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란 시절과 전쟁 이후 궁핍했던 유년 시절의 기억과 점심을 굶어가며 했던 통학과 월남전 참전까지, 이후 사업과 외국을 누비는 무역까지 하였으니 쓰고 싶은 얘기가 어찌 차고 넘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침, 국가보훈처에서 공모한 ‘따뜻한 보훈 수기’공모에 6·25때 전사한 삼촌의 얘기를 출품해서 상을 받으며 글로 표현하는 일에 자신감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특히, 남다른 감회로 적어나간 어머니를 그리는 시인의 절절한 마음은 그 마음이 동심으로 녹아들어 읽는 이로 하여금 보다 큰 감동을 안겨준다.
혜암아동문학교실에서 늦은 나이에 시작한 동시 쓰기. 1년 만에 《대구문학》을 통해 ‘동시’로 등단을 하였으니, 이제는 쓰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둘 풀어 써내는 일만 남았을 것이다.
동시 동네로 오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 만큼 갈 길이 바쁘다고 할 것이다.
서평
“그동안 써온 시입니다. 좀 봐주세요.” 차곡차곡 쌓아온 시편들로 봉투가 두툼했다.
그랬다, 시인은 아동문학을 공부하기 전에 이미 시인이었다.
지금도 신춘문예 응모 시기가 되면 가슴 뛰는 문학청년이 된다. 동시를 배우니 머리에는 쏙쏙 들어오기는 하는데 상상력이 따라가지 못해 힘이 든다고 하소연하였다. 그 상상력을 메워주는 손자 손녀가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그러는 사이 손자 손녀와 동시를 같이하는 즐거움이 늘었다고 ‘동시’쓰기를 참 잘했다며 손자 손녀 자랑을 슬쩍 끼워 넣는다.
시인은 쓰지 않고는 못 배겼다. 하긴 6·25 피란 시절과 전쟁 이후 궁핍했던 유년 시절의 기억과 점심을 굶어가며 했던 통학과정에 월남전 참전까지, 이후 외국을 누비며 무역까지 하였으니 쓰고 싶은 얘기가 어찌 차고 넘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국가보훈처에서 공모한 ‘따뜻한 보훈 수기’공모에 6·25때 전사한 삼촌의 얘기를 출품해서 상을 받기도 하였다.
특히, 지식인이었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에서는 남다른 감회에 젖어드는 것을 보며 어머니의 영향을 참 잘 받았다는 생각이 들고는 했었다.
1년 과정인 혜암아동문학교실을 16기로 수료하고 《대구문학》을 통해 ‘동시’로 등단을 하였으니 이제는 쓰고 싶은 것을 하나 둘 풀어 써내는 일만 남았으리라.
‘어린이 마음으로 어른이 쓰는 시’를 ‘동시’라고 한다고 한다. 그래서 시인의 생물학적 나이가 어떻게 됐든 아이의 마음으로 적어나간 것을 동시라 한다. 동시에서 말하는 아이의 마음을 동심(童心)이라 한다. 동심은 처음 세상에 나서 가지게 되는 마음이라 할 수 있는데, 그 밑바탕에는 어머니가 자리하고 있다. 티끌 없는 동심이 자라면서 어른에게 억눌리고 제어되고 차츰 마음 아래로 가라앉아 어느 순간이 되면 건져 올리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그러나 어머니를 떠올리는 순간 마음 아래 가라앉아 있던 동심은 거침없이 일어선다. 시인의 동심인 어머니를 따라가 보자.
엄마, 아코디언 사왔어.
그래, 잘 샀다.
손풍금 소리 좋지?
그래, 좋다. 손풍금 한번 해봐라, 얼마나 배웠나 보자.
갓 배워 어설펐던 ‘찔레꽃’ 노래
좋아하시던 엄마
아코디언 말고
손풍금이라 부르자 하시던 엄마
-〈손풍금〉전문
동심은 엄마 따라 나이를 먹어가지만 엄마한테 자랑하고 싶고, 그 자랑을 보고 싶은 엄마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왜? 엄마니까.
퇴근해서
집에 돌아와
사뭇 두리번거리네.
이상하다.
우리 엄마
방문 꼭 닫고
내다보지도 않고
“엄마, 더운데 문 열어 놓고 있으소. 나와가 수박 잡수소.
엄마 좋아하는 가수 나왔구마.”
백수 잔치 석 달 남겨 놓고
어디 가셨나, 우리 엄마
-〈엄마 생각〉전문
엄마는 항상 곁에 있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왜? 엄마니까.
엄마는 좋겠네요,
소원 이루었으니
하느님, 저를 잠결에 살짝 데려 가소서, 하시더니
옆에 있던 아들도 모르게 조용히 가셨으니
소원 이루셨네요,
추한 모습 보이기 싫다 하시며
가시기 직전까지 혼자 화장실 다녀오시더니
소원 이루셨네요,
도시락은 못 싸줘도 육남매 공부 다 시키셨으니
우리 엄마
소원 이루셨네요,
가고 나면
누가 내 기도 해 주겠노, 하시더니
아들, 딸 백일기도 드리니
그 소원도 이루셨네요,
소원 다 이루셨으니
편히 쉬세요, 엄마
-〈엄마 소원〉전문
우리 엄마 소원 다 이루셨으면 하는 게 소원이었다. 어려운 시절에 도시락은 못 싸 줘도 학교 마치게 하는 것도 소원이었던 엄마. 그 소원 덕분에 이만큼 살게 되었으니, “이제 편히 쉬세요, 엄마!”
시인 연배의 동심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가 어린 시절 가난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 시절 대부분 피할 수 없었던 가난이었다. 시인은 그 가난을 엄마와 연관시켜 풀어 놓았다. 엄마와 같이 살아왔기 때문이다. 가난과 보릿고개가 엄마와 동의어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엄마는 푸른 보리밭처럼 희망을 키워내는 강인한 엄마였다.
가난이 부끄러워 꼭꼭 숨기고
고생이 부끄러워 힘들다 말 못하고
배고픔도 부끄러워 드러내지 못했다.
난로 위 도시락이 부러워
보기도 싫어
운동장으로 피하던 그때 이야기
이제는 배고프지도 힘들지도 않으니
말해도 되겠다.
백수하신 엄마도 하늘나라 가셨으니
말해도 되겠다.
-〈이제 말해도 되겠다〉전문
엄마 앞에서 차마 말 못했던 부끄러워했던 마음을 이제는 말해도 되겠다. 왜? 엄마가 하늘나라로 가셨으니, 말 안 해도 속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하늘나라로 가셨으니.
내가 중학생 때
우리 반 친구 녀석
“니, 점심때 짜장면 묵었재?”
“그래 묵었다, 와, 임마”
먹어본 적도 없는 짜장면을
얼떨결에 먹었다고 해버렸지요.
‘임마’는 왜 못나게 튀어 나와 버렸는지……
도시락도 호사이던 내게
하얀 면발에 까만 양념 부어주던
그것은
지금 생각해보니
그리운 슬픔입니다.
-〈짜장면〉전문
아랫배에 힘을 잔뜩 주고 큰소리로 대답을 했었겠다. 기죽지 않기 위해, 안 먹은 걸 들키지 않으려고 ‘와, 임마’라며 눈에도 힘을 주었겠다. ‘그리운 슬픔으로’ 남은 장면이 〈짜장면〉으로 살아났다.
〈동심(童心), 동심(同心)〉_권영욱 동시인 해설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