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혈액의 순환과 두뇌의 회전이 빨라진다는 핑계로 글을 쓰면서 싸구려 양주를 입에 털어 넣곤 했다. 거기에다가 잔잔한 음악의 선율과 지독한 고독, 회사를 그만둔 낙오자로서의 막막함과 불안감이 긴 시간동안 함께 해주었다. 고된 작업이다. 하지만 어쩌랴! 내 마음속의 울림을 글로 적어내지 않으면 한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업을 이루지 못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걸…….
아마도 작가가 글을 쓰는 시간에 있어서의 감정과 환경은 개개인이 조금씩 다를 것이다. 양주 대신 맑은 생수를, 잔잔한 음악 대신 창문 밖에서 흘러나오는 귀뚜라미들의 나지막한 합창소리로 위로 받으며 불안감 대신 행복만을 느낄 수도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다양한 방법으로 글을 쓰고 있을 것이다. 그 방법들에 있어서 정답은 없다.
그렇다. 생각해 보면 살아가는 방식에도 어쩌면 정답은 없는 것이다. 이 세상에 완전히 똑같은 사람은 없으며 오직 다름만이 존재할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와 미디어 그리고 불완전한 이들이 ‘적절한 때’라는 단어와 함께 학업과 결혼, 출산, 그 외의 무수한 사회 규칙들을 규정하고, 그 틀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명시적 또는 암묵적으로 ‘불쌍한 사람’ 또는 ‘불행한 사람’이라고 정의를 내린다. 그리고 대중들은 이내 그 체계에서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친다. 근본적인 이유는 모르지만 단지 그렇게 해야 한다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또한, 나 자신에 대해서 평가하기 앞서 타인, 특히 낯선 이들을 보고는 심리학 또는 통찰력이라는 이름의 가면을 쓴 채, 착한 사람 또는 나쁜 사람, 가까이 지내도 될 사람 또는 이상한 사람이라는 식으로 쉽사리 그들을 판단하고 분류한다.
나로서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 턱이 없다. 그저 이 책을 읽어 나가면서 우리 곁에 있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 혹은 조금 부족하거나 삼류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쉽게 평가하지는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 뿐이다. 스쳐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은 감정과 경험의 티끌들이 쌓여서 만들어낸 DNA처럼 복잡한 결과물인데다가, 쓸데없이 계산적인 잣대는 나 자신에게 독이 될 뿐이다.
우린 그저 고독을 이겨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가엾은 존재이기에, 삶에 어설프며 소외된 오리들이 수면 밑에서 쉴 새 없이 발질하는 이야기를 편견 없이 읽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