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세상을 움직여온 여성 작가들의
품격 있고 당당한 행진, 에디션F 시리즈!
“그 여자가 온다.
사슬을 끊고 감옥을 벗어나서
왕관을 벗고 영광을 걷어차고서
그저 살아 숨 쉬는 사람으로 온다.“
-샬럿 퍼킨스 길먼
에디션F 시리즈는 주제와 작가들을 좀더 세심하게 나누어 궁리출판만의 색깔있는 문학선집을 지향하고자 합니다. 에디션F의 'F'는 ‘feminism, female, friendship’을 상징합니다. 이 시리즈는 여성 작가가 능동적인 여성의 모습을 그려나가는 작품들을 골라 여성 번역가가 작업을 계속 해나갈 예정입니다.
『여성의 권리 옹호』를 쓴 페미니즘의 선구자,
‘새로운 족속의 시조’가 되고자 했던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또 하나의 문제작, 『길 위의 편지』 국내 초역!
“나는 평범한 길을 가려고 태어나지 않았습니다.”─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삶은 하나의 실험이다.” ─버지니아 울프, 비평가이자 소설가
“독자가 책을 읽고 나서 저자와 사랑에 빠지는 책이 있다면, 바로 이 책일 것이다.” ─윌리엄 고드윈, 정치평론가이자 소설가
2020년 11월 영국 북부 뉴잉턴그린에 세워진 동상 때문에 영국 여성계와 문화계에서 뜨거운 논쟁이 일어난 적이 있다. 동상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페미니즘의 선구자’로 불리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뉴잉턴그린은 울스턴크래프트가 여성의 유토피아를 꿈꾸며 학교를 세운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 세워진 울스턴크래프트 동상이 논란의 중심에 선 까닭은 그 모습이 나체였기 때문이다. 동상을 만든 조각가는 울스턴크래프트를 시대를 초월한 “보통의 여성”으로 상징하고자 의미를 구속하는 복장을 입히지 않았다고 했지만, 비판은 가라앉지 않았고 동상을 찾은 한 여성이 ‘여성’이란 단어가 적힌 검은 옷을 알몸상에 입히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우리에게는 『여성의 권리 옹호』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길 위의 편지』가 에디션F 시리즈 열한 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국내에 처음 번역, 소개되는 책이기도 하며, 울스턴크래프트의 딸이자 『프랑켄슈타인』이라는 걸작을 쓴 메리 셸리가 자신이 태어나자마자 세상을 떠난 엄마라는 사람을 들여다보게 만든 의미 있는 책이기도 하다.
1796년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에서 짧게 체류하는 동안 쓴 편지들(Letters Written during a Short Residence in Sweden, Norway, and Denmark)’이라는 제목으로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독자들은 울스턴크래프트의 또 다른 면모를 엿보게 되었다. 자칭 진보주의자라는 남성 지식인들의 모순, 그들이 부르짖는 ‘인간의 권리’라는 인간 속에 여성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문제의식에 출발한 『여성의 권리 옹호』라는 책을 낼 만큼 지적이며 씩씩하고 대범한 줄로만 알았던 그도, 실은 이성적이면서도 감상적이었고, 강인하면서 나약했으며, 다정하면서 난폭했고, 독단적이면서도 반성적인 인간임을 『길 위의 편지』에서 여실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울스턴크래프트는 34세 때 만나게 된 미국인 길버트 임레이를 너무나 사랑했으나 임레이는 사랑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여인을 떼어놓고 싶었다. 때마침 자신이 하던 사업 중 프랑스에서 은괴를 싣고 예텐보리로 가던 배가 실종되자, 임레이는 울스턴크래프트에게 자신을 대신해 동업자들에게 받아야 할 돈을 회수해줄 것을 부탁한다. 길고 위험한 여행이 될 수 있었지만, 여행이 소원해진 둘의 관계를 회복시켜줄지 모른다는 기대로 울스턴크래프트는 수락을 한다. 그러나 스칸디나비아에서 보낸 3개월 반 동안 울스턴크래프트는 연인에게 관계를 개선할 의지가 없다는 사실만을 느꼈고, 런던에서 임레이가 여배우와 사귀는 것을 확인한 후 절망한다. 결국 템스 강에 몸을 던져 자살 시도를 하지만 구조되었고, 이후 작가로서의 역량을 좀더 펼치고자 여행 일지를 바탕으로 편지 형식의 책을 엮어 나간다.
스칸디나비아를 여행하는 문학가들의 여행 필독서이자
윌리엄 워즈워스와 새뮤얼 콜리지 등의 낭만파 시인들에게 영향을 끼친 책!
25통의 편지로 이루어진 『길 위의 편지』는 울스턴크래프트가 거쳐가는 경로를 따라 이야기가 진행된다. 여행의 시기는 6월에서 10월 초까지 이며, 여행 경로는 영국의 헐을 기점으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함부르크, 영국 도버로 이어진다.
이 책의 내용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자연 풍광, 각 나라의 사회 풍토 그리고 저자의 우울한 마음풍경이다. 그가 전하는 북유럽의 자연은 장엄하고 때로 그림처럼 아름답다. 강렬한 빛만이 가득한 북쪽의 여름밤, 햇빛이 비스듬히 스며든 너무밤나무숲, 맹렬한 기세로 떨어지는 웅대한 폭포, 유유히 흐르는 트롤하테 운하, 덴마크의 화려한 궁전을 눈에 보이듯이 그려 보인다.
그러나 이 여행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저자의 논평이다. 울스턴크래프트가 언급하는 주제들은 놀랍도록 광범위하고 논쟁적이다. 교도소 개혁, 사형제도 반대, 자유와 평등 옹호, 숭고함과 아름다움에 관한 미학 이론, 여성의 해방과 교육, 프랑스혁명이 유럽 대륙에 끼친 영향, 상거래가 사회에 미치는 해로운 영향, 산업 자본주의와 도시 빈민의 상관성, 사생아 부양에 대한 책임, 감정과 이성의 관계, 자연 신학에 대한 논고까지 담겨 있다.
출간되자마자 울스턴크래프트의 작품들 중 최고의 호평을 받았고 가장 잘 팔렸으며, 스웨덴을 비롯한 유럽 몇 개국에서 번역되고 미국판도 출간되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는 영국인 독자들에게 미지의 지역이었기에 저자가 묘사하는 북유럽 풍경은 독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나는 평범한 길을 가려고 태어나지 않았습니다.”라는 말은 『길 위의 편지』가 출간된 후 울스턴크래프트가 자신을 찾아온 젊은 작가 지망생이자 이후 친구가 될 아멜리아 앨더슨에게 한 말이다. 그는 훨씬 전에도 동생 에베리나에게 자신은 평범하지 않은 길을 걸을 것이며 “새로운 족속의 시조”가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가 꿈꾼 새로운 족속은 일정한 수입과 자기만의 방을 가진, 즉 경제권을 가진 자립 여성이었다. 그랬기에 그 길의 후발 주자인 버니지아 울프는 울스턴크래프트의 삶을 “하나의 실험”이라 불렀다. 『길 위의 편지』는 지금의 독자들에게 울스턴크래프트를 오롯이 들여다보게 해주는 인상적인 안내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