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리, 얼마나 갈 거 같아요?”
하나의 자리를 두고 시작된 ‘을’들의 의자뺏기 게임
추악한 진실에 맞서는 여성 노동자들의 공감과 연대
경력단절 여성 채용이라는 마케팅 전략
그 반짝이는 포장 아래 숨겨진 추악한 진실
그리고 피해자로 남기를 거부하는 ‘을’들의 조용한 반격
한겨레문학상·세계문학상·제주4·3평화문학상 최종 노미네이트
신예 작가 이정연이 직장 내 괴롭힘,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 환경, 성폭력, 여성의 노동문제를 핍진하게 녹여낸 첫 장편소설 『천장이 높은 식당』을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주인공 승연은 ‘경단녀’로, 화장품 회사의 경단녀 취업프로그램 ‘컴백맘’에 선발되어 5년 만에 영양사로 복귀한다. 회사에 차츰 적응해가던 어느 날, 영양사실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그 자리, 얼마나 갈 거 같아요? 남의 자리가 그렇게 좋으냐고요.”
뺏길 게 없다고 잃을 것도 없는 건 아니에요. 뺏길 게 없는 사람한테 뺏는 건요, 고층 난간으로 사람을 몰아세운 다음 한 발로 버티고 있으라는 것과 다름없어요. 그러다 미끄러져 추락하면 아무 짓도 안 했는데 혼자 실수해서 떨어진 거라고 안타까운 척 연기하면 되니까. 귀찮은 사람 간단히 처리하는 거죠. 그 회사는 그렇게 언니를 내쫓고도 기다렸다는 듯 다른 영양사를 뽑아서 너무도 태연하게 ‘여성복지 우수 기업’이라고, 핑크 리본을 펄럭이며 유방암 예방 캠페인을 하고 있어요. 진심으로 가증스러워요._본문 중에서
주인공 승연과 전임자 신유라는 하나의 영양사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상황에 처한다. 하지만 이정연 작가는 이들 여성노동자를 익숙한 피해자의 자리에 앉히지 않는다. 두 사람이 각각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와 성추행 피해자라는 과거에 매몰되게 놔두지 않고, 그 트라우마를 적극적으로 극복하게 한다. 나아가 ‘을’로서의 위치를 전략적으로 활용하여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변호하도록 한다. 여성 노동자들을 불행하고 미숙한 피해자로 묘사하는 것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부조리한 상황을 개척하고 스스로를 보호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로 묘사한다. 그야말로 분투하고 연대하며 피해자로 남기를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현재의 여성노동자를 기록한 것이다.
“여기까지 오게 해서 미안합니다. 계약이 많아져서 움직일 틈이 나야죠. 최저임금이 올라서 이 바닥도 술렁이더니 웬걸요. 휴게시간과 점심시간을 근무시간에서 빼고, 교통비며 식비 같은 일비는 최저임금에 합치니까 결론적으로 달라진 게 없어요. 되레 최저임금이 기준이 돼서 그보다 더 주던 데도 거기에 맞춰 임금을 깎았으니까요. 한국말을 조금 하는 외노자를 찾는 회사도 부쩍 늘었고. 최근에는 무인 기기나 로봇으로 인력을 대체하는 곳도 늘어났으니 앞으로 또 어떻게 될지. 그런 면에서 선린은 양반이에요.” _본문 중에서
‘여성 우대’, ‘경력단절 여성 채용’은 기업에게 ‘마케팅 전략’일 뿐임을 이정연 작가는 가장 먼저 꼬집는다. 기업은 비정규직 여성에게 고용유지를 빌미로 수많은 비위를 조장하고, 문제가 되면 꼬리 자르듯 그들을 회사 밖으로 내몬다. 여성 등장인물들은 여성에게 요구되던 ‘순종’과 ‘포용’을 수행하지 않는다. 작가는 선하고, 자기 안으로 침잠하는 피해자상을 그리는 대신 자신의 이익을 위해 겉으로는 순응하면서, 뒤로는 연대를 통해 반역하는 새로운 여성노동자상을 묘사한다.
새벽조인 조리원들은 아침 배식에 맞춰 늦게 출근했다. 그들은 눈에 띄게 승연을 피해 조리장 옆에서 일을 했다. 이틀에 한 번씩 품목에 맞춰 정리해놓은 식자재 창고는 물건이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도대체 누가 늦은 시간에 숨어드는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제자리로 돌리려는 건지 모른다. 승연에게 하는 것처럼 필요에 따라 사람을 정리하는 게 그들의 오랜 방식일지도. _본문 중에서
이 소설이 가장 핍진하게 그려내는 것은 교묘하게 노동자들을 의자뺏기 게임의 장으로 몰아넣는 기업의 시스템이다. 기업은 이윤을 위해 노동자들이 서로를 배제하고 폭력을 휘두르게끔 시스템을 구성한다. 노동자들은 동료의 고통과 죽음을 외면하지 않으면 이 의자뺏기 게임의 승자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스스로 용기를 내지 않기 위해 동료의 일을 남의 일로 취급하고, 공감의 가능성조차 차단한다. 신샛별 문학평론가의 추천의 말처럼, 작가는 단기 파견직 신분의 여성 노동자가 사내의 비리와 불의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를 지켜보며 우리 모두를 가혹한 윤리적 시험대 위에 세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작가는 연대와 진보를 택한다. “용기란 누군가의 죽음을 외면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을, 결국 우리르 지탱하고 껴안는 것은 서로임을, 작가는 승연과 신유라를 통해 말하고 있다.
작가의 말
『천장이 높은 식당』을 쓰기 시작한 건 2015년 겨울부터다. 몇 달 뒤 완성하지 않은 소설을 사람들에게 보여줬을 때 나온 반응은 비슷했다. 요즘에도 이런 회사가 있다고? 캐릭터들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너무 수동적인 거 아냐?(물론 초고는 지금과 많이 달랐다) 그 뒤로 두어 번 더 수정했지만 의견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덜 쓴 원고를 두고 얼마간 고민에 빠졌던 것 같다. 내가 보고 느끼는 세상이 그렇게 고루한가, 표현 능력이 부족해 이것밖에 담아내지 못했나. 당시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그것을 그려내는 내 능력까지 확신하지 못했던 것 같다. 덕분에 나는 1년 가까이 매달린 소설을 덮어야 했다. 글을 완성하지 못했다는 후회와 쓰려고 했던 것을 눈감아버렸다는 자책을 내내 하면서.
그리고 2년 뒤 2018년, 미투와 갑질은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가 되었다. 현실은 내가 애초에 썼던 소설보다 훨씬 잔인했고, 참혹했다. 문화계, 예술계, 일반 기업, 학계 곳곳에서 기다렸다는 듯 터지는 뉴스를 보며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승연과 신유라는 우리 가까이에, 나와 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던 것이었다. (…) 나는 또 바란다. 몇 년 전 사람들이 말했듯 〈천장이 높은 식당〉 속의 인물과 이야기가 낡고 오래된 것이 되기를. 제인 오스틴의 소설 속 인물처럼 ‘그땐 그랬었지.’라고 지나간 시대를 회상하면서 이 소설이 읽힐 때가 오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