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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 여덟 개 잘린 구미호가 다녀갔어 (양장)

꼬리 여덟 개 잘린 구미호가 다녀갔어 (양장)

  • 김미희
  • |
  • 키위북스
  • |
  • 2020-06-25 출간
  • |
  • 40페이지
  • |
  • 214 X 270 mm
  • |
  • ISBN 9791185173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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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여러분의 털외투,
고향이 어디인지 아시나요?

고요한 산속에 살던 구미호에게 도시는 너무 복잡했습니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털가죽으로 만든 옷이나 장신구를 걸치고 있어서, 무작정 냄새를 맡으며 여기저기 헤매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골목에서 라쿤의 혼령을 만납니다. 구미호의 신통력을 알고 있는 라쿤은 구미호에게 제 털가죽 찾는 것을 도와달라고 부탁합니다.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 라쿤은 배를 타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곳이 어디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태어나자마자 냄새나고 비좁은 우리에 갇혀 살았다고 합니다. 라쿤이 지내던 곳에는 냄새나는 우리가 빼곡했습니다. 수많은 동물들이 비좁은 우리에 갇혀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에 갇힌 동물들은 끙끙 앓거나 쿵쿵 몸을 부딪치거나 하염없이 뱅글뱅글 돌거나 울부짖었습니다. 그렇게 사계절을 지내던 어느 날, 먹이를 주던 사람이 철창문을 열고 인정사정없이 라쿤의 털가죽을 벗겼습니다. 그러니까 라쿤은 혼령이 되어 사람들이 배에다 옮겨 실은 자기 털가죽을 따라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라쿤의 고향은 사람들이 털가죽을 얻으려고 만든 작고 더러운 철창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모피’라고 부르지만
옷이 되기 전에는 모두 ‘생명’입니다

몇 년 전까지 모자에 라쿤털이 달린 점퍼를 입고 다닌 작가는 어느 날 우연히 사진 한 장을 보게 되었습니다. 몸집이 꽉 차도록 비좁은 우리에 갇힌 동물의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듬성듬성 남은 털 사이로 드러난 살갗은 발갛게 짓물러 있고 새까만 눈동자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보였습니다. 사진 아래는 ‘라쿤’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점퍼를 구입할 때는 라쿤털이 정확히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별 생각 없이 따뜻해 보이고 디자인이 예뻐서 샀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사진을 보고 나서는 라쿤털이 달린 점퍼가 예뻐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파 보였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그렇게 라쿤에 대한 미안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온갖 털가죽 냄새가 새어 나오는 커다란 모피백화점으로 들어간 라쿤은 건물에 가득한 털가죽으로 만든 옷과 장신구를 보며 풀이 죽어 중얼거립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털가죽을 좋아할까요? 동물이 되고 싶은 걸까요?’ 다시 숲으로 향하면서 구미호는 말합니다. ‘더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아서 구미호로 남기로 했다.’ 라쿤과 구미호가 남긴 말은 만물의 영장을 자처하며 자연을 휘두르는 ‘사람다움’에 대해 돌아보게 됩니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무분별하게 사육되고 희생되는 동물들, 우리 사람들은 ‘모피’라고 부르지만 옷이 되기 전에는 모두 ‘생명’입니다. 구미호가 다녀간 후, 우리는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도서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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