭력은 동지가 진정한 혁명가로 거듭나게 하기 위한 원조 행위였다. 폭력 앞에서 망설임을 느끼는 건 혁명가답지 못한 일이었다. 그들은 마음이 강하지 못한 자신을 스스로 꾸짖었다. 아무도 자신들이 걸어가는 엇나간 길을 멈추지 못했다.

평균 나이 23.3세, 혁명적 열정 이외에는 여느 또래와 다를 게 없었던 젊은이들을 돌이킬 수 없는 구렁텅이로 떠민 ‘보이지 않는 손’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적군파의 궤적을 탄생부터 소멸까지 추적하며 그들의 내면을 세밀하게 해부한다. 그리고 적군파의 비극이 유별난 악마가 저지른 이례적 범죄가 아니라 보편적 인간 심리에 기반을 둔, 누구나 빠져들 수 있는 자기 함정이라는 것을 밝혀낸다.

일본 진보를 수렁에 빠뜨린 ‘연합적군 숙청 사건

지금은 정치적 대자보 한 장 찾아보기 힘든 일본 대학의 캠퍼스. 하지만 일본에도 한때 학생 운동이 불타던 시절이 있었다. 1960년대 말 ‘전공투(全共鬪)’라는 이름으로 타오른 저항의 불꽃은 순식간에 일본 전역 100개 이상의 대학으로 옮겨 붙었다. 수십만 명의 학생들이 헬멧과 각목으로 무장하고 강의실을 뛰쳐나와 경찰과 부딪쳤다. 베트남 전쟁, 일본 내 미군 기지 건설, 미국의 신탁 통치를 받던 오키나와 문제, 미농촌의 난개발, 대학 당국의 부패 등 맞서 싸울 사회 문제는 차고 넘쳤다. 시민 사회도 열정적 젊은이들의 싸움에 적극 동조했다.

그러나 열도를 휩싼 투쟁의 열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1972년 ‘연합적군 숙청 사건’과 함께 학생 운동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31명의 청년들이 산속에서 서로 죽이고 죽어 두 달 만에 12명이 희생된 전대미문의 연쇄 살인. 전원이 합세하여 동지를 때리고 찔러 살해했다. 동생이 형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희생자 중에는 고등학생도, 임신한 여성도 있었다. 일본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이 사상 최악의 ‘우치게바(?ゲバ, 학생 운동 파벌의 내부 폭력)’ 이후 “모든 것이 끝났다”고 한 활동가는 회고한다.

숙청은 누구나 빠져들 수 있는 심리적 함정이었다

이 책은 ‘연합적군 숙청 사건’, 그리고 숙청의 중심이었던 급진 학생 운동 조직 ‘적군파’의 실체를 해부한다. 사회학자이자 일본 좌파 운동 연구의 권위자인 저자 퍼트리샤 스테인호프는,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 또는 정신 이상자의 소행으로 매도되기 십상인 연합적군 숙청 사건에서 인간 심리의 보편성을 발견한다. “내게 이 사건이 주는 진정한 교훈, 진정한 공포는 지극히 일반적인 사회 상황이 뜻밖의 이변을 낳았다는 사실이다.”(154쪽)라고 그는 말한다. 20여 년 동안 현장을 발로 뛰며 적군파 멤버와 숙청 사건의 생존자 및 관계자들을 인터뷰하고 수많은 자료를 탐독한 끝에 다다른 결론이다.
적군파 멤버들은 평범하게 성장하다 대학에 들어와 사회 문제에 관심을 품은, 여느 20대와 다르지 않은 순수한 젊은이였다. 그들이 참혹한 비극에 다다르기까지 걸어간 길은 누구나 빠져들 수 있는 심리적 함정이었다. 이 책은 적군파의 결성부터 소멸까지 전 과정을 추적하며 그들의 내면을 고스란히 독자 앞에 드러내 보여준다. ‘내가 그때 그 자리에 있었다면 과연 벗어날 수 있었을까?’라고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저항과 혁명의 1960년대, 일본 좌파 운동의 생생한 호흡을 느낀다

