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황재형의 그림이 부생육기의 운치를 더하다
― 심복의 『부생육기』
달아실출판사에서 박황재형 화가의 그림 28점과 부생육기 ‘원문’을 실은 새로운 형태의 『부생육기』를 출간했다.
전 세계인의 심금을 울린, 죽은 아내를 위한 사부곡(思婦曲)
중국 고전 수필 문학의 최고봉이라고 일컬어지는 『부생육기浮生六記』는 청나라 말기 문인이자 화가였던 심복이 직접 겪었던 경험들을 사실적으로 서술한 자서전적 산문이다.
“심복은 사랑, 정취情趣, 슬픔, 방랑, 유구琉球, 양생 등 여섯 가지 키워드로 지나간 시간들을 재구성하고 기억을 완성해나간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단순히 시간적 흐름을 따라 서술되는 것이 아니라 여섯 가지 다른 시선에 의해 서술되는 것이 『부생육기』의 특징”이라며 부생육기를 번역한 김지선 선생은 ‘역자의 말’에서 또한 이렇게 이야기한다.
“청춘 남녀의 애정이 아니라 부부의 사랑을 서술한 작품은 여성 문학에서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전통 시기 규방은 늘 휘장 아래에 감추어진 비밀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심복은 그 틀을 깨고 부부가 사랑하며 살았던 규방 안 일상을 담백하게 묘사하였다. (…) 『부생육기』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정서는 아내에 대한 심복의 사랑이다. 진운은 한평생 심복에게 가장 강렬한 영감을 불어넣어준 존재였다. 하지만 애정이 깊었던 만큼 그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진운은 시부모님으로부터 오해를 받았고 미움을 사서 쫓겨났고 끝내 병을 얻게 되어 죽었다. 마음으로는 절규하고 있지만, 심복은 아내의 죽음을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 봄날의 꿈결처럼 끝내 허무하게 사라져버릴 인생이지만, 『부생육기』는 우리에게 원의 원만함을 체현하며 살아가라고 위로해준다. 번역하는 동안 충분히 행복하였고, 그 행복한 감정이 독자 여러분의 독서 과정에 스며들기를 바랄 뿐이다. 마음속 낙원을 찾아 스스로 아픈 마음을 치유하여 결국에는 아무도 아프지 않는 세상을 꿈꿔본다.”
임어당이 중국 문학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여성이라고 찬탄한 여자
심복은 18세기 말 청나라에서 살던 평범한 남자다. 과거에도 떨어지고 그나마 관청의 작은 일을 맡기도 했지만 영 마뜩잖고 이런저런 사업도 벌여봤지만 신통찮다. 시문을 쓰고 그림도 그렸다지만 문인으로도 화가로도 알려지지 않을 걸 보면 그 또한 그저 그러했던 모양이다. 그런 심복이 마침내 전 세계 유명 인사가 된 것은 오직 그의 아내 진운 덕분이다. 마흔에 요절한 아내 진운을 그리워하며 쓴 ‘부생육기’가 공전의 히트를 친 것이다. 두 사람의 달콤쌉쌀한 사랑 이야기를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너무도 솔직하게 써내려간 덕분일까, 그의 글을 읽다보면, 세상에 이런 여자를 누군들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싶다. 심복의 아내 진운, 임어당이 왜 입이 마르도록 그녀를 칭찬했는지 독자들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박황재형의 그림이 부생육기의 운치를 더하다
강원도 구룡령 산채에서 그림과 조각, 문필 작업을 하고 있는 박황재형 선생은 수묵담채화 분야의 거장 반열에 올라섰다는 평가와 함께 전서와 초서를 융합한 글씨체의 서예가로서도 인정을 받고 있다. 그림, 서예, 조각 등 그야말로 다방면에 걸친 예술가로서의 천재적 면모를 과시하던 박황재형 선생은 어느 날 홀연히 도시의 삶을 뒤로하고 강원도 구룡령으로 ‘행복한 망명’을 했는데, 예술 본연의 모습을 추구하는 예술혼을 찾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넘거나 넘어가기를 멈춘 사람’이라는 뜻의 별호를 가진 지월당(止越堂) 박황재형 선생은 이후 지난 8년여 시간을 구룡령에서 사유와 작품에 몰두하고 있다.
그런 박황재형 선생을 만나 몇 개월의 설득 끝에 부생육기를 그리겠다는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몇 개월이 지나 마침내 박황재형의 부생육기 그림 28점이 완성되었다. 부생육기가 박황재형 선생의 그림을 통해 세상에서 유일한 부생육기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