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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화의 왕 사도세자

비화의 왕 사도세자

  • 김경민
  • |
  • 테라스북
  • |
  • 2012-05-21 출간
  • |
  • 512페이지
  • |
  • 140 X 200 X 35 mm / 600g
  • |
  • ISBN 978899430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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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선이 기력이 빠져버린 육신을 일으키며 뒤주로 발을 디뎠다. 두려웠다. 덜컥 무서움도 뒤따랐다. 선이 뒤주 안으로 몸을 굽히자 영조가 급한 걸음을 옮겨 망치를 뺏어 들었다. 그러고는 뚜껑을 닫고 직접 못을 박기 시작하였다.
쿵! 쿵! 세상과 등을 지는 소리가 선의 심장으로 박혀와 뭇 칼질을 하고 있었다. 있는 힘을 다해 못질을 하던 영조가 뒤주를 붙잡으며 쓰러질 듯 위태롭게 숨을 골랐다. 그러고는 망치를 내던지고선 걸음을 돌렸다. 토악질이 나올 듯 속이 좋지 아니하였다.
“나무를 덧대어라! 죄인의 숨소리가 들릴까 두려우니 나무를 덧대어라!”

“성군이 될까? 폭군이 될 수도 있음이다.” - 여의주를 잃어 슬픈 용, 사도세자 이선!
노론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미치광이 사도세자가 보위에 오르는 것이었다!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개떼들의 광란 속에 스스로의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인 왕세자. 노론으로 치우친 영조, 아들 정조와 아비를 위해 등을 돌린 혜경궁 홍씨. 올바른 정사를 펼치고자 했던 그의 기나긴 고독함은 실로 잔인했다.

“강이라 부르랴, 비화라 부르랴.” - 사내로 살 수밖에 없는 여인, 비화(飛花).
아녀자였으면 국모의 형국이고 사내였으면 재상의 몫이니, 갖춘 의복이 운명을 거스르다!

후사를 잇는다는 명목으로 사내로밖에 살 수 없었던 여인. 석교 위 달님이 비추던 밤, 사내와 사내로 만나 허심탄회하게 나랏일을 도마 위에 올려 나눠 가졌던 날들. 사도세자는 강 하나로 천군만마를 얻은 듯했다. 그러다 뜻밖에 알게 된 이강의 비화(秘話). 자신의 뜻대로 살아갈 수 없는 비애를 지닌 그들은 속내를 숨긴 채 어느덧 서로에 대한 사모를 싹 틔우게 되고, 두 사람의 운명적 만남이 이어질수록 사내도 되었다 아녀자가 되기도 하는 이강의 숙명이 그들의 목을 조여오는데…….

* 등장인물

이선(李煊) - 사도세자. 노론에 치우친 아비 영조, 소론을 뿌리째 제거하려는 노론을 보며 대리청정 시절 많은 의심을 품게 된다. 노론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올바른 정사를 펼치고자 노력한다. 제 사람이라고 믿음을 굳히게 되면 끝끝내 지키려는 신념도 깊다. 노론의 치졸한 계략에 눈을 가리고, 입도 막되, 백성의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성군의 자질을 타고 태어났다. 우연히 미행에서 한 사내를 만나게 된다. 바로 강이요, 비화이다. 자신과 같은 비애를 느껴 벗을 삼았으나 강의 빼어난 총명함에 나랏일을 나눠 가지게 된다. 그 후 강의 숨겨진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 안쓰러움도 잠시, 어느덧 커져버린 연정에 한 나라의 위태로운 왕세자로서 그녀를 지키기 위해 애써 매정하게 연을 끊어버리기도 하다. 또한 그간 악행을 일삼았던 노론으로 인해 자신이 보위에 오른 후 폭군이 되어 복수를 할까 고뇌한다. 그리고 아비와 백성, 노론 또한 자신의 백성으로 감싸 안으려 노력하였고, 그리하여 끝끝내 자신의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비화(飛花) - 자식을 낳지 못하는 아비의 정실로 인해 본디 천한 씨받이의 여식으로 태어났으나, 어미를 아낀 아비 덕에 버림만은 면하게 된다. 대신 후사를 잇기 위한 명목으로 사내 ‘이강’으로 키워진다. 사내만큼이나 담대하다. 나랏일에 칼끝도 겨눌 줄 아는 날카로운 이목도 가졌다. 우연히 선을 알게 되고 그제야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억울함도 가지게 된다. 선과 함께 그의 행보를 걱정하고 노론, 정순왕후, 영조 등 여러 의견을 나누며 그를 돕는 인물이다. 서로 사모하는 마음도 잠시, 비화를 걱정한 선에 의해 잔인하게 내쳐지나, 자신을 애써 내친 선을 끝까지 돕고자 또다시 아녀자의 모습을 버린 채 사내의 삶을 선택한다.

