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주의적 역사소설의 시초, 『모험가 짐플리치시무스』의 후속편
17세기 독일의 그리멜스하우젠이 쓴 『모험가 짐플리치시무스』는 유럽문학에서 『돈키호테』와 동급으로 평가되기도 하며, 시대를 초월하는 사실주의적 유머 소설을 연 작품이다. 출생이 의심스러운 방랑하는 건달 소년에 대한 위선 없는 악한 소설이면서도, 황당무계하면서도 유의미한 내용이 담겨 있어 “지독히 웃기며, 남자답고 유용하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알려져 당시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둔 책이었다. 그리고 그리멜스하우젠이 『모험가 짐플리치시무스』의 후속편으로 내놓은 것이 이 책, 『사기꾼 방랑 여인 쿠라셰의 인생기』다.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악한 소설
이 책의 많은 부분에서 작가는 스페인에서 시작되어 유행한 악한 소설의 형식을 차용하고 있다. 하지만 또한 새로운 방식으로 그 도식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그 방식 중 하나는 출생의 비밀을 다루는 방법에서 명백히 표현된다. 고전적 악한 소설의 주인공은 흔히 출생이 불분명한 고아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귀족 아버지의 혼외자로 그려지며, 이 혼외자 출생 모티브는 악한 소설의 성격을 강화한다. 한편 평화 시기의 생활 영역에서 전승되는 스페인의 악한 소설과는 다르게, 전쟁을 경험한 작가는 자신의 ‘인생기’와 거의 일치시키면서 새로운 사건의 배경을 전쟁 영역에 두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은 여성, 쿠라셰
『사기꾼 방랑 여인 쿠라셰의 인생기』는 『모험가 짐플리치시무스』의 후속편이자 안티-소설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모험가 짐플리치시무스』가 소년 시절에 전쟁에 휘말려 광대, 군인, 방랑아, 은둔자로 살아간 순진한 남성의 모험적인 운명을 그렸다면, 이 책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은 여성의 운명을 그렸다. 이 여성의 운명은 여러 면에서 짐플리치시무스와는 다르게 형상화된다. 인생을 단순하게 파악하며, 첫눈에는 자연주의적이고 저속하며, 외설적인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분명하게 도덕적 견해를 고수하기도 한다.
새로운 여성상
작가 그리멜스하우젠은 책 전체에서 전쟁으로 각인된 한 여성, 인생의 종착역에 서서 환상을 깨뜨리며 터놓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여성의 어조를 유지한다. 이 방랑 여인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해 가차 없고, 자기 치부를 폭로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녀는 폭행을 피하기 위해 남장을 하고 전쟁에 끌려 들어가 거의 일생을 전쟁터에서 보냈으며 거듭 남편을 잃으면서도 모든 수단을 사용해 자기주장을 하고 좌절하지 않고 굴복하지 않으면서 살아남았다. 지극히 위험한 곳을 떠돌아다녔지만 그녀의 삶은 유쾌하고 쾌락적이었으며, 항상 자신의 결정에 따른 주체적인 삶을 살았다. 그러면서 주인공 쿠라셰는 17세기에 이미 여성 차별에 대항하며 투쟁한 현대적인 여성상을 보여 준다. 그녀는 비록 귀족 신분에서 집시 여인으로 추락했지만, 자신의 운명과 선택을 한탄하지 않고 인생 고백을 통해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결산한다. 그리고 바로 이 여인은 브레히트의 희곡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에, 귄터 그라스의 소설 『텔크테에서의 만남』에 형상화될 정도로 독일 문학사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 이 책은 클라우스 하버캄(Klaus Haberkamm)과 귄터 바이트(Gu?nther Weydt)가 편집한 『Lebensbeschreibung der Erzbetru?gerin und Landsto?rzerin Courasche』(Philipp Reclam jun. Stuttgart 2010)를 저본으로 삼아 번역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