1960년대 후반은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학생들이 주축이 된 신좌파 운동이 폭발한 시기였다. 운동의 기세가 점차 하향세로 접어들면서 독일의 적군파(RAF), 이탈리아 붉은 여단, 미국 웨더맨 등 폭력 혁명을 주창하는 급진 단체가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당시 미국 학생 운동의 중심지였던 미시간 대학에서 신좌파 운동을 직접 경험한 저자는, 시공간을 넘나드는 폭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하여 일본 학생 운동을 분석한다. 적군파가 탄생하기까지 일본 학생 운동이 거쳐 온 치열한 분파 갈등과 급진화의 여정, 그리고 그 배경에 깔린 사회 상황이 객관적이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필치로 서술된다.
한국어판에는 일본과 세계의 학생 운동 관련 연표와 풍부한 각주 및 시각 자료가 추가되었다. 특히 20쪽에 달하는 연표는 일본 학생 운동의 핵심 흐름을 명쾌하게 보여준다. 일본 문학과 영화를 비롯한 문화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끼쳐 온 이른바 ‘전공투 세대’의 경험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한국 최초로 소개되는 적군파 연구의 대표작

‘적군파’의 악명은 한국에도 익히 알려져 있다. 30년간 전 세계를 무대로 테러를 벌이다 2000년에 체포된 ‘테러의 여왕’ 시게노부 후사코도 적군파 간부였다. 일본 전국에 생중계되어 시청률 95%를 기록한 사상 초유의 인질극 ‘아사마 산장 사건’의 주범도 적군파였다. 북한에 혁명 기지를 만들겠다며 일본 최초로 비행기를 납치하여 평양으로 떠난 ‘요도호 사건’의 장본인 역시 적군파 멤버다. 얼마 전(2012년 10월) 작고한 일본 영화계의 거장 와카마쓰 고지 감독의 《실록 연합적군》을 비롯하여 연합적군을 소재로 한 영화 몇 편이 한국에 알려지기도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도 작중의 단체 ‘여명’을 묘사하면서 연합적군을 모티브로 차용했다. 그러나 과격 테러 집단의 대명사라는 인식을 넘어 적군파를 낳은 사회적 배경과 그들의 심리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일본 현지에서도 드물었다. 이 책은 사회학과 심리학을 기반으로 하여 적군파를 정면으로 분석한 최초의 연구서이자, 적군파의 전모를 이해하기에 가장 적합한 길잡이다.

《책 속으로 추가》
마지막 날 기동대 숫자는 1,500명으로 늘어났다. 산장 앞부분을 파괴하는 작업이 거대 크레인을 동원하여 시작되었고 약 50톤이나 되는 물이 발사되었다. 경찰은 12발의 연막탄과 1,400발이 넘는 최루탄을 썼다. 낮에 기동대가 산장 돌입을 개시하자 연합적군 멤버들은 총과 쇠파이프 폭탄으로 항전했다. …… 이 공방전 마지막 날 현장은 일본의 모든 방송국이 10시간 가까이 생중계했고 95퍼센트에 달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 2장 적군파 - 혁명 병사라는 이미지(138~139쪽)

당시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이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농성하던 멤버들에게 공감했으며 수백 명이나 되는 기동대에 맞서 전투적으로 싸우던 모습에 성원을 보냈다고 회상한다. 공방전이 한창 벌어질 때 더욱 명확한 지지 선언이 도쿄대나 교토대 등 대중 집회에서 발표되었고 여러 캠퍼스에서 응원 팸플릿이 뿌려졌다. …… 이 사건은 다른 무엇보다도 허무하게 패배했기 때문에 신념에 근거해 자신을 희생한 투쟁으로 여겨졌고, 많은 일본인에게 시대의 영웅을 안겨준 고결한 행위로 각인되었다. - 2장 적군파 - 혁명 병사라는 이미지(139~140쪽)

숙청의 발각, 운동의 좌절

이론 때문에 죽인 건지, 죽이고 나서 이론으로 정당화한 건지 그들도 구분이 안 가는 것 같다.
…… 이제 신좌파는 좌절할 수밖에 없다.
운동은 결국 그들이 이끌어 가고자 했던 방향과 반대쪽으로 나아갈 것이다.
- 마쓰모토 세이초(작가)