영조(英祖) - 노론에 의해 경종의 왕세제가 되어 왕위에 오른 인물. 천한 무수리 출신의 어미로 인해 왕이 되면서는 더욱 자격지심에 휩싸이게 된다. 그래서 선에게 무리한 요구를 바라는 아비이기도 하다. 당쟁의 화합을 위해 탕평책을 실시하였다고는 하나, 자신을 왕위에 올린 노론을 쉽게 물리치지 못하는 면도 있다. 왕좌 또한 쉽게 버리지 못하는, 욕심도 많다. 그리하여 결국 노론의 이간질로 인해 하나밖에 없던 자식을 뒤주에 가두는 매정한 인물이다.

정순왕후(貞純王后) - 15세의 어린 나이로 66세의 영조와 가례를 올린 비운의 여인. 노론이 사도세자를 제거하기 위해 들인 인물이기도 하다. 어리다고 하나 결코 만만한 소녀가 아니다. 당돌한 어린 중전이다. 국혼을 올리던 그날 사도세자를 처음 마주하게 되고, 할아버지뻘인 영조와 너무나 비교되는 선으로 인해 마음을 뺏기게 된다. 선의 목을 조르기 위한 노론의 계획에도 영조의 마음을 돌려 그를 돕는다. 그러나 선의 마음이 다른 여인에게 향해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 처참히 짓밟혀버린 자신의 순정에 대한 보복에 나서게 된다. 결국 사도세자의 죽음에 가장 강력한 역할을 하게 되는 인물이다. 그러면서도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를 보며 끝끝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불쌍한 여인이다.

혜경궁 홍씨 - 사도세자와 동갑으로 노론 출신 홍봉한의 여식. 선과는 부부이긴 하나 궁궐의 부부는 장벽이 있어야 정석인 듯 쉽게 선에게 다가서지 못한다. 선이 소론으로 치우치고 있다는 아비의 말에 간자(간첩)가 되기도 하지만 노론이 선을 제거한다면 어떻게 해서건 왕세손(정조)은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사도세자의 죽음에 깊게 관여하지도, 선의 편을 들지도 못한 채 먼 훗날 정조가 보위에 오를 날을 기약한다.

서우 - 사도세자의 그림자 무사. 선을 늘 지키는 인물로서, 훗날 뒤주에 갇힌 선을 구하기 위해 홀로 금군과 싸우다 결국 죽음을 맞게 된다.

김상로 - 노론으로, 일개 신하가 대리청정하는 왕세자 선에게 낮게 엎드려 위협을 가하는, 실로 그악한 인물. 정권을 장악하여 사초를 기록하는 사관에게조차 오늘의 일을 기록하지 못하게 하는 대단한 권력자이다. 훗날 사도세자의 죽음에 김한록, 김한구, 김귀주, 신만 등과 함께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기도 한다.

홍봉한 - 사도세자의 장인. 권력을 위해 사위인 선을 버린다. 그러나 외손자인 정조만은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여식인 혜경궁 홍씨를 회유해 선의 죽음에 방관하게 만들기도 한다.

윤숙 - 우연히 길거리에서 선을 마주하게 되고, 소문으로만 듣던 미치광이가 아니라 백성을 진실로 어루만지는 선의 진면목을 알게 된 후 주군으로 모시게 된다. 선과 함께 그가 뒤주에 갇히기 전까지 많은 일을 도모하게 된다. 선이 뒤주에 갇힌 후, 궐을 장악한 노론에게 깐죽거리다 유배를 당한다.

