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상에서는 새로운 학문이 필요하다.”
“A new political science is needed for a world itself quite new.”
Alexis de Tocqueville, Democracy in America(1853)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행정학을 필요로 한다. 지금까지의 행정학이 우리의 공적 삶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 시장, 공동체에 얼마나 의존해야 하는가를 주요한 문제로 다루어 왔다면, 새로운 시대의 행정학은 새로운 정보기술과 그 활용에 따라 구성되는 가상 세계를 어떻게 다루고 활용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실제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정보기술의 ‘조합’을 선택해야 하며, 정보기술의 기반 위에서 구성되는 가상 세계의 편익을 활용하고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실제 세계의 국가, 시장, 공동체가 어떻게 재구성되어야 할 것인지를 분석하는 데 행정학이 기여해야만 할 것이다. 아울러, 새로운 정보기술이 ‘잘못된 손’ 또는 ‘나쁜 손’에 의해 잘못 활용되지 않도록 실제 세계의 거버넌스를 더욱 건강하게 만들어야 할 책임과 윤리를 새로운 시대의 행정학은 가르쳐야 한다. 이 책은 이와 같은 도전에 응전하고자 한다.
이 책은 정보기술의 도입과 활용을 통해 나타나는 정부의 디지털 혁신에 대한 이론과 역사, 다양한 응용과 분석, 그리고 향후 전망을 다룬 연구서이다. 이미 출간된 저자의 관련 연구를 수정·보완하고, 각 장의 주제에 따라 필요한 부분은 새로 집필하였다. 이 책을 구상하고 집필하면서 염두에 두었던 부분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정부 및 공공부문에서의 정보기술 활용의 역사적 변화와 시기적 특징을 포괄하고자 노력하였다. 정보기술이 등장한 이래, 정부가 도입했던 정보기술의 특성과 정부의 디지털 혁신의 내용은 시기별로 달랐다. 예를 들면, 1990년대 초반 인터넷 사용이 확대되면서 전자정부라는 개념이 새롭게 등장하였다. 2000년대 소셜미디어와 모바일 네트워크, 스마트 디바이스의 발전은 스마트 정부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었다. 이제 인공지능, 블록체인,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또 다른 정보기술이 정부의 미래상을 새롭게 정의하려 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각 시기별 정보기술의 특성에 따른 정부의 변화를 다루면서도 그것들이 연속적임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이와 같은 큰 흐름을 온전히 담기 위해 책 제목도 ‘전자정부론’이나 ‘스마트정부론’보다는 『정부의 디지털 혁신』으로 정하였다.
둘째, 정부의 디지털 혁신에 대한 균형적 시각을 반영하고자 노력하였다. 정부의 디지털 혁신과 관련된 다양한 사회과학적 요인들, 즉 행위자, 조직 및 관리, 제도, 그리고 환경 등 다양한 이론적 시각과 주요 요인들을 고루 다루고자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적 요인의 중요성 역시 간과하지 않으려 했다. ‘가능자(enabler)’로서의 정보기술이 열어주는 새로운 혁신의 가능성과 기회의 확장에 주목하면서도, 그와 같은 가능성과 기회가 의도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요인들이 정보기술의 도입 및 활용과 함께 ‘공진화(co-evolution)’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셋째, 이론과 실증분석을 결합하고자 노력하였다. 이 분야를 가르치고 연구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 중 하나는 정부의 디지털 혁신이라는 주제가 행정학의 각 분야별 이론이나 다른 사회과학 분야의 이론과는 큰 관련 없이 다루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학생들에게는 정부 및 공공기관에서의 정보기술의 도입과 활용에 대한 실증적 관찰과 분석 기회가 적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수집되고 공개된 데이터도 부족해서 실증연구에 어려움을 겪는 것 같았다. 그래서 충분하지는 않지만, 이 책의 각 장에서는 장별 주제에 대한 이론적 배경과 다양한 방법론을 적용한 실증분석 결과를 함께 제시하였다.
이와 같은 기획의도에 따라, 이 책은 다음과 같이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될 수 있다. 첫째, 제1장부터 제4장까지는 ‘정부의 디지털 혁신에 대한 이론과 역사’를 다루고 있다. 정부의 디지털 혁신의 개념과 유형(제1장), 미국과 한국에서의 디지털 혁신의 역사(제2장)에 대한 논의를 통해 정부의 디지털 혁신의 변화와 연속성을 다루고자 하였다. 제3장과 제4장에서는 다양한 이론적 시각에서 정의되는 정보시스템 성공의 정의와 영향 요인, 정보시스템 성공과 영향 요인 간의 인과적 관계에 대한 개념적 모형을 소개하였다.
