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노동’에 대한 글
영미 문학사를 통틀어 문필업에 대해 가장 사실적으로 쓴 소설
<2014 가디언지 선정 세계 최고 소설 100 No. 28>
부록 조지 오웰의 에세이 <충분치 않은 돈> - 조지 기싱에 대한 스케치
사실주의 소설가 조지 기싱의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고 여겨지는 이 소설은 초라한 런던 하숙방에서 가난에 시달리며 글을 썼던 작가의 경험이 생생하게 녹아 있다. 문학이 상품화된 현실을 인정하고 그것을 이용해 돈과 명예를 얻으려는 실리적이고 야심만만한 저널리스트 재스퍼 밀베인과 생계를 위해 글을 써야 하지만 대중의 요구에 맞출 수 없는 이상주의자 소설가 에드윈 리어던을 중심으로 19세기 후반 문인들의 치열한 삶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초판의 글씨 크기와 행간을 읽기 수월하게 개선한 이번 개정판에는 조지 오웰이 존경하는 작가 조지 기싱에 대해 쓴 짧은 스케치가 부록으로 포함되어 있다.
글을 써서 먹고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소설가는 예술가로서 자신의 이상을 추구해야 하는가, 아니면 독자가 즐길 수 있는 이야기를 제공해야 하는가?
문학은 상품인가? 그렇다면 그 상품의 가치는 어떻게, 누가 결정하는가?
1891년에 출판된 『뉴 그럽 스트리트』가 표현하는 세계는 21세기 독자들에게 너무나도 익숙할 것이다. 돈과 인맥이 있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 시장의 수요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예술성을 타협해야 하는 예술가들. 문단 내 다툼과 시기.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잃고 상품으로 둔갑한 문학.
이 소설에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작가의 모습은 없다. 분위기 있는 카페에 앉아서 압생트를 들이켜며 영감의 인도 아래 술술 써 내려가는 예술가 대신, 요통과 감기에 시달리고 집세를 걱정하며 하루에 정해 놓은 분량을 어떻게든 메꾸려고 아등바등하는 노동자가 있을 뿐이다.
19세기 서구문화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었던 런던에서 일어난 건 산업 혁명뿐이 아니었다. 1870년 교육법 제정으로 공공 교육이 활성화되며 대중문화가 확산되었고, 문학계와 출판업계에서는 새로운 독자층을 겨냥한 글을 대량생산하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책과 간행물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저널리스트들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자극적인 글이라면 무엇이든 썼으며, 그럽 스트리트의 생계형 작가들은 시간과 금전적 압박 아래서 자신이 쓰고 싶은 글보다는 시장에 ‘팔릴 만한’ 글에 집중해야 했다.
『뉴 그럽 스트리트』는 사회역사학적인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기록이다. 가난 때문에 자기 책의 저작권을 헐값에 팔아야 했고, 그래서 중견 소설가가 된 이후에도 끊임없이 경제적 압박에 시달려야 했던 조지 기싱은 당시 소설가들에게 불리했던 출판업계의 관습과 문단 안에서의 세력다툼을 낱낱이 드러내는 한편, 다락방의 추위를 피해 대영박물관 도서실에 틀어박혀 분투하던 가난한 문필업자들의 삶을 다큐멘터리 같은 생생함으로 종이에 옮겼다.
영미 문학사를 통틀어, 어쩌면 세계문학사를 통틀어 『뉴 그럽 스트리트』만큼 문필업의 실태를 사실적으로 쓴 소설은 찾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주제는 문필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문학작품뿐 아니라 모든 형태의 예술이 상품화된 세상에서 예술과 예술가라는 직업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들며, 기싱이 평생에 걸쳐 탐구한 ‘중산층의 가난’ (그는 비교적 가난한 이들이 절대적으로 가난한 이들보다 더 불행하다고 믿었다) 은 상대적 박탈감이 사회 전반에 만연한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현실적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