임덕제 - 윤숙과 함께 선을 지키는 인물. 윤숙과 달리 선의 마지막 관서행에서 힘을 실어주기도 한다. 윤숙과 함께 선이 뒤주에 갇힌 후 유배형을 받게 된다.

이천보 - 노론의 인물이나, 선을 돕게 된다. 그러나 결국 영조에게 진언을 올리다 선의 결백을 알리기 위해 자결한다.

김한구 - 정순왕후의 아비. 여식을 중전으로 올리고 또 다른 세를 구축하려는 인물로서, 김상로와 함께 사도세자의 죽음에 깊이 관여한다.

이창언 - 비화의 아비. 권력에 눈이 어두운 인물이기는 하나, 선과 비화의 만남을 알게 되고 비화의 부인이 씨내리로 인해 장손을 탄생시키자 비화를 온전히 놓아준다. 잠시 잠깐 바람 앞에 촛불이기는 하나 선이 보위에 오른 후, 자신의 여식인 비화로 인해 욕심을 부려보기도 한다. 그러나 사직상서를 올리고 물러나 자신의 죄를 뉘우친다.

부인 정씨 - 이창언의 정실. 자식을 낳지 못해 씨받이를 들였으나, 비화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뜻밖에 귀한 여식을 얻게 된다. 그리해서 비화를 사내로 키운 비정한 계모이다. 그러나 훗날 우연히 비화의 운명을 무당에게 듣게 되고 지난날을 후회한다. 사내의 의복으로 인해 비화의 명이 길지 않다는 소리에 비화가 거짓초상으로 집을 나서자 색색들이 고운 빛깔로 아녀자의 의복을 장만해주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매정히 건넨 후, 비화가 집을 떠나자 통곡한다.

그 외, 민백상, 이후, 신만, 김한록, 김귀주, 영빈 이씨 등.