아사마 산장에서 농성하던 연합적군 멤버 전원이 체포되고 일주일 뒤, 경찰은 연합적군이 기지로 쓰던 산속의 오두막집 근처에서 시신을 발견했다. 연이어 발견된 시신은 총 12구. 모든 시신에서 장시간에 걸친 잔혹한 고문의 흔적이 눈에 띄었다. 연합적군 내부에서 무시무시한 숙청이 벌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사마 산장에서 체포된 멤버들은 숙청에 참가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이었다.
‘연합적군 숙청 사건’은 일본 진보에 헤아릴 길 없는 충격을 안겼다. “적군파의 다른 활동들이 시대의 흐름 속에 묻혔어도, 이 사건만큼은 깊은 고뇌의 근원이자 운동이 극복해야 할 하나의 유산으로 남은 것이다.”(152쪽) 저자는 적군파의 궤적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적군파와 일본 학생 운동을 이해하려면 연합적군 숙청 사건에 정면으로 도전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20여 년간의 당사자 인터뷰와 현장 조사를 통해 “이 사건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극단적 사건이 아니라 빠져들기가 너무나 쉬웠던 심연이라는 사실”(152쪽)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내게 이 사건이 주는 진정한 교훈, 진정한 공포는 지극히 일반적인 사회 상황이 뜻밖의 이변을 낳았다는 사실이다. 내 목적은 그 상황을 추적하여 조사하는 것이지 이야기를 세부에 걸쳐 정확히 반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세부야말로 진상을 밝혀준다고 할 수 있다. 세부를 알지 못한다면 1972년 겨울 죽음의 숙청으로 연합적군이라고 불린 일본의 혁명적 단체가 31명에서 19명으로 줄었다는 사실을 아는 데 그칠 뿐이다. 한겨울 일본의 산속에서 그들이 동지 12명을 때리고, 찌르고, 고문하여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사실을. - 3장 연합적군 숙청 사건 - 폐쇄된 집단의 내부 폭력(154쪽)

‘공산주의화’를 향한 끝없는 자기 비판

나가타 히로코 “당신, 산에는 왜 온 거야?”
도야마 미에코 “왜냐니……. 군사 훈련을 하러 왔지요.”
나가타 “그게 아니라, 당신이 무슨 생각으로 왔느냐는 거야.”
도야마 “저는 혁명 전쟁을 더욱 전진시키기 위해 스스로 군인이 되어 혁명 전사가 될 필요성을 이해해서 왔습니다. 세계 혁명 전쟁의 지구적 대치 단계에서는 선진국에서 혁명 전쟁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에…….”
나가타 “당신 자신이 무슨 생각으로 산에 온 거냐고. 지금 자기 이야기는 하나도 안 하고 있잖아. 왜 산에 온 건데?”
도야마 “무슨 말을 하라는 거죠?”
- 적군파와 혁명좌파의 공동 군사 훈련에서 오간 대화

저자가 연합적군 숙청 사건의 동력으로 지목하는 것은 숙청 당사자의 판단과 행동에 주춧돌이 된 ‘이론’의 힘이다. 이론은 본디 인간의 힘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변혁하려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시도의 산물이다. 그러나 연합적군은 스스로 만들어낸 이론에 눈이 가리고 만다.
비극의 발단은 적군파 지도자 모리 쓰네오가 만들어낸 ‘공산주의화’와 ‘총괄’이라는 관념이었다. 모리에 따르면 ‘공산주의화’를 이뤄야 훌륭한 혁명 전사가 될 수 있었다. 그는 ‘공산주의화’를 이루기 위해 ‘총괄’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조직 전체의 집단 비판을 거쳐 각자 자신의 문제점을 자각하고 극복하자고 제안했다. 기탄없이 비판을 주고받음으로써 동지의 진보에 협력하자는 것이었다.

모리는 새로운 조직이 어떤 혁명적 행동에도 대응할 수 있으려면 먼저 멤버의 내면적 준비가 필요하며 한 사람 한 사람이 공산주의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산주의화라는 개념이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히 밝히지는 않았으나, 여하튼 더욱 훌륭하게 공산주의화한 혁명 전사가 되기 위해 각자 자신의 부르주아적인 행위를 자기 비판하여 일소하자는 이야기였다. 공산주의화를 달성하는 방법은 각 멤버의 약점을 집단적으로 검증하고 개개인이 지적받은 약점을 뛰어넘고자 노력하는 것이었다. - 3장 연합적군 숙청 사건 - 폐쇄된 집단의 내부 폭력(171쪽)

