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 스콧 피츠제럴드가 재즈 시대를 보내며 남긴 역작!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직후인 1920년~1930년을 일컫는 ‘재즈 시대’라는 용어는 피츠제럴드가 단편집 『재즈 시대 이야기들』에서 언급하며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전쟁 직후인 1920년대, 미국은 엄청난 호황기를 맞이하였고, ‘아메리칸 드림’이란 슬로건에 사람들의 마음은 부풀어 올랐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사치와 향락을 일삼았으며, 그 어느 때보다도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했던 그 시기는 얼마 안 가 대공황이 찾아오며 허무하게 사그라졌다.
이러한 시기에 첫 장편 『낙원의 이쪽』을 발표하며 큰 성공을 거둔 스콧 피츠제럴드는 부와 명예를 얻고, 사교계의 스타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아내 젤다와 함께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한다. 그러나 영원히 지속될 것 같던 아메리칸 드림이 한순간에 꺾이고 대공황이 찾아와 모두를 절망에 빠트렸듯, 피츠제럴드도 이후 출간한 작품은 그에 비해 큰 주목을 받지 못했으며, 아내마저 신경 쇠약에 시달리자, 돈을 벌기 위해 수없이 많은 단편, 에세이 등을 써야 했다.
피츠제럴드는 『위대한 게츠비』 이후 10년 동안 자신의 상황을 그대로 투영한 작품, 『밤은 부드러워』를 준비했다. 옛 영광을 되찾기 위해 이 작품에 온 힘을 기울였지만, 대중과 평단의 평가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대공황 시기에 재즈 시대의 화려한 생활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에 공감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훗날 이 작품은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하였다. 독자들 사이에 회자되기 시작했으며, 시대와 인간의 아이러니를 통렬하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평단에서도 재조명되었다. 이 작품이 발표될 당시 엄청난 혹평을 쏟아냈던 헤밍웨이는 이 작품에 대한 평가를 “이 소설은 뛰어난 점이 너무 많아 경이로울 정도다.”라고 정정하기에 이른다.
파괴되어 가는 인간의 내면을 탁월하게 그리다!
이 책의 주인공인 전도유망한 정신과 의사 딕 다이버는 사교계에서 명성을 날리는 인물이다. 그는 최상류층 가문의 딸인 니콜 워런의 정신 질환을 치료하다가 그녀의 매력에 빠지고 만다. 두 사람은 결혼에 이르고, 딕은 남편과 의사 역할을 동시에 맡는다. 결혼 후 딕은 차츰 워런 가의 부(富)에 융화되어, 자신의 신념을 잃어 가고, 의사로서의 재능도 발휘하지 못한다. 그렇게 서서히 자신이 무너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중 딕 앞에 영화배우 로즈메리가 나타나고, 딕은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니콜과의 관계에도 변화를 겪는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피츠제럴드 자신을 투영한 인물이다. 그의 아내가 정신병을 앓았고, 그 자신은 알코올중독으로 사망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졌다. 본인의 이야기가 투영되어서였을까? 이 작품은 한 인간의 흥망성쇠를 집요하고도 날카롭게 파고들며 내면의 변화를 세밀하게 포착한다. 주인공 딕은 사교 모임에서 늘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사람이었지만, 우울이 그를 잠식하고, 술에 의존하기 시작하면서 그 누구도 상대하기를 꺼려하는 사람이 된다.
“내가 흑사병인 것 같아.” 그가 천천히 말했다.
“더 이상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것 같아.”
- 본문 중에서
한 가지 작은 사건 때문에 한 세계가 무너지는 일은 드물다. 한 인간을 둘러싼 여러 사건들이 켜켜이 쌓이면 비로소 서서히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피츠제럴드는 자신의 탁월한 문체로 주인공 딕의 내면이 파괴되어 가는 과정을 냉철하고 치밀하게 그려냈다.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당신은 무언가를 창조하고 싶어 했었죠?
이제는 그것들을 부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 본문 중에서
『위대한 개츠비』가 화려한 시절에 대한 고백이라면, 이 작품은 스러져가는 시절에 대한 엘레지일 것이다. 피츠제럴드는 친구에게 이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자네가 『위대한 개츠비』를 좋아한다면 부디 이 작품도 읽어 주게. 『위대한 개츠비』가 걸작이라면, 이 작품은 신념의 고백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