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의 관성이 이미 삶의 우선순위로 깊이 자리 잡은 ‘여행 홀릭들’에게 코로나 시국은 그야말로 인생이 일시 정지된 느낌일 것이다. 2020년도 초에 시작된 이 현상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그 당시에는 정말 상상도 못했다. 다음 계절이 오면 나아지겠지. 연말 때쯤이면 일상을 회복할 거야. 그러다가 2021년이 지나가고 2022년이 시작되었다. 나에게 2021년은 세 번째이자 마지막 안식년이다. 그만큼 값지게 보내고 싶었다. 그런데 외국으로의 연구년을 계획하기는 무리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1년 내내 ‘집콕’만 한다는 것은 더더욱 문젯거리가 될 것이고 오히려 많은 부작용이 따를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일단 제주 올레길을 걸어보자는 것이었다. 결국 그해 3월에 425km의 제주 올레길 26코스를 완주한 데 이어 그 탄력으로 205일간 BAC 명산100 프로그램을 완등하였다. 그것도 모자라 11월에 제주 올레 시즌 2까지 완주한 것이다. 이처럼 코로나19는 나를 변화시켰고 나에게 엄청난 일을 해내도록 만들었다. 안식년의 어원은 종교적인 의미로 사람이 7년마다 1년씩 쉬는 해를 말한다. 이 해에는 종에게 자유를 주고 빚을 탕감해 주었다고 한다. 교육기관에서의 안식년을 ‘연구년’이라고도 부른다. 1년 동안 재충전하면서 앞으로 교육을 위한 연구를 하라는 의미다.

레저스포츠학과에서 근무하고 있는 나는 이번 연구년에 전공을 잘 살린 셈이다. 이를 토대로 앞으로 좀 더 알찬 교육을 펼쳐야겠다. 그리고 나의 안식년의 여정을 좀 더 오랫동안 기억하고자 책으로 펴내기로 하였다. 나는 몇몇 학술서적 집필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였고 언론사 칼럼이나 잡지사 기고문을 써 왔지만 여행기는 처음이라 낯설다. 원래 글쓰기는 매우 어렵다. 예전에 이천 도예촌에서 어떤 유명 도예작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던져버린 도자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얼른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이해가 간다. 자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을 세상에 내놓는 것은 마치 아무 옷이나 대충 걸치고 세수하지 않은 얼굴과 머리 모양으로 외출하는 것과 같다. 학문 서적 또한 형편없는 내용인데 서점에 꽂혀있다는 것은 아마 저자가 그 분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거나 낯 두꺼움 그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왜곡된 저작물이 후세대에게 읽힌다고 생각하면 매우 위험하다.

이처럼 나는 학술서적 출간이나 언론사 칼럼을 기고하는데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여행 서적의 경우 지식의 저장물이라기보다는 직접 다양한 문화를 보고 체험하면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이나 느낀 점을 정리한 것으로서 학술서적이나 칼럼과 그 성격이 다르다. 그런데 학술서적이나 칼럼에 비하여 내용이 좀 가벼울지 몰라도 불특정 다수인 광범위한 대중에게 읽힌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부담이 간다. 다만, 신경이 쓰인다고 해서 주저주저하면 나의 2021년 1년간의 대장정이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할 때 책 출간의 용기가 솟는다. 그래서 그 역사적인 행적들을 낱낱이 기록한다고 생각하고 글쓰기를 시작하기로 하였다.

이 책이 나오기 까지는 가족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아내는 책 출간을 권유하였고 교정까지 정성스럽게 봐주었다. 이은이와 윤식이는 책의 제목을 달아주고 표지 선택을 해 주었다. 또한 올레길을 걸으면서 길바닥에 주저앉으려고 하면 일으켜 세워준 형님들, 친구들, 후배 지인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그들이 없었으면 길을 걷지도 못했고 책도 나올 수 없었다. 귀농한 형님이나 육촌 형님은 시골에 방문할 때마다 항상 나를 응원해주셨다. 또한, 역량 있는 학과 교수님들도 나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끝으로 바쁘신 중에도 기꺼이 출간을 허락해 주신 오랜 인연의 레인보우북스출판사 민선홍 사장님 이하 출판사 식구들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