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인류가 살아남은 특별한 방법
인류는 수천 년간 전염병에 시달려 왔다. 역사상 최초의 세계적 전염병 대유행, 즉 팬데믹을 일으킨 것이 페스트다. 그 뒤로 황열병과 결핵의 대유행도 일어났지만, 페스트와 견줄 만한 것은 1918년의 인플루엔자, 일명 스페인독감이다. 스페인독감은 1918년과 1919년 두 해 동안 5000만 명 가까운 사망자를 냈다. 당시 약 18억 명이던 세계 인구의 3퍼센트 정도 되는 수치다. 스페인독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처음 발견되고 10년이나 지난 1928년의 일이지만, 인류가 스페인독감을 통해 얻은 것이 있다. 세계 곳곳의 병원에서 해마다 발생하는 독감의 형질과 증상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백신을 개방하는 체계가 마련되었다. 즉 세계적 차원에서 독감 예방접종을 관리하게 되었다.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의 발견도 스페인독감의 영향을 받았다.
인간은 영장류 가운데 유일하게, 사냥감과 먹잇감을 찾아 오랫동안 뛰어다닐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되면서 살아남아 번성했다. 18세기에 폭발적 인구 증가로 식량이 부족해져 위기를 맞았지만 질소비료 개발로 극복했다. 결국 1만 년 전에는 지구의 육상 척추동물 중 1퍼센트에 불과하던 호모사피엔스가 2011년에는 32퍼센트를 차지한다. 그동안 야생동물의 비중은 99퍼센트에서 1퍼센트로 격감했다. 그리고 2020년에 닥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인류가 야생동식물을 보호하기는커녕 서식지 파괴를 일삼은 탓에 인수공통감염병이라는 생태계의 역습을 당했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인류도 다른 생물처럼 지구 생명 공동체의 일원임을 자각하고 삶의 근본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다.
최초의 육상식물 이끼부터 전자인간 AI에 이르는 지구 생명 공동체
인류가 지구의 주인처럼 굴지만 과학이 우리에게 말하는 사실은 전혀 다르다. 지구 생태계의 문을 열고 기초를 닦은 것은 가장 낮은 곳에 자리한다. 아이슬란드에서 1963년부터 1967년까지 이어진 화산 폭발 뒤 지구상에서 가장 어린 섬, 쉬르트세이가 생겼다. 육지와 떨어져 사람을 비롯한 외부의 생물이 들어가기 어려운 이 섬에 가장 먼저 정착한 생물이 이끼와 곰팡이다. 이끼는 4억 5000만 년 전에도 육지에 가장 먼저 정착한 생물로, 아무도 살 수 없는 곳에 누구나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든다. 이끼가 사는 곳엔 나무가 나타나고, 작은 곤충이 나타나고, 곤충의 포식자인 새들이 나타난다. 이렇게 생태계가 형성되면, 이끼는 자기 자리를 넘겨주고 고등식물이 살 수 없는 척박한 곳으로 떠난다.
한편 제2의 지구를 꿈꾸는 인류 대신 화성 탐사에 나선 것은 로봇. 2004년 1월 3일과 25일 쌍둥이 탐사 로봇 스피릿과 오퍼튜니티가 각각 화성에 착륙한다. 스피릿의 이동 속도는 1초에 5센티미터, 예상 수명 3개월. 하지만 실제 작동 기간은 6년이었으며 그동안 총 8킬로미터를 탐사했다. 그리고 남겨진 오퍼튜니티는 먼지로 뒤덮인 태양전지판을 운 좋게 회오리바람으로 청소하고 태양이 떠오르면 망가진 팔로 탐사를 계속해 탐사 3968일째인 2015년 3월 24일에 주행거리 42.195킬로미터를 돌파한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나사의 제트추진연구소 직원들은 마라톤 풀코스를 뛰었다.
나 혼자 살기보다는 더불어 살기 위한 조건
우리에게 익숙한 지상 생태계에는 식물이 광합성을 통해 태양에너지로 만든 양분을 초식동물이 먹고, 초식동물을 육식동물이 먹고, 동물의 사체는 분해되어 양분으로 돌아가는 순환 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심해의 열수 분출공 근처에도 황화철을 화학합성해서 탄수화물을 만들어 내는 황박테리아를 중심으로 생태계가 만들어지는데, 지상 생태계와 달리 오랫동안 순환하지 못하고 수명이 10년에서 100년 정도밖에 안 된다. 열수 분출공이 언젠가 막혀 황화철의 공급이 끊기고 황박테리아가 굶어 죽어, 황박테리아를 유일한 양분으로 섭취하던 관벌레도 생존할 수 없게 되고, 관벌레를 먹고 살던 게와 새우 등 다른 생명체로 따라 죽으면서 생태계가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열수 분출공 생태계가 오랫동안 지속되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번성한 이유와 같다. 오로지 황박테리아의 화학합성에만 의존하는, 피할 수 없는 취약성 때문이라는 말이다.
자연 환경의 보존 상태를 개체수보다 종의 수로 평가하는 것은 생물 다양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멸종 위기에 처한 생물을 복원하고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는 것도 생물 다양성을 확보하는 수단이다. 희소한 생물이 멸종한다면 생물 다양성에 복구할 수 없는 해가 된다. 그런데 유엔 ‘생물 다양성 과학 기구IPBES’는 2019년 5월 보고서에서 생물 약 100만 종이 인간 때문에 멸종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