* 줄거리

영조 11년(1735년) 1월 21일, 첫 아들을 잃고 후사가 없던 영조에게 원자가 탄생한다. 바로 이선, 사도세자다. 영조는 선이 태어난 당일로 원자에 책봉, 다음해 3월 생후 14개월 만에 전 당파를 막론하고 모두의 지지 속에 세자로 책봉된다. 영조는 노론에 의해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영조가 왕위에 오르고 수많은 소론이 희생되었다. 정권을 장악한 노론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애썼고, 선은 대리청정을 하는 내내 그들의 과욕을 지켜보게 된다.
게장과 생감, 신임사화(辛壬士禍), 이인좌의 난(李麟佐─亂), 나주 벽서 사건(羅州壁書事件) 등, 무언가 의구심을 갖게 되는 선으로 인해 노론은 긴장하게 되고, 선은 소론과 노론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으려 애쓴다. 올바른 판단을 선택하려고 했던 선은 실로 영조가 실시하려 했던 탕평책의 조화에마저 의문을 품게 된다.
그러던 와중에 선은 미행을 나가게 된다. 한데 그 미행 길에 선은 요상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바로 석교 위의 사내다. 그 사내 자체가 요상한 것이 아니라 달빛을 받으며 하염없이 꽃잎을 뿌려대는 그 모습이 박수무당도 아니요, 선의 눈에는 요상했다. 아니, 사내의 등줄기로 흐르는 서글픔이, 비애가 꼭 자신의 것인 양 그 아픔이 전부 전해진다. 갓과 도포 차림임에도 사내의 모습은 마치 미소년을 보고 있는 듯, 생김생김이 어여뻤다. 이름이 강이었다.
그렇게 친분을 이어가게 되고, 벼슬길에 오를 나이임에도 과거 준비조차 하지 않는 강을 보며 선은 이상하게 여기기 시작한다. 원체 병약하다 소문이 자자했던 강이었으나 선이 보기엔 체구가 아담할 뿐 그 어떤 병마도 없어 보였다.
그런 사이, 노론은 더욱 긴장하게 된다. 영조가 보위를 선에게 양보하고 물러나겠다는 뜻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대리청정 시절 노론이 펼친 소론과의 전쟁에 선은 노론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게 되고, 이를 ‘전쟁 선포’라 여긴 노론은 더욱 선의 목을 조르게 된다. 예순을 넘은 영조, 그가 불미스런 일을 당하게 된다면 선이 보위를 이어 받아야 했다. 그러기 전에 무슨 수를 단단히 써야 했다.
영조, 탕평책, 노론, 소론…… 선은 그날 이후로 강과 함께 나랏일을 진중하게 나누게 된다. 강의 총명함, 강 하나로 선은 천군만마를 얻은 듯했다. 한데, 강과 마주하면 할수록 그에게 빠져드는 자신을 보며 선은 당황하게 된다. 강은 사내였다. 자신은 여인을 품은 사내였다.
그런 혼란스러움도 잠시, 선을 항상 뒤따르던 서우에게서 강의 비화를 듣게 된다. 대를 잇기 위해 들여진 씨받이로 태어나 정실부인의 욕심으로 사내로 키워진 것이었다. 강의 비화를 알게 된 선은 경악을 하게 되고, 그렇게 아녀자의 의복 한 번 갖춰보지 못한 강에게 점점 더 빠져들게 된다. 오래 전 석교 위에서 뿌려대던 꽃비는 바로 강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강의 숨겨진 이름이 바람에 흩날리는 꽃비, 즉 ‘비화’였다.
이때에 3년 전 중전을 잃은 영조에게 새 중전을 간택하라 노론이 주청을 드리게 된다. 66세의 영조에게 노론의 집안인 김한구의 여식이 15세의 어린 나이로 중전의 자리에 앉게 된다. 노론의 계획적인 국혼이었다. 15세의 어린 나이로 중전이 된 정순왕후, 그녀는 가례를 올리던 그날 처음 선을 마주하게 된다. 소문처럼 미치광이도, 어디가 모자란 이도 아니었다. 건장한 선의 모습에 정순왕후는 마음을 빼앗기게 되고…….
선을 지켜보던 정순왕후는 노론의 계략을 미루며 오히려 선을 지키려 한다. 그러던 와중에 숨겨진 비화의 정체를 알게 되고, 어미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선에게 자신의 마음을 알리게 된 정순왕후. 선에게 그 마음을 거절당한 정순왕후는 참을 수 없는 치욕을 맛보게 되고, 드디어 아비와 함께 노론의 뜻에 동참하고 만다. 선을 지키던 윤숙과 임덕제, 이천보, 그리고 사내도 되었다 여인도 되었다 했던 비화. 그들을 둘러싸고 노론 김상로, 장인 홍봉한, 김한구, 영조, 영조의 어린 계비 정순왕후 등…… 사도세자를 제거하고 지키기 위한 암투는 시작되는데…….

* 출판사 리뷰

인의충효(仁義忠孝), 비운의 왕 사도세자
[부소가 죽음을 받아들인 것이 효인가, 아닌가. 천고의 중요한 부분이다. 바라건대 의견을 들려 달라.]
시강원설서(侍講院說書) 권정침(權正?)의 『평암문집』에 수록된 1762년 4월 21일자의 서연 강의 내용이다. 사도세자는 스승에게 부소의 죽음을 물었다. 부소는 진시황의 태자로, 진시황이 죽은 후 환관에 의해 위조된 유서를 받들고 자결한 인물이다. 조고와 이사는 진시황의 둘째였던 호해를 왕위에 올리기 위해 유서를 꾸몄는데, 그 내용인즉 부소에게 자결을 명하는 것이었다. 사도세자는 왜 죽기 두 달 전 스승에게 그 같은 질문을 하였을까? 자신에게 처해질 상황을 미리 예견했던 것일까?
그런 사도세자를 영조는 왜 죽여야만 했을까? 첫 장자와 첫 세손까지 잃은 영조가, 첫 며느리와 여러 옹주, 부마까지 잃은 영조가, 그런 참사를 겪은 영조가 왜 하나밖에 남지 않은 아들을 직접 뒤주에 가둬 죽여야 했을까? 영조는 과연 무엇이 두려웠을까?
아비에 대한 효, 그리고 폭군. 사도세자는 자신의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쩌면 사도세자는 자신이 보위에 오른 뒤 몰아닥칠 피의 향연을 고변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가혹했던 정치권력의 소용돌이에서 희생된 불쌍한 왕세자가 아닌, 자신의 죽음으로 나라와 백성, 아비였던 영조에게 충효한 어진 군왕이었다.

