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걸음 끝에 묻어나는 두려움을 지우고 싶었다.
내 아픔은 사실 별 게 아니라는 두려움을.
저자는 순례길 대신 도시에서든 여행지에서든 걷는 일에만 집중하며 스쳐지나는 생각을 기록했다. 그렇게 책에 담긴 세 편의 이야기는 길 위에서 쓰였다.
걷는 행위에는 기묘한 면이 있다. 온갖 잡생각들을 끌어안고 지치고 힘들 때에도 쉬지 않고 발을 질질 끌며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머리가 정리된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알게 된다. 몸은 지치고 힘든데 결국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세 편의 이야기에는 각자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담겨있다. 걷기를 두려워하면서도 걷는 사람도 있고 더는 걸을 수 없어 멈춰 선 이도 있다. 첫 단편 카메라의 시선의 주인공은 타인에 시선에 지나치게 신경 쓰며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을 찾아 헤맨다. 감정 진열장에는 길을 걷는 일이 두려워 집에만 틀어박힌 인물이 나온다. 도시 여행자에서 애인과 이별한 화자는 그녀가 떠난 이유를 찾기 위해 도시를 걷는다.
걸음 끝에는 선택들이 터져 나온다. 걸으며 지워지지 않고 남은 내면 깊은 곳의 생각들을 마주 보게 되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인물들의 선택을 보는 일은 분명 흥미로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