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이후의 사회
2017년 발생한 포항지진은 한국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지진 안전지대라고 여겼던 한국에서 경주지진에 이어 일어난 진도 5.4의 지진. 물리적 손실의 규모도 엄청났지만, 재난이 일으키는 피해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재난은 사회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하며, 불안을 불러일으키고, 공동체를 분열시킨다.
포항지진과 관련된 연구는 과학의 관점에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지각구조나 액체주입과의 연관성을 분석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포스텍 융합문명연구원과 평화연구소에서는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관점을 더한 새로운 시선으로 포항지진을 살폈다. 이 거대한 재난이 불러온 사회의 변화에 주목한 것이다. 지진 발생 초기에는 신속하게 대응하였지만 관료주의의 한계를 보여준 정부의 대응, 새로운 주민조직과 사회운동조직 단체들의 결성과 활동 과정, 과학자들 사이의 논쟁에 시민사회가 개입하고 영향을 미친 과정 등을 폭넓게 살폈다.
현대사회의 재난에 대응하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
재난의 위험은 우리 주위에 항시 존재한다. 포항지진 이후에도 미세먼지, 이상기온,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감염병을 비롯한 수많은 재난이 끊임없이 우리 사회를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현대의 재난은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이 결합된 복합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재난의 빈도와 강도 역시 증가하고 있다. 사회가 점차 복잡해지고 과학기술이 발전한 결과이다.
재난의 사회적 측면을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까지의 재난관리는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부와 관련 전문가들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기존의 방식으로는 변화하는 재난에 대응할 수 없다. 위계적 관료제에 기반한 재난관리는 재난을 통제 가능한 규모로 축소시키려 하는데 현대의 재난은 원인을 하나로 특정하기 어렵고 여러 체계들이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야 할 때이다.
재난 거버넌스와 재난 시티즌십
재난을 겪은 사회가 재난 이전의 상태를 회복하고, 더 나아가 재난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결속력을 강화하고 다양한 사회주체들이 재난복구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저자들은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공동체 중심의 ‘재난 거버넌스’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방식을 벗어나서 공공 및 민간부문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사회주체들이 참여하여 재난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필수적이다. 즉, ‘재난 시티즌십’이 전제되어야 한다. 재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공동체의 구성원인 시민들의 역할은 점차 커질 것이다.
다양한 주민조직, 사회운동단체, 지역기반의 온라인 커뮤니티까지. 포항지진의 복구과정은 정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주도되기보다는 여러 사회주체들이 참여한 가운데 역동적으로 전개되었다. 포항지진의 경험은 재난관리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오늘날에 중요한 사례가 될 수 있다.
재난은 중대한 위기를 가져오지만 동시에 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보완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저자들은 포항지진에 대한 탐구가 지진 이후 지역사회의 복원과정에서 시민들의 참여가 활성화된 새로운 공동체의 구성에 일조할 수 있기를 희망하였다. 포항지진의 복구과정 이후에 마주해야 할 다양한 재난들 앞에서도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책의 구성
이 책은 크게 2부로 나뉜다. 1부에서는 재난 거버넌스와 재난 시티즌십의 이론적 기초를 설명하고 일본의 지진 사례를 검토하며 포항지진에 대한 분석의 틀을 마련한다. 2부에서는 포항지진에 집중하여 지진 복구과정에서 재난 거버넌스, 재난 시티즌십이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를 검토한다. 거버넌스를 구성하는 다양한 주체들, 즉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소셜미디어 등 대안 언론, 사회운동조직과 주민조직, 일반시민, 학계와 전문가들의 지진 복구참여와 실천을 조명하고 그 과정에서 중요 쟁점으로 제기되는 재난법의 의의와 한계를 검토한다.
지은이 소개
김기흥
영국 에든버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런던대와 임페리얼 칼리지에서 박사 후 연구원을 거쳐 현재 포스텍 인문사회학부에 재직 중이다. 과학지식의 형성과 사회와의 관계 및 다양한 인간-동물 감염병의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영향과 같은 분야에 대해 연구해 온 과학사회학자이다. 주요 저서로 Social Construction of Disease(2007), 《광우병 논쟁》(2010) 등이 있다.