『한중록』, 그리고 영조의 어린 계비 정순왕후
『한중록』을 보면 친정을 옹호하려 했던 혜경궁 홍씨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에 적힌 『한중록』에서조차 사도세자는 미치광이의 오명을 벗지 못했다. 권력의 소용돌이에서 희생된 사도세자. 혜경궁 홍씨가 아비인 홍봉한을 따르지 않고 그의 편에 섰더라면 역사는 다시 세워졌을지도 모른다.
영조의 어린 신부였던 정순왕후. 그녀는 15세라는 어린 나이에 66세의 영조와 가례를 올린 비운의 여인이었다. 피어보지도 못한 채 사그라져야만 했을 그녀의 운명은 얼마나 가혹했을까. 그녀는 자신보다 열 살이나 많은 장성하고 잘난 아들에게 어떤 시선을 보내야만 했을까. 정순왕후가 사도세자의 죽음에 깊이 관여한 것은 혹, 어떤 미묘한 감정의 애통함 때문은 아니었을까. 진실은 61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그녀만이 알 것이다.

* 작가 후기

역사를 추론하는 것은 참 신 나는 일이다. 하지만 단 몇 줄의 기록으로 그 시대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은 힘든 일임이 분명하다. 또한 역사는 역시 승자의 기록이다. 패자는 말이 없다. 그래, 확실히 패자는 말이 없었다. 패자의 기록은 형편없다. 잘려진 부분도 많거니와 지워진 부분도 많다. 그로 인해 실리지 못한 진실은 더욱 많을 것이며, 은폐된 기록도 많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에 와서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 역시 그 점을 간파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역사의 기록은 패자에게 후덕하지 못했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 일기』에도 사도세자의 기록은 상당 부분 지워져 있다. 2008년 봄과 여름을 거쳐 또다시 역사 자료를 수집하던 나는 그 중도에 내게 내민 사도세자의 손을 덥석 잡고 말았다. 우락부락하지 않고 뼈대가 두꺼웠으나 유난히 창백해져버린 가냘픈 흰 손은 내 가슴에 큰 낙인을 새기고도 남음이었다.
사도세자…… 사도세자는 꽤나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인물이다. 그를 생각하면 망설임 없이 하나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바로 ‘뒤주’다. 뒤주…… 물 한 모금 허락되지 않았던 좁디좁은 공간에서 죽어가야만 했던, 그것은 참으로 잔인한 형벌이 아닐 수 없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힌 사유는 불분명하다. 물론 나경언의 고변과 역모죄를 얻어 죽었다고도 하고, 광증이 심해 살인을 저질렀다고 전해지기는 하지만 사도세자의 주변 인물들이 괘씸하고 악랄하여 소설의 구도를 그리는 데 어쩌면 편파적이었을 수도 있다.
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사도세자는 성인의 자질이 빼어난 인물이었다. 그는 백성을 바라보는 어진 눈과 고충에 기울이는 귀를 가졌으며, 당파의 소용돌이에서 조심스런 입도 가졌다. 그러나 왜였을까. 아무리 광증을 비롯하여 많은 비행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자식을 그렇게 죽일 수 있는 아비는 드물 것이다. 아니, 없을 것이다. 핏줄을 중요시하는 나라에서, 철저히 유교 사상을 따르던 나라에서, 첫 장자와 첫 세손까지 잃은 영조가, 첫 며느리와 여러 옹주, 부마를 잃은 영조가, 그런 가족사의 침통함을 겪었던 영조가 왜 하나밖에 남지 않은 아들을 직접 뒤주에 가둬 죽여야 했을까. 사도세자는 혹 치열했던 당쟁의 소용돌이에서 정치적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소론과 노론, 노론에 기울어졌던 아비와 노론이 벌였던 피의 향연을 보며 소론을 안타깝게 여겼던 아들. 단지 정치적인 뜻이 맞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 나라의 왕세자에게 행해졌던 대신들의 모략 또한 무척이나 억척스러웠다. 하긴 정치적 입장이 달랐던 사도세자가 보위에 오른다면 분명 그들의 자리는 위태로웠을 것이고, 심하면 멸문지화를 당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도세자가 죽음으로까지 간 까닭은 당시 우세였던 노론의 계략이 틀림없는 듯했다.
외척 세력으로 궐을 장악했던 빙부 홍봉한 또한 그에게 등을 돌려 수수방관했다. 그러나 이들 모두를 두고 간신이라 치부할 수는 없다. 희생 없이 쓰이는 역사는 없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조는 왜 아들을 구해내지 못했을까. 아니, 구하지 않았을까. 세손(정조)도 있었다. 아들이 정신병을 앓아 제정신이 아니라면 세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사도세자는 요양을 핑계로 편히 살게 하면 될 일이었다. 영조는 무엇이 용서되지 않아 아들을 직접 죽여야 했을까……. 무엇이 또 두려웠을까.
