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국인은 유라시아 대륙을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반도라는 개념도 희미하게 존재하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는 반도 아닌 섬에서 살아간다. 휴전선 철책으로 갈라진 남과 북의 자유로운 왕래가 불가능한 까닭이다. 남북한이 서로 분단되어 다른 정치체제를 수립한 지 어언 70년 넘는 세월이 지나갔다. 일제강점기는 물론 해방공간에서도 경성이나 평양에서 열차를 타면 육로로 북경이나 이르쿠츠크, 모스크바, 파리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그때 한반도는 섬이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의 일부였다. 용정과 상해, 우수리스크와 하얼빈, 블라디보스토크를 오갔던 윤동주, 김구, 안중근의 길도 육로였다.
『유라시아 횡단 인문학』은 우리가 오랜 세월 망각한 과거를 되살림으로써 오늘의 우리를 돌아보고자 한다. 과거를 알고 현재를 응시하며 미래를 기획하는 능력이야말로 인간을 진화의 사다리 정점에 올려놓은 원동력이 아닐까?! 하지만 오랜 세월 우리는 유라시아를 세분하고 조각내서 전문적이고 개별적으로 이해하고 수용했다. 상호 분리되고 독자적으로 작동하는 분과학문에 기초하여 유라시아를 바라보았다. 그 결과 우리는 역사의 눈으로, 혹은 철학과 문학 또는 예술의 프리즘으로 투영된 유라시아를 단편적으로 바라보는 것에 익숙하다. 유라시아를 전공하는 각 분야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미시적인 관점으로 유라시아를 보아왔던 것이 일반적이다. 필자는 분과학문으로 개별화된 미시의 유라시아가 아니라, 거시와 통합의 관점에서 유라시아를 보고자 한다.
『유라시아 횡단 인문학』은 통합적으로 사유하는 인문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유라시아를 소개한다. 이 서책은 러시아 문학을 연구하고 가르쳐온 연구자의 협소한 시각과 소박한 방법론에 기초하고 있다는 한계를 인정한다. 반면에 연구자는 특정한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가 포착하는 고도의 전문성과 난해함의 장벽을 자유롭게 넘어서고자 노력한다. 그럼으로써 일반 독자에게 어렵지 않게, 하지만 여러 각도에서 유라시아 전반을 조감하고 사유하며 인식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서책의 집필 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