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이 책은 형법의 주요 판례를 좀 더 쉽게 이해하는 데 주안을 두었습니다. 판례는 사실상의 규범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규범에 사실을 적용하는 구체적 작업을 판례로부터 배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판례에 대한 이해와 학습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근래 변호사시험을 비롯한 각종 공무원시험에서 판례의 비중은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그리고 그 출제의 범위도 광범위하여 수험생들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는 장면이 있습니다. 수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시간에 쫓겨 판례의 사실관계나 법리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키워드나 두문자 등을 기계적으로 암기해 수험에 임하는 모습입니다.
암기의 방편으로 그러한 방법이 나쁘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실관계나 법리의 이해 없이 급속 암기한 뒤 시험을 치고 나오면서 머리까지 포맷하는 것은 너무 소모적이라 생각합니다. “이해 없는 암기는 공허하고, 암기 없는 이해는 불안하다.” 이해와 암기는 별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사실관계와 판결요지를 잘 이해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 내용도 머리에 오래 남게 되는 것입니다.
판결문을 읽다 보면 ‘법리’란 용어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판결문의 법리에 주목하여야 합니다. 법리(法理)란 법(法)에 있어서의 이(理)치를 말합니다. 여기서 ‘理’란 일정한 법칙을 의미합니다. ‘理’란 한자의 자원(字源)에는 구슬 옥(玉)이 들어가 있습니다(玉 + 里). 이는 옥에 결이 있듯이 ‘理’라는 것은 일정한 질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자전에서 ‘理’는 다스리다, 길, 조리, 결, 천성, 평소의 몸가짐 등의 뜻으로 나오고, 유학과 관련해서는 “所以然之故”, 즉 ‘존재에는 반드시 그러한 까닭이 있다’는 뜻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판결문에는 내재적인 결(理)이 있습니다. 그것이 표현된 것이 있고 되지 않은 것도 있지만 모두 일정한 법리 하에서 판결은 내려지고 있습니다. 판사는 자의적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법과 그에 내재하여 있는 법리에 따라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 책이 이러한 법리를 독자들이 좀 더 이해하기 쉽도록 안내해 줄 것이라 믿습니다. 나아가 판례를 통해 형법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끝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할 분들이 있습니다. 『일본형법판례』(총론편, 각론편)의 공저자인 김잔디 교수님은 이 책의 원고를 꼼꼼히 읽고 조언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기대 이상으로 편집 작업을 해주신 박영사의 김명희 차장님과 기획을 도와주신 김한유 과장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2022. 1. 17.
박 상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