사도세자가 죽기 전 세자의 비행을 고변한 나경언의 고변서에 무엇이 담겨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고변서는 단 몇의 대신과 영조만이 보고 불태워졌다. 한데 세자의 비행을 고변한 나경언이라는 인물과 고변서를 영조가 읽게 된 과정이 흥미롭다. 나경언이 노론 대신의 노비였다는 점, 일개 천민의 고변이 어떠한 절차도 없이 영조에게 바로 전달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서 또 하나, 사도세자는 죽기 전 스승에게 ‘부소’의 이야기를 물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세자시강원 설서로 있었던 권정침의『평암문집』에 사도세자가 죽기 전 부소의 죽음에 대해 효인가, 아닌가를 천고(千古 : 아주 오랜 세월 동안)의 중요한 부분이라며 물은 기록이 등장한다. 부소는 진시황의 아들이었는데 환관들의 계략에 의해 위조된 유서를 받고는 스스로 머리를 찧어서 자결한 인물이다. 유서에는 자결하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는 사도세자가 자신의 운명을 묻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이때부터 사도세자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부분은 참으로 소름 끼치는 부분이기도 하고, 그때의 긴박했던 상황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부분이기도 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그 어떤 해답도 쉽게 들려줄 수는 없다. 이 역시 추론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나 또한 시원하게 대답해줄 수 없다. 상상력을 가미하여 뒤주에서 여드레 동안 몹쓸 두려움에 죽어간 사도세자를 잠시 애도할 뿐. 또한 그에게로 가는 연민을 덧대 모든 이들이 적이었던, 심지어 부인(혜경궁 홍씨)까지 등을 돌렸던 그에게 벗과 같은 고운 여인을 만들어 위로해줄 뿐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었다. 단지 영조의 탕평책에 잠시 개탄하며 그 시대를 장악했던 노론의 위대한 입지에 깐죽거려볼 뿐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또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이다. 그녀는 15세의 어린 나이로 할아버지뻘인 66세의 영조와 가례를 올렸다. 정순왕후의 심정은 과연 어땠을까.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로 눈길을 돌려보았다. 아니, 사도세자를 떠올리고 처음부터 그녀는 내 눈길을 사로잡았던 인물이기도 했다.
이 여인, 연리지나 비익조 같은 사랑 한 번 해보지 못하고 평생을 구중궁궐에서 썩어갔던 이 여인. 자신보다 열 살이나 위인, 새로 생긴 장성한 아들에게 어떤 눈길을 보내야만 했을까.
아무리 권력의 승산을 보기 위해 아비 김한구와 손을 잡고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여인이라 하지만, 그렇게까지 깊이 관여한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렇다. 조금 지나친 간섭을 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내 상상력은 불순하게도 그곳에 꽂히고 말았다. 가질 수 없다면, 받아주지 않는다면 버리자. 살아서 가슴을 후벼 팔 것이라면,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면, 홀로 피는 상사화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면 말이다. 이 소설은 그런 관점으로 풀어졌다. 물론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발을 잘못 디뎌 영원히 휘말려간 그의 죽음도 큰 몫을 하였지만, 나는 정순왕후와 사도세자 사이에 곱디고운 여인네를 만들어두고 이 소설을 풀어나갔다.
이 소설에서 사도세자의 정인으로 나오는 비화는 허구의 인물이다. 비화를 제외한 모든 것들은 최대한 사실을 바탕으로 허구와 접목하여 풀어냈다. 이 소설은 딱딱하거나 어려운 역사소설이 아니다. 『왕의 여인 어을우동』과 마찬가지로 이미 혼백조차 흩어져 우주에 스며들었을 사도세자가 이 미흡한 글로 인해 잔잔한 미소나 지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간절히 껴안아본다.
그리고 자신들의 주군이었던 사도세자를 끝까지 지키려 했던 인물, 윤숙과 임덕제.
윤숙은 정조 즉위 후 재기용되어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임덕제는 일찍 졸하였는데, 정조는 대사헌까지 지낸 임덕제에게 예조 판서를 증직(贈職 : 죽은 뒤에 품계와 벼슬을 추증하던 일)하였다. 또 충헌(忠獻)이란 시호까지 내렸는데, 아경(亞卿 : 조선 시대 종2품 벼슬을 높여 이르던 말)에게 시호를 준 사례는 매우 드물었다. 정조는 임덕제의 아들을 등용하고, 그 아들이 장가듦에 있어 은전(恩典) 또한 베풀었다. 또한 사도세자 선은 아들 정조가 보위에 올라 장헌(莊獻)으로 상시(上諡 : 왕위를 이어받은 임금이 죽은 임금에게 묘호를 올리던 일)하고, 1899년에 다시 장조(莊祖)로 추존(追尊)되었다.
마지막으로, 이광좌가 영의정에 오르고 사도세자의 스승이 되었는데, 소설의 흐름상 몇 달 앞당겨 초입 부분에 넣은 점을 양해 바란다. 그리고 추사 김정희의 한시 「배소만처상(配所輓妻喪)」을 시대와 달리 당겨 쓴 점 역시 양해해주길 바란다. 사도세자를 위해 애쓴 신료들이 이 책 안의 몇뿐이겠는가. 그때의 충신들을 모두 가져오지 못한 내 짧은 학식에 그들의 섭섭함을 간곡히 사죄드린다.

