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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로왕 금관가야의 역사와 문화

김수로왕 금관가야의 역사와 문화

  • 김종성
  • |
  • 서연비람
  • |
  • 2022-02-05 출간
  • |
  • 264페이지
  • |
  • 147 X 210 X 21 mm /354g
  • |
  • ISBN 9791189171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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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지은이가 금관가야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한 권의 학술서 때문이었다. 그 당시에도 각급 학교에서는 전기가야연맹의 맹주국은 금관가야였고, 후기가야연맹의 맹주국은 대가야였다고 가르쳤다. 그런데 2003년 봄볕이 다사롭게 쏟아지던 날 학교 정문 가근방의 고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그 학술서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기술되어 있었다. 변진구야국은 김해의 금관가야가 아니라, 고령의 대가야이며, 미오야마국은 거제도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임나가라는 김해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고령에 있었으며, 금관가야는 실제로 가야의 맹주 노릇을 하지 못했고, 『삼국유사』에 나오는 6가야 중 가장 약체로 보잘것없는 작은 나라라고 기술되어 있었다.
금관가야가 보잘것없는 작은 나라가 아니었다는 증거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꼼꼼하게 읽어보면 알 수 있는 내용이고, 김해·부산 지역에서 출토된 고고자료를 살펴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김해의 대성동고분군·양동리 고분군·봉황대유적·원지리고분군, 부산의 복천동고분군 등에서 쏟아져 나온 고고자료들은 김해를 중심으로 한 낙동강 하구 일대에서 가야 문명의 꽃을 피운 금관가야가 3∼4세기대에는 가야 여러 나라 중 최강자였으며, 5세기 이후에도 다른 가야 여러 나라들과 병립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1960년∼70년대 『삼국유사』 ‘가락국기’조와 ‘5가야’조에 나오는 가야 소국들의 위치 비정을 시작으로 한 가야사 연구는 1990년대 이후 가야사에 관한 많은 학설이 발표되었다. 그러한 학설과 견해 가운데 정설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을 각급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정답’으로 가르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사학자가『삼국유사』에 나오는 고령가야를 “지금의 경상남도 진주인 듯하다.”라고 추정한 것을 아직도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나름대로 타당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나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삼국유사』에 고령가야국이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에 있었다고 기술되어 있다는 것과 현재 학계에서는 고령가야국이 과연 가야 소국의 하나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부정적 견해와 긍정적 견해가 있다는 것을 함께 가르쳐 학생들이 비판적 사고력을 키워 창의적인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가야에 관한 자료를 읽으면서 가야사를 둘러싸고 고대의 가야 여러 나라가 영남의 각 지역에 자리 잡고 멸망할 때까지 공존과 경쟁 양상을 보이면서 병립했듯이 현대의 영남 지역의 지방자치단체와 대학들이 가야사를 둘러싸고 공존과 경쟁 양상을 보이면서 병립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은이가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한국현대소설을 연구하던 2003년 무렵에도 각급 학교에서는 전기 가야연맹의 맹주국은 금관가야였고, 후기가야연맹의 맹주국은 대가야였다고 가르쳤다. 그런데 그해 봄 학교 정문 가근방의 고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단행본에서는 전혀 다른 학설이 기술되어 있었다. 변진구야국은 경상남도 김해의 금관가야가 아니라, 경상북도 고령의 대가야이며, 금관가야는 실제로 가야의 맹주 노릇을 하지 못했고, 『삼국유사』에 나오는 6가야 중 가장 약체로 ‘보잘것없는 작은 나라’라고 기술되어 있었다. 그 학술서의 지은이는 문헌사학자였다.