둘째, 제5장부터 제10장까지는 정부의 디지털 혁신과 관련된 구체적인 사례를 다루고 있다. 전자정부의 고도화를 위한 ‘정부기능연계모델’ 사업(제5장)과 공무원의 활동(제6장) 사례를 통해 전자정부 성공 요인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높이고자 하였다. 소셜미디어(제7장), 공공 스마트폰 앱(제8장), 스마트 워크(제9장), 정보공개제도와 공공데이터 개방(제10장) 등 정부의 디지털 혁신의 주요 측면들을 다루었다. 각 장은 (1) 각 주제에 대한 개관, (2) 한국에서의 추진 현황, (3) 연구 및 분석을 위한 이론적 배경, (4) 실증 분석 결과로 구성하여 각 주제에 대한 이론, 현황, 실증분석을 연결하고자 하였다.
마지막으로 제11장은 지능정보시대의 정부의 디지털 혁신에 대한 전망을 담고 있다. 이미 본격적으로 구축·활용되고 있는 패러다임 전환(paradigm-shift)적인 정보기술이 가져올 사회적 영향력과 이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주요 정책과제를 제시하였다.
최선의 노력을 다했으나, 주제의 깊이와 범위를 고려할 때, 많이 부족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더 많은 세부 주제를 다루었어야 했고, 실증분석의 타당성도 더 높였어야 했다. 지능정보시대의 정부의 디지털 혁신에 대한 전망은 더 멀리 그리고 더 깊게 내다보았어야 했다. 앞으로 많은 노력을 통해 보완해 나갈 것을 약속드린다.
돌이켜 보면, 필자가 정부의 디지털 혁신과 관련하여 실무와 연구 및 강의를 해온 지도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공군장교 시절, 비행단 내에 근거리 통신망(LAN: Local Area Network)이 구축되자 그토록 경직적이던 관료제 조직과 구성원들의 행태가 ‘저절로’ 변하는 것을 보고 ‘정보기술의 힘’을 실감할 수 있었다. 석사학위 취득 후 ‘IT 기업으로 유학 다녀오겠다’며 정보시스템 구축과 정보화 컨설팅을 수행하는 IT 기업에 취직하였다. 컨설턴트로서 당시 본격적으로 추진 중이던 전자정부 과제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몸으로’ 정부의 디지털 혁신을 공부할 수 있었다.
박사과정 중에는 지도교수님이신 정용덕 교수님(현 금강대학교 총장)의 지도로 거버넌스 이론과 신제도주의를 공부할 수 있었다. 학위논문 주제에 대해 고민하던 중, 우연히도 미국 University of Massachusetts Amherst의 Jane Fountain 교수님의 저서 Building the virtual state: Information technology and institutional change를 읽게 되었다. 공공부문에서의 정보기술, 조직 및 제도에 대한 통합적 이해를 제공하는 이 책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1년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연수 기회를 얻어 Fountain 교수님의 지도하에 박사논문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두 분의 은혜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
교수가 된 후에는 좋은 제자들 덕분에 행복하게 공부할 수 있었다. 문자 그대로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제자들이, 아무것도 없는 내게로 와서 이 책의 주제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함께 연구해 주었다. 그 제자들이 이 책의 공저자들이다. 지금은 대학교수로서, 국책연구기관과 공공기관의 연구원으로서, 그리고 박사후보자로서 정부의 디지털 혁신을 연구하고 실무를 담당하고 있다. 지면을 통해 청출어람(靑出於藍)의 제자들에게 고마움과 자랑스러움을 전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공부한다는 이유로 이기적인 아들의 모든 것을 이해해 주시는 양가의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아내에게는 늘 부족한 남편이고 자식들에게는 머릿속이 자기 연구로만 가득 찬 재미없는 아빠다. 이 고마움을 어떻게 다 갚을 수 있을까… 언젠가 좋은 학자가 된다면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담아 이 책을 출간한다.
2020년 10월
관악의 연구실에서
저자들을 대표하여 엄석진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