<책속으로 추가>

“되었다. 그만두어라. 어디 사는 뉘 댁 자제인지 알아보아라. 욕심이 나는 놈이다. 사내치고 계집 같은 몸과 얼굴을 가졌으니 더욱 호기심이 발동을 하는구나. 하하하!” --p.48

선이 큰 숨을 내쉬더니 한지 위로 붓을 이리저리 놀렸다. 이어,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게와 감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을 예의 주시하던 강이 먼저 입을 열었다.
“게와 감이 아닙니까. 한데, 어찌하여 게는 생동감이 없으며 감은 연시로 익지 않았습니까?”
선이 강의 눈썰미에 또다시 포근히 웃어 보였다.
“네 못하는 것이 무에 있더냐? 너는 나랏일에 욕심이 없다 하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음이다. 내가 무엇을 뜻함인지 미리 간파했을 터. 조심성이더냐?” --p.121~122

“네 이름은 무엇이더냐? 혹여 잊었더냐? 내게 가르쳐 주겠더냐? 불러보고 싶으니라. 그리 부르고 싶으니라.”
이번에 강이 쓴 웃음을 머금었다.
“참으로 나쁘십니다. 그리 부르시면 이 몸은 어쩌란 말입니까. 실로 나으리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놓아주지 아니하면 그때는 어쩌시려 이러는 것입니까.”
강의 농에 기분이 좋아진 선이 들뜬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내 바지가 아주 많으니라. 그쯤이야 내어주지 아니할까. 네 이름이 무엇이냐.”
“세상에 드러나지 아니한 이야기지요.” --p.157

박 상궁이 선의 매화도를 조심스레 옮겨 받았다. 열 살이나 어린 중전이라, 세자빈 홍씨가 자신에게 비춰지는 오늘의 중전 김씨를 다시 보았다. 자칫하다간 큰 애물단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세자에게 위험한 존재가 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새파랗게 어린 어미가 자식을 바라보는 희한한 눈빛이라니. 그때 세자빈 홍씨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중전 김씨의 따가운 눈초리가 언제 적부터 날아와 있었는지 양 미간이 다 후끈거렸다. --p.240

