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소설 두 편과 세 편의 단편소설 등 다섯 작품을 한데 모아 중단편소설 전집 3 『아베의 가족』을 묶는다.
다섯 작품 중 「형벌의 집」을 뺀 「아베의 가족」 「실반지」 「겨울의 출구」 「그 먼길 어디쯤」 네 편의 중단편소설이 모두 1979년 같은 해에 발표된 작품들이다. 이것은 6ㆍ25로부터 30여 년이나 비켜선 70년대 말, 그때까지도 한 개인에게 유형무형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전쟁의 참상과 그 후유증 진단 및 그것의 치유 모색으로서의 소설 쓰기를 한껏 즐겼다는 것을 뜻한다.
열 살 무렵에 깊숙이 각인된 6ㆍ25 악령들이 해낸 일들이다. 가해와 피해의 악순환, 결과적으로 모두가 전쟁의 피해자라는 연민에서 비롯한 등단작 「동행」에서부터 「아베의 가족」 등 분단 관련 소설들은 그 시대의 맺히고 얽힌 것들을 풀기 위한, 내 안의 악령들과 벌인 넋굿 혹은 씻김굿이며, 나 자신이 그때 그런 신명의 작가 혼으로 살아 있었다는 이야기다.
어떻든 지난날의 그 일들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던 그 시대 내 이웃들의 음산하고 불퉁스러운 목소리, 그 톤으로 이야기를 꾸며내던 70년대 바로 그때가 작가로서 가장 황홀했던 시간이었다는 것을 고백한다.
중편소설 「아베의 가족」은 발표된 직후 같은 해에 두 개의 문학상을 수상하는가 하면 텔레비전 6ㆍ25 특집 드라마로 제작되어 70퍼센트라는 높은 시청률을 올린 바 있다.
아베, 백치가 입으로 낼 수 있는 유일한 소리. 덧붙여 백치가 힘껏 소리 내어 부르는 아베는 ‘아버지’의 방언이다. 부권 상실 시대, 있어야 할 아버지가 없어서 생긴 비극을 에둘러 얘기하고 싶었다. 그리고 또 다른 의미의 아베, 비극의 씨앗이 아닌, 마땅히 찬미받아야 할 성스러운 존재라는 뜻의 아베 마리아의 그 아베.
이쯤에서 다시, 아베는 누구인가, 아베는 지금 어디 있는가라는 물음을 독자에게 던진다.
오래전에 쓴 작품들을 다시 찾아 정리하는 과정에서 새삼스레 얻은 것이 많다. 역사의 뒷전에 밀려 아예 보이지도 않던 것들을 새로이 복원 재현하는, 소설이 시대의 거울 혹은 시대의 반성이라는 사회적 효용론이 내 나름의 서사 디테일에 의해 구현되었다는 실감 같은 것.
또한 시대가 바뀌면서 제도나 풍속들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작품을 통해 확인하는 일이다. 그 시대의 셈값으로 오늘의 물건값이 비교되듯 전 시대 사람들의 가치관 또한 오늘의 그것과 확연히 다르다는 것의 확인 또한 소설 읽기의 또 다른 즐거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초등학교를 국민학교로, 그 시대의 표기를 그대로 두기로 한 것 등을 통해 전집 수록 작품 끝에 그 작품의 발표 연대를 밝히는 일이 왜 필요한가를 다시 한 번 강조하기로 한다.” _‘작가의 말’에서
“전상국은 6ㆍ25 소설이라기보다는 6ㆍ25 후일담 소설이라고 할 만큼 전쟁 이후에도 지속되는 상처와 그 문제점을 끈질기게 형상화하였다. 그 남겨진 상처의 묵직한 통증을 통해, 전쟁의 참상은 더욱 강렬하게 사람들의 가슴속에 전달된다. 전쟁은 이념과는 무관한 이들의 생명과 일상을 송두리째 파괴한다. 그 참상의 형상화가 높은 수준으로 감각화된 것이 바로 아베형 인간이다. 낼 수 있는 말이라고는 아베뿐이며,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성욕의 표출뿐인 이들은 우리의 양심을 심문하며, 전쟁 상처의 극복이야말로 절대적 과제임을 우리에게 환기한다. (……) 여전히 피 흘리는 전쟁의 상처,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그 상처의 증언자로 남는다는 것은 범인이 흉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고통과 함께해온 전상국의 치열한 문학 혼이 있었기에 한국 문학의 윤리와 미학은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었다.” _‘작품 해설’에서_이경재(문학평론가ㆍ숭실대 교수)
■ 전상국 중단편소설 전집(전12권)
1. 동행*
2. 하늘 아래 그 자리*
3. 아베의 가족*
4. 우상의 눈물
5. 우리들의 날개
6. 길 · 외등
7. 지빠귀 둥지 속의 뻐꾸기
8. 사이코 · 외딴길
9. 온 생애의 한순간
10. 남이섬
11. 굿
12. 콩트집
*출간 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