김진희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오하이오주 소재 켄트주립대, 클리블랜드주립대를 거쳐 현재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디어 메시지의 사회심리적 영향, 엔터테인먼트 미디어와 감정, 문화비교 커뮤니케이션 등의 영역에 국내외 논문을 출판했고, Media Effects: Advances in Theory and Research(4th ed)(2019)와 Handbook of Media Use and Well-Being(2016) 편저의 챕터를 저술했다.
김철식
서울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대우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회학, 사회정책, 산업 및 조직, 고용과 노동문제에 대한 연구 및 교육을 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대기업 성장과 노동의 불안정화》(2011), 《디지털시대의 구로지역》(공저, 2015), 《동아시아 협력과 공동체》(공저, 2013), 《비정규직 없는 세상》(공저, 2009), 《신자유주의와 노동의 위기》(공저, 2000) 등이 있다.
정채연
고려대에서 법학 박사학위, 미국 뉴욕대(NYU) 로스쿨에서 LL.M.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뉴욕주 변호사이다.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과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 연구조교수를 거쳐 현재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대우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법철학, 법사회학, 법인류학 등 기초법 연구를 지속해 왔으며, 최근에는 인공지능 및 지능로봇, 포스트휴먼, 블록체인기술 관련 법적 쟁점들에 주목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법의 딜레마》(공저, 2020), 《인공지능과 법》(공저, 2019), 《법학에서 위험한 생각들》(공저, 2018)이 있다.
김용찬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아이오와대, 앨라배마대를 거쳐 현재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디어 사회이론 연구자로 도시 커뮤니케이션, 디지털 미디어, 위험사회/헬스 커뮤니케이션 분야를 연구한다. 국제 조직인 Urban Communication Foundation 상임이사와 연세대 도시커뮤니케이션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 The Communication Ecology of 21st Century Urban Communities(공저, 2018), 《논문, 쓰다》(2020), 《미디어와 공동체》(공저, 2018), 《뉴미디어와 이주민》(2020)등이 있다.
김은혜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일본학술진흥회(JSPS) 외국인특별연구원을 거쳐 부산대 사회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도시, 환경(재해), 지역연구의 영역에서 동아시아 개발주의의 구조와 재현에 대한 논의를 지속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위험도시를 살다: 동아시아 발전주의 도시화와 핵 위험경관》(공저, 2017), 《특구: 국가의 영토성과 동아시아의 예외공간》(공저, 2017), 《안전사회 일본의 동요와 사회적 연대의 모색》(공저, 2017) 등이 있다.
김의영
미국 미시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장과 한국정치학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주요 연구분야는 정치경제, 시민사회, 거버넌스 등이고, 최근 연구주제는 사회적 경제, 동네 안의 시민정치, 민주시민교육 등이다. 주요 저서로 《거버넌스의 정치학》(2014), 《한중일 사회적경제 Mapping》(공저, 2015), 《동네 안의 시민정치》(공저, 2015), 《시민정치연감 2019》(공저, 2019) 등이 있다.
노진철
독일 빌레펠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와 학교법인 원석학원(경주대ㆍ서라벌대)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자기준거적 체계이론에 기반하여 정치와 경제를 포함, 현대사회의 다양한 기능체계들에 대한 정교한 분석으로 널리 알려진 학자이다. 현재 한국사회체계이론학회 회장이며, 재난안전사업평가자문위원회 위원, 대학교원임용양성평등위원회 위원장, 경북지방노동위원회 공익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불확실성 시대의 신뢰와 불신》(2014), 《불확실성 시대의 위험사회학》(2010), 《환경과 사회: 환경문제에 대한 현대사회의 적응》(2001) 등 다수가 있다.
서미혜
미국 콜럼버스 소재 오하이오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알바니 소재 뉴욕주립대를 거쳐 현재 성균관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통미디어와 뉴미디어 이용의 정치효과, 건강효과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소셜미디어가 개인의 삶과 커뮤니티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임기홍
서울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서울대 사회혁신 교육연구센터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분야는 한국정치, 시민사회, 거버넌스이고, 최근 연구주제는 재난 거버넌스, 위험관리, 재난 피해자의 집합행동 등이다. 주요 저서로 《한중일 사회적경제 Mapping》(공저, 2015), 《동네 안의 시민정치》(공저, 2015), 《동네 안의 시민경제》(공저, 2016)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