“저하! 중전마마를, 중전마마를 가까이하지 마시옵소서.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저하께 큰 화를 미칠 것이옵니다. 중전마마께서, 마마께서…… 마마께서 저하를 바라보는 것이 신첩의 눈에 심상치 않게 비쳤나이다. 결코 어린 중전마마께 강샘을 하여 허언을 올리는 것이 아니옵니다. 신첩, 어찌 감히 이 나라의 국모이자 어마마마인 중전마마께 그처럼 불순한 마음을 가지겠사옵니다. 저하! 감히 아뢰건대 중전마마를 가까이하지 마시옵소서. --p.288

“사내도 되었다 아녀자도 되었다. 참으로 굴곡이 많은 팔자로다. 사내였으면 재상의 몫이고, 아녀자였으면 국모의 형국이니, 사내도 되었다 아녀자도 되었다 그 팔자가 뒤섞여 명을 재촉하고 말았으니…….” --p.316

“정저와(井底蛙)라, 나는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 아니, 궐 안의 모든 이들이 그러하겠지. 보았더냐? 너도나도 달려 나와 나를 보기 위해 흙먼지를 먹어가며 환호하던 백성들을 말이다. 무에 대단한 위인이라고. 이 같은 걸음이 종종이면 좋을 것을, 그 길이 머니 도성 밖 백성들에게는 소홀함이 어찌 없겠더냐? 내일이면 온천 행궁에 도착을 할 터이지. 도성을 벗어난 지도 여러 날이 되었구나!” --p.320

“민심이 동요하고 있어요. 세자의 편으로 말입니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습니까? 그저 유람이나 즐기려나 보다 하였지, 일을 이 지경으로까지 만들 줄이야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가히 우습게 여길 세자가 아니에요. 우리가 너무 얕잡아 보았어요.” --p.334~335

“저들은 내게서 모든 것을 뺏으려 함이다. 우상과 영부사의 죽음엔 미심쩍은 것이 많음이다. 나 하나가 아니라 내 주위의 모든 것을 없애려 함이야. 위협과 위박을 하고 있음이야. 그럼으로써 경고를 주고 있음이다.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영부사와 우상을 먼저 친 것이야. 수족을 쳐내겠다……. 내 언젠가는 이들의 원한 또한 기필코 갚아줄 것이다.” --p.360

“내, 내 오늘, 오늘의…… 으흐흑! 오늘의 치욕을, 치욕을 절대, 절대로, 으흐흑…… 잊지 않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갈기갈기, 갈기갈기 찢어놓은 이내 심정을, 이 아픔을 고스란히, 고스란히 돌려줄 것입니다. 엎드려 살려 달라고, 살려 달라고…… 잘못하였다고, 잘못하였다고 뼈저린 후회를, 후회를 꼭, 꼭 하게 만들 것입니다.” --p.402~403

산과 세자빈 홍씨가 창덕궁을 나서 홍봉한의 사가로 내쳐지다시피 옮겨졌다. 선이 기력이 빠져버린 육신을 일으키며 뒤주로 발을 디뎠다. 두려웠다. 덜컥 무서움도 뒤따랐다. 선이 뒤주 안으로 몸을 굽히자 영조가 급한 걸음을 옮겨 망치를 뺏어 들었다. 그러고는 뚜껑을 닫고 직접 못을 박기 시작하였다.
쿵! 쿵!
세상과 등을 지는 소리가 선의 심장으로 박혀와 뭇 칼질을 하고 있었다. 있는 힘을 다해 못질을 하던 영조가 뒤주를 붙잡으며 쓰러질 듯 위태롭게 숨을 골랐다. 그러고는 망치를 내던지고선 걸음을 돌렸다. 토악질이 나올 듯 속이 좋지 아니하였다.
“나무를 덧대어라. 죄인의 숨소리가 들릴까 두려우니 나무를 덧대어라.” --p.479~480


목차


1장 춘풍추우(春風秋雨)라, 봄바람과 가을비로구나
2장 이선(李煊), 그리고 한밤의 비화(飛花)
3장 가재는 게 편, 솔개는 매 편, 초록은 한 빛이라
4장 금란지계(金蘭之契)
5장 비화(秘話), 세상에 드러나지 아니한 이야기
6장 월하빙인(月下氷人)께 이르리니
7장 갈불음도천수(渴不飮盜泉水), 갈증이 나도 도천의 물은 마시지 않는다
8장 개떼들(鬪狗行)
9장 언약
10장 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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