연합적군 멤버들은 모리의 제안을 환영했다. 모두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여 훌륭한 혁명 전사로 거듭나겠다는 의욕에 가득 차 있었다. “애초의 열광적인 맹신 속에서 대부분의 멤버는 공산주의화를 손쉽게 획득할 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 비판 대상이 된 사람마저 열심히 노력하기만 하면 성과가 있으리라고 생각했다.”(179쪽)
그러나 ‘공산주의화’의 관념 자체가 모호했기에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경지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따라서 실제로 ‘공산주의화’를 이루는 데 성공한 멤버는 아무도 없었다. ‘총괄’ 대상으로 지목된 멤버들은 점점 심해지는 집단 비판을 언제까지나 감내해야 했고, 끝없이 이어지는 추궁을 당하며 지극히 사소한 실수까지 모든 과거를 고해하듯 토해내야 했다.

‘공산주의화’라는 방침 아래 멤버가 지극히 사소한 성적 과오까지 진지하게 고백하고, 집단적 비판 세례를 받으면서 그 과오가 부르주아 사상이 남아 있는 탓이라는 크나큰 문제로 부풀려졌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그런 하찮은 고백을 아무리 해봤자 혁명 전사로 나아가는 길을 제대로 걷고 있는지 여부는 알 길이 없다. 그러기는커녕 같은 수준의 사소한 행동을 아직 고백하지 않은 사람에게 불신감을 품는 토양이 생겼다. - 3장 연합적군 숙청 사건 - 폐쇄된 집단의 내부 폭력(178쪽)

자기 변혁을 위한 폭력, 동지를 돕는 구타

이제까지 요구한 총괄의 한계를 뛰어넘어 진정한 총괄을 위해 때리도록 하자.
때려서 바른 길로 이끄는 거다. 기절할 때까지 때린다.
깨어났을 때는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 공산주의화를 받아들일 거다.
- 모리 쓰네오, 폭력에 의한 ‘총괄’을 처음 제안하며

‘총괄’ 대상이 된 멤버들이 ‘총괄’을 혼자 힘으로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이 내려졌을 때, 동지의 발전을 원조한다는 명목에서 폭력이 시작되었다. 지도자 모리는 구타를 ‘자신의 약점과 대결함으로써 약점을 극복하게 하는 수단’이라고 규정했다. 때리고 나서 혹한 속에 꽁꽁 묶어 둔 채 굶기는 것은 동지가 자신의 문제를 자각하고 극복하는 데 ‘완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었다.

중앙위원회는 바로 두 사람을 구타할 임무를 나누어 맡았다. 이미 잠자리에 든 다른 멤버들도 구타 장면을 보라고 깨워서 불러모았다. 맞으면서 두 사람은 성적인 관계에 대해 점점 더 많이 고백했는데, 고백에 의해 올바른 ‘총괄’로 가는 길을 개척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는 것은 그 사실이 모리의 예상과 달랐을지언정 공산주의화 달성을 향한 효과적 수단을 발견했다는 확신에 깊이를 더해주었다. 모리는 이 결과에 상당히 만족스러워했고, 집단이 공산주의화의 과정에서 ‘새로운 지평’을 발견했다고 언급했다. - 3장 연합적군 숙청 사건 - 폐쇄된 집단의 내부 폭력(185쪽)

지도자의 입에서 이처럼 눈앞의 현상을, 당장의 행위를 뒷받침하는 이론적 설명이 떨어지고 그 자리에 있는 전원이 그 설명을 받아들였을 때, 보이지 않는 말 한마디는 엄청난 위력을 지닌 괴물로 화했다.
한번 이론이 주어지자 더는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새로운 사태가 벌어지면 그에 맞는 새로운 이론이 부여될 것이었다. 이론의 밀실에서 벗어날 틈이 또 다른 이론으로 하나하나 막혀 갔다. 급기야는 살해당한 동지의 죽음을 혁명 전사로서 자신의 부족함에 절망한 끝에 ‘패배사(敗北死)’한 것이라고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폭력에 참가하라는 지시를 받고 전원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오자키를 마구 때렸고, 기운이 빠져 저항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도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각자 자기를 지키기 위해 한 행위였으나 이데올로기의 차원에서는 오자키를 돕는 행위로 정의되었다. 그러나 오자키는 죽어버렸다. 만약 그들이 때린 탓에 죽었다면 그들은 살인자다. 그리고 공산주의화를 달성하려고 함께 한 노력은 그들을 그릇된 길로 이끈 셈이 된다. 이런 상황에 직면한 멤버들에게 모리는 오자키가 그들의 행동 탓에 죽은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의 과오 때문에 죽었다고 잘라 말했다. 오자키는 모두가 도와주었는데도 불구하고 공산주의화의 지평으로 나아갈 힘이 없었기에 패배사를 ‘선택’한 것이다. - 3장 연합적군 숙청 사건 - 폐쇄된 집단의 내부 폭력(191~192쪽)

