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밤새 도시의 쓰레기를 치우는 환경미화원입니다!
지구에서 오직 인간만이 쓰레기를 생산해낸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가 생활하는 주변은 물론 산과 바다, 심지어는 우주 공간까지도 인간이 쏟아낸 쓰레기들로 넘쳐난다는 소식입니다. 이렇게 지천으로 넘쳐나는 쓰레기들로 환경은 몸살을 앓고 있지만, 우리가 눈앞에서 그런 현실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그리고 날마다 쾌적한 아침을 맞이하는 것은 누군가 밤새 그것들을 말끔히 치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일은 세상을 다시 배우는 일이야!” 함께 일하시는 어르신의 말씀처럼 저는 지금 쓰레기를 치우며 세상을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쓰레기 수거 일은 자정 무렵에 시작되어 직장인이 출근을 시작하는 아침 동틀 녘에 끝납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한 지 2주 동안은 역겨운 냄새와 시각을 자극하는 쓰레기 파편들로 인해 구역질이 올라와 거의 밥을 먹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정도 적응하기 시작했고, 쓰레기에 대한 마음을 바꾸니 이제는 하루하루가 환상적인 날들의 연속입니다. 물론 그 환상은 썩은 우유나 김칫국물, 밀가루를 뒤집어씀으로써 곧잘 현실로 저를 불러들이지만, 그렇게 저를 둘러싼 환경이 조금도 바뀐 것이 없음을 자각하면서도 긍정을 찾아 노력하는 저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참 많이 성장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지난주에 시민 한 분이 청소 일하시는 분에게 ‘쓰레기 치우는 주제에’라며 시비를 걸었고, 결국 경찰서에 가서 조사까지 받고 오는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가장 약자야, 우리가 아무리 잘못이 없어도 민원인들하고 싸우면 이길 수가 없어!” “그래 맞아! 쓰레기 치우는 주제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그냥 숙이고 들어가야지, 붙어서 뭐하나. 어차피 우리가 지는데….” 누구의 잘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쓰레기 치우는 주제가 가벼운 주제가 아닌 것만은 확실합니다.
# 사춘기를 집어삼킨, 남들과 다른 가족관계
학창 시절 누군가 가족관계를 물으면 저는 당연히 외동아들이었습니다. 그럼 상대방은 귀한 아들이라는 반응을 보이곤 했고, 저는 거짓말을 한 것 같다는 찜찜함이 항상 있었습니다. 어머니에게는 외동아들이 맞지만, 아버지에게는 외동아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연인즉슨 어머니가 아버지의 두 번째 혼외부인입니다.
그런데 성인이 된 어느 날부터 누군가 가족관계를 물으면 이복 남매가 4명이 더 있다고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곤 합니다. 제게 더는 가족관계가 숨기거나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면 상대방이 더 당황하곤 했습니다. 사춘기 시절과 다르게 나이가 점점 들어갈수록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 어렵고 힘든 시기를 지탱해준 힘은 독서와 글쓰기
사춘기 무렵 저는 평범하지 않은 가족관계에 대한 ‘화(火)’ 때문에 아버지에게 항상 반항심이 있었는데, 저에게 미안해하시는 어머니의 사랑이 그 ‘화’를 잠재웠습니다. 하지만 질풍노도의 시기인 고3 때 아버지의 사업 실패에 따른 어머니의 자살 미수, 그리고 이어진 부모님의 야반도주 사건에 저는 집을 떠나 홀로 세상에 맞서 살아가는 삶을 선택합니다.
그렇게 이어진 제 청춘시절은 40여 가지의 직업을 거치며 밤낮없이 씨름해도 만만치 않은 날들의 연속이었고, 거기에 더해 부모님에게 생활비를 보내는 삶을 15년 동안 이어갑니다. 그런데 파킨슨병과 투병하는 아버지를 돌보시던 어머니가 뇌경색으로 시야를 상실하게 되고, 급기야 저는 몸이 불편한 부모님을 보살피기 위해 집으로 홈인하게 됩니다.
제가 어렵고 힘든 시기를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독서와 글쓰기 덕분입니다. 책은 항상 제게 수액이 되어 지치고 힘든 삶을 버티게 해주었고, 글을 쓰는 것은 삶의 비타민이 되곤 했습니다. 저의 내면에 잠재되었던 ‘화(火)’를 또 다른 ‘화(話)’로 풀어내면서 저의 굴곡진 삶에 부모님의 사랑이 깃들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 사랑을 책에 담았습니다.
# 장애를 가지게 되신 부모님을 통해 치유를 경험하다
‘장애’의 사전적 의미는 신체기관이 본래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정신 능력에 결함이 있는 상태를 일컫는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을 ‘장애(長愛)’라고 새롭게 해석해 길고 큰 사랑의 마음으로 몸이 불편한 부모님을 보살피는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해가는 중입니다.
“내가 앞도 안 보이고 해서 너희 아버지한테 짜증도 좀 내며 이것저것 시키니까 힘에 부치는가 보더라. 너희 아버지도 성하지 않은 사람인데, 그리고 파킨슨병 때문에 말도 어눌하게 하고 행동도 느린데…. 결국 나도 환자란 말을 하더라!”
어머니의 말을 들으며 그동안 제가 어머니에게만 너무 신경 쓰느라 아버지에게 좀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 역시도 몸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아픈 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저는 문득문득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장애가 찾아오기 전까지 오히려 제가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워낙 모난 성격이다 보니 지금 부모님께서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제게 사랑을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 읽고, 생각하고, 가슴으로 감동을 느낀다!
어머니께서 핸드폰과 함께 낡은 사진 한 장을 주시면서 본인의 핸드폰 배경 화면으로 저장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젊은 아버지와 어머니, 그 사이에 첫돌을 맞은 제 모습이 들어있는 사진이었습니다. 지금의 제 나이와 같은 사진 속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젊은 시절의 아버지를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어리석게도 파킨슨병이 아버지의 삶의 결과란 착각에 사로잡혀 병 자체를 아버지라 생각했습니다. 파킨슨병을 앓고 계신 아버지의 모습이 제겐 아버지의 전부였습니다.
이제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나 해야겠습니다. 아직 부모님은 제가 무슨 일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십니다. 자식이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로 번 돈으로 생활비를 드리고 있다면 두 분 마음이 무척이나 아프실 거라는 제 짧은 생각 때문입니다. 어쩌면 제 마음 안에 아직까지 “쓰레기 치우는 주제에”라는 세상 사람들의 편견에 대한 숨기고 싶은 욕망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 냉엄한 현실에서 따뜻한 가슴으로의 감성여행!
어머니가 뇌경색으로 시야를 상실하고 난 뒤부터 부모님께 공통점이 하나 생겼습니다. 아버지는 원래 야구의 열성적인 팬이셨는데, 1970년대 고교 야구에 열광했던 어머니가 다시 야구를 좋아하게 되셨습니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아버지와 함께 TV 야구 중계를 라디오 듣듯이 듣고 계십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저도 야구에 친숙해졌는데, 얼마 전에 야구를 보며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대다수 구기 종목은 골대에 공이 들어가야 득점이 인정되지만, 야구는 경기에 임하는 선수가 홈을 밟아야지만 점수가 납니다. 이런 의미에서 야구가 가장 인간적인 스포츠인 것 같습니다. 집으로 홈인한 저는 이제 첫 득점을 했고, 앞으로 점수를 얼마나 내야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무사히 경기가 끝나고 다음 시즌이 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