금관가야가 ‘보잘것없는 작은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고고자료를 통해 실증적으로 밝혀준 사람은 고고사학자였다. 금관가야가 보잘것없는 나라가 아니었다는 증거는 김해·부산 지역에서 출토된 고고자료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김해의 대성동고분군뿐만 아니라, 양동리 고분군· 봉황대유적· 원지리고분군, 부산의 복천동고분군 등에서 출토된 고고자료들은 김해를 중심으로 낙동강 하구 일대에서 가야 문명의 꽃을 피운 금관가야가 3∼4세기에는 가야 여러 나라 중 최강자였으며, 5세기 이후에도 다른 가야 나라들과 병립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문헌 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가야사 연구에서 고고학적 기반이 없이 연구하면 모험적이라는 것을 어느 문헌사학자의 학술서가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가야사를 고고자료 위주로만 연구하는 것도 모험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어느 고고사학자가 주장한 ‘금관가야 4세기 멸망설’이 그것이다. 『삼국사기』·『삼국유사』,『신증동국여지승람』, 그리고 『일본서기』 등의 문헌 자료에 금관가야(가락국)가 532년에 멸망했다고 기술되어 있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은 그의 학설이 모험적이라는 것이 대성동고분의 추가 발굴과 원지리고분의 발굴을 통해 발굴된 고고자료로 인해 드러났다.
금관가야를 비롯해 가야 여러 나라를 연구한 결과물인 논문이나 학술서를 발표하는데 있어 문제가 되는 것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통해 연구한 결과물인 논문이나 학술서가 대학에서 국문학을 공부한 사람이 읽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고고학 용어가 그대로 문장에 쓰여 있다는 것이다. 어려운 고고학 용어를 구사하여 난해한 문장으로 쓴 논문이나 학술서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글을 쓸 때 ‘금관가야’를 ‘가락국’ 혹은 ‘남가라’라고 쓴다. 일부 학자들의 주장에 따라 어느 지방자치단체는 누리집에 ‘금관가야’를 ‘가락국’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그 지방자치단체가 금관가야를 가락국이라고 표기한 것은 당대의 가락국 사람들이 자신들의 나라를 가락국이라 불렀으므로 가락국이라 써야 하며 금관가야는 고려시대 사람들의 생각이 투영된 나라 이름이라는 주장을 펴는 학자의 학설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광개토왕릉비」에 나오는 임나가라라는 표기는 ㅇㅇ가야식 표기라고 볼 수 있으며, 금관가야는 가야 여러 나라 중 금관국이라는 표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고조선 시대의 ‘조선’사람들이 자신들의 나라 이름을 ‘고조선’이라고 부르지 않았던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중·고등학교 교과서는 물론 일반 서적에도 모두 고조선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금관가야는 역사서에 구야한국, 대가락국, 가락국, 가야, 임나가라, 남가라, 수나라, 임나, 금관국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학술서가 아닌 교양서, 교과서, 참고서 등에서는 ‘가락국’ 혹은 ‘남가라’ 대신 금관가야라고 표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의 초·중·고등학교에서 ‘가락국’ 혹은 ‘남가라’를 ‘금관가야’라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지은이가 ㈜ 서연비람의 ‘역사와 문학 비람북스 인물 시리즈의 하나로 펴내는 『김수로왕-금관가야의 역사와 문화-』는 가락 9촌을 통합하여 왕위에 오른 김수로왕이 세운 가락국을 기원으로 하여 490년간 존속된 금관가야의 김수로왕과 금관가야의 역사와 문화에 관해 쓴 책이다. 이 책을 읽는 중고등학생들과 대학생들, 그리고 일반인들이 한국사와 한국문화를 공부하면서 사고의 깊이를 넓히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김수로왕-금관가야의 역사와 문화-』는 지난번 출간한 『김유신-전쟁터를 누비며 삼국통일의 불꽃이 되다-』에 이어 지은이의 가야사에 관한 관심의 표출이다. 금관가야는 비단 가야문명의 출발일 뿐만 아니라, 신라 문명 형성의 일익을 담당한 나라였기에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인들이 반드시 알아야 고대국가이다.
끝으로 지은이는 오래전부터 역사 인물에 관심을 가져 『인물한국사 이야기』 전 8권을 2004년에 출간한 바 있다. 『인물한국사 이야기』의 개정 증보판을 새롭게 펴내기 전에 한국사의 주요 인물에 대한 평전과 그 인물이 살았던 시대의 역사와 문화에 관해 쓰기로 마음먹고 그 두 번째 책으로 『김수로왕-금관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펴냈다.


목차


머리말
1. 가야의 여명
2. 금관가야의 건국
3. 김수로왕과 탈해의 쟁패
4. 김수로왕과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의 결혼
5. 삼한과 변진
6. 변한 12국과 가야
7. 황산진 전투
8. 구간 명칭 변경과 직제 개편
9. 허왕후와 김수로왕의 죽음
10. 포상팔국의 난
11. 백제·금관가야·왜 연합군과 신라·고구려 연합군의 전쟁
12. 금관가야의 재도약 시도
13. 금관가야의 멸망
14. 금관가야의 사회
15. 금관가야의 문화
16. 금관가야의 문학
17. 금관가야의 유민
18. 임나일본부 문제와 가야사 연구의 현재

김수로왕-금관가야의 역사와 문화 해설
김수로왕 연보 및 금관가야사 연표
한국사 연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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