동지가 하나 둘 죽어 가면서 남은 사람들은 오히려 더욱 충실하게 이론에 매달렸다. 이론을 잃어버리면 이미 저지른 살인 행위를 설명할 길이 없다. 이론을 놓아버리고 폭력에서 손을 떼는 것은 곧 자신의 의지가 약하다는 뜻이다. 약함이 드러나면 다음 희생자는 자신이 될 것이다. “점점 심해지는 폭력 앞에서 주춤한 사람도 마음 약한 자세를 조금이라도 보이면 이번에는 자신이 비혁명적이라고 추궁당하리라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188쪽) 개개인의 내면에 도사린 공포에 힘입어 이론이라는 괴물은 갈수록 강력하게 연합적군 멤버들을 사로잡았다.

“왜 동지를 죽였습니까?”

객관적 사실은 동지를 죽였다는 것이며,
동지의 눈에 비쳤을 ‘괴물’의 모습이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혁명적이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그 모습이 진정한 자신의 모습임을 인정하고,
그 모습을 부정하고, 부정을 끝까지 완수했을 때 비로소 총괄의 첫걸음이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 반도 구니오, 감옥에서 나가타 히로코에게 쓴 편지 중에서

이 책의 미덕 중 하나는 연합적군을 다룬 여타의 많은 책들과 달리 ‘사건 이후’의 과정까지 추적한다는 데 있다. 이론이 무너진 자리에서 청년들은 이제 동지를 살해했다는 현실을 혼자 힘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사용할 줄 아는 도구는 숙청 과정에서 이용한 바로 그 수단밖에 없었다. 산속에서 숙청 희생자가 끝없이 과거를 추궁당하며 온갖 사소한 실수에다 없는 죄까지 만들어서 고백했듯, 감방 안에서 그들은 자신이 어디서 어떻게 길을 잘못 들었는지 편집증적일 만큼 거듭해서 점검했다. ‘자기 비판’을 거쳐 숙청으로 치달아 간 이들이 ‘자기 비판’을 통해 숙청을 반성한다는 모순을 저자는 섬세한 시선으로 포착해낸다.

거듭거듭 모리는 같은 지점, 즉 1970년 봄에 시오미가 체포되었을 때부터 자신이 그릇된 행동으로 접어들기까지 걸어간 길로 되돌아가 검증을 계속했다. 그의 설명은 왜곡되거나 샛길로 빠지기도 했지만, 그와 별개로 체포 직후부터 모리의 근본적인 전제는 자신은 죽어 마땅하다는 것이었다. …… 10개월에 걸친 괴로운 자기 검증 이후, 연합적군 기지에서 첫 번째 사망자가 나온 지 꼭 1년이 지났을 때 모리는 그의 지도자 시오미와 가장 가까운 부하였던 반도에게 보내는 마지막 자기 비판서를 남기고 스스로 자신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는 도쿄 구치소의 독방에서 자살했다. - 5장 사건 이후 - 끝없는 이야기 지어내기(312~313쪽)

연합적군의 ‘총괄’은 그 수사(修辭)와 추구하던 목적과는 달리 사실상 자백을 강요당하는 데 저항하기보다 오히려 자백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멤버들을 훈련하고 말았다. 총괄 요구에 저항해봤자 소용없었고 한번 폭력이 도입되자 말로 저항하면 반드시 체벌이 뒤따랐다. …… 숙청은 살아남은 자의 가슴에 경찰은 틀림없이 그들이 서로에게 한 것보다 훨씬 잔인한 일을 하리라는 공포와 그런 압도적인 육체적 고통에 과연 저항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남겼다. 경찰이 아무런 폭력도 행사하지 않을 뿐 아니라 멤버들이 서로를 대한 것보다 훨씬 온화한 태도를 취했을 때 그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연합적군에서는 결코 용서받지 못했을 묵비를 계속하면서 체포자들은 지도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총괄’에 기나긴 시간을 들여 찬찬히 파고들었다. - 4장 아사마 산장 농성 - ‘섬멸전’의 아이러니(287~288쪽)

