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내용과 형식으로 구성된 범유진의 소설집 『자리 찾기 시간』을 읽는 일은 여행의 과정과 닮아 있다. 현실의 중력 바깥에 있는 미지의 존재―라면 얼굴, 날개 달린 개, 외계 우박 등이 자유자재로 출몰하는 소설들 안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분명 낯설고 기이한 환상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시선을 끈 풀린 풍선처럼 지상에서 영영 멀어지게 만들기 위해 고안된 것이 아니다. 작가가 만든 상상 발생 장치는 어디까지나 현실과의 접촉면에서 작동하면서, 너무 익숙해진 탓에 잊혀왔던 삶의 미세한 균열들을 다시 발견할 만한 거리 바깥으로 우리를 떠나게 한다. 표제작 「자리 찾기 시간」은 위로와 회복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사회 속에서 개인은 도구화되고 파편화된다. 어린 시절의 죄의식은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되는데, 그것은 개인의 서사를 지워내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죄의식은 성인이 된 후에도 남아, 개인의 상처를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해버린다. ‘미안하다’는 말을 죄의식에 건네는 것은 파편화된 개인을 회복시키는 방법이다. 「불러줘」에서는 개인의 존재와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따라간다. 이름이 불린다는 것은 개인이 그곳에 존재함을 확인시켜 주는 행위이다. 사회적 역할에 갇혀 개인의 이름을 잃어버리게 되는 현상은 흔하기까지 하다. 범유진의 소설은 사회적 역할과 개인의 정체성 사이에서 자기 자신을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된 사람들 곁에 다가서고 있다.
문학이라는 경이(驚異)를 기록(記錄)한다는 의미의 ‘경.기.문.학驚.記.文.學’ 시리즈는 경기문화재단 전문예술창작지원 문학 분야 선정작 시리즈이다. 26인의 선정작 시리즈 경기문학은 소설집 10권, 시 앤솔로지 1권으로 구성돼 있어 신진부터 중견까지 작가들의 개성 넘치는 특유의 문장과 스타일로 저마다 서로 다른 삶의 질곡한 순간들을 담아내고 있다. 경기문학 선정작 시리즈를 통해 동시대 문학의 다양성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