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독자들은 〈어쩌면 찬란한 우울의 팡세〉를 통해 비로소
진정한 즐거움으로 사색의 책갈피를 넘길 수 있는
‘팡세(Pensees.생각)’를 갖게 되었다!!
김승희 시인의 베네치아 산문집
『어쩌면 찬란한 우울의 팡세』는
“떠나고 싶게 하는 위험한 여자의 책!”이다.
베네치아는 현실화된 유토피아, 즉 헤테로토피아다.
푸코가 말한 헤테로토피아는 유토피아에 맞선 개념으로 모든 장소의 바깥에 있는
장소를 의미한다. 실제로 위치를 한정할 수 있지만 모든 장소의 바깥에 있는 장소!
시인 김승희에게 베네치아는 헤테로토피아다.
시인 김승희는 『33세의 팡세』 이후, 33년 만에 다시 『어쩌면 찬란한 우울의 팡세』를 들고 나타나, 독자들에게 ‘팡세(Pensees)’ 라는 ‘생각’의 물음을 던지고 있다.
찬란한 우울을 꿈꾸느라 기다림에 지친 이들에게 보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으로의 초대!!
시인 릴케가 베네치아 여행을 통해 “세계의 아름다운 균형추”라고 극찬한 물과 빛과 색의 도시 베네치아에서 불꽃같은 언어와 사색으로 쓴 시인 김승희의 문학적 오디세이,
『어쩌면 찬란한 우울의 팡세』!!
이제, 낯익은 것들의 감옥으로부터 탈출을 위해 베네치아 미학에 매료될 시간이다.
‘떠나고 싶게 하는 위험한 여자의 책’
투명한 젊음, 빛 아래 부서지는 분수의 물입자 같은 찰나적 감각이 포착한 생의 신 비! 이것이 김승희 시인의 『33세의 팡세』를 떠올리면 되살아오는 이미지들이다. 딱 그 두 배가 되는 66세에 시인은 새로워진 언어와 깊어진 사유, 자유로운 유영의 옷을 입고, 세계에서 가장 기이한 도시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 우리에게 사색의 갈피를 펼쳐 보인다. 베네치아가 어떤 곳인가. 토마스 만이 아니라도 베네치아는 죽음을 생각나게 한다. 검은 물때를 허리에 두르고 곧 가라앉아 사라져버릴 것처럼 두 다리를 물속에 잠그고 조용히 시간을 견뎌내고 있는 미로의 도시. 이 도시가 상징하는 소멸과 불멸, 생의 스러짐을 인식하기에 더욱 찬란한 생의 애착을 매순간 확인하는, 이 이율배반적인 베네치아의 미학에 김승희 시인만큼 더 적합한 사람이 있을까.
골목을 아무리 돌고 돌아도 그 만큼 뒤로 숨는 베네치아의 미로에 ‘글 쓰는 여자’로 길 잃은 듯 홀로 서서, 시인은 단순하게 깊어진 해방된 영혼만이 볼 수 있는 생의 심연을 돋우어 낸다. 아, 나도 그곳에 가고 싶다. 밤의 희미한 램프에 드러나는 수로를 따 라 불멸할 듯 잠든 이 물의 도시의 침묵에 합류하고 싶다.
『어쩌면 찬란한 우울의 팡세』는 이렇게 위험한 여성의 책이다. 불멸을 모르는 인간의 한계에 바쳐진 생의 경이와 찬가가, 역사의 무게에 곧 무너질 것 같은, 그에 저항하고자 덧없이 현란하고 화려한 베네치아에 조용히 울려 퍼진다. 그렇게 베네치아의 골목골목에서 시인의 생생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섬세한 팡파르 같은 햇빛이 오늘도 베네치아 물결에 가득하다. 가끔씩 성당의 종소리가 울린다. 이 찬란한 햇빛과 종소리만으로도 인생은 풍족하다.”
- 최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