죽음의 이데올로기

나는 내가 광기의 세계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보며 내가 그런 세계를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성을 잃을 만큼 사리 분별을 못하게 된 상태였다거나
상황을 판단할 능력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고 판단하고 처리했던 것이다.
- 모리 쓰네오, 감옥에서 연합적군 숙청을 자기 비판하며

“숙청은 다름 아닌 사회적 힘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326쪽)고 저자는 말한다. 그들의 행동은 지극히 일반적인 사회적·심리적 경로를 거쳐 일어났고 고의라기보다 우발적인 것이었다. 한번 집단적 갈등이 시작되자 집단 스스로 그 갈등을 멈추기란 불가능했다. “이 사건은 그런 집단적 갈등의 동기로서, 또 도덕적 정당화로서 이데올로기가 맡는 위험한 역할을 드러낸다.”(326쪽) “인간은 정신적 밀실 속에서라면 커다란 공포를 안고서도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다. 단 그러려면 개인적인 책임에서 해방해줄 사상이라는 힘이 밀실의 문을 꾹 밀어 닫아줄 필요가 있다. 사상을 끊임없이 부여함으로써 비로소 동지에게 그처럼 잔인한 행위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323쪽)라고 저자는 결론짓는다.

각자가 자기 나름의 속도로 연합적군을 둘러싼 유동적이고 복잡하게 얽힌 상황을 거쳐 갔다. 그 과정의 전체상을 재구축해보면 올바른 선택을 진지하게 행한 극히 평범한 사람이라도 벗어날 수 없는 사회적 경로에 무의식적으로 휘말릴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중에 돌이켜봐도 여기서 멈추었어야 할 명확한 지점은 아무데도 없다. 여기서 뛰어내리지 말았어야 할 눈에 보이는 낭떠러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 말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어떤 사람이 헤엄을 치다 너무 멀리까지 가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발장구 한 번이 도를 넘는 한 번이었는지, 물결치는 파도 속에서 정확히 어느 시점에 돌아가야겠다고 판단해야 했는지 정확히 답할 수 있는 이는 없을 것이다. - 5장 사건 이후 - 끝없는 이야기 지어내기(327~328쪽)

우리 모두가 연합적군 사건 같은 비극의 피해자도, 가해자도 될 수 있다. 그런 비극은 혁명 이후에도, 이전에도 똑같이 일어난다. 이데올로기적 신념이 우리의 눈과 귀와 마음으로 인식한 것보다 더욱 진실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한, 그리고 조직의 결속과 지도자의 권위가 개개인이 ‘아니오’라고 말할 가능성을 짓밟는 한 몇 번이고 거듭 일어날 것이다. - 5장 사건 이후 - 끝없는 이야기 지어내기(329쪽)


목차


ㆍ 한국어판 서문
ㆍ 감사의 말
ㆍ 프롤로그 - 이스라엘 감옥의 일본인 테러리스트

1장 오카모토 고조 - 적군파 병사의 꿈
오카모토 고조와의 인터뷰
일본인의 책임 의식

2장 적군파 - 혁명군 병사라는 이미지
적군파 결성의 이데올로기
무장 투쟁이라는 돌파구
제2세대

3장 연합적군 숙청 사건 - 폐쇄된 집단의 내부 폭력
연합적군이라는 조직
‘공산주의화’
폭력과 정화
폭력과 이론적 정당화의 상호작용
뫼비우스의 띠

4장 아사마 산장 농성 - ‘섬멸전’의 아이러니
숙청의 끝
아사마 산장 농성
‘비밀’의 고백

5장 사건 이후 - 끝없는 이야기 지어내기
자기 비판과 전향 사이
책임의 형태
죽음의 이데올로기

ㆍ 에필로그
ㆍ 참고 문헌
ㆍ 옮긴이 후기
ㆍ 연표
ㆍ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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