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혼(群婚)에서 비즈니스적 결혼까지
시대에 따라 진화하다
“결혼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이 책의 내용은 결혼의 역사부터 시작된다. 우리 인류에게 최초의 결혼이 언제였는지 불분명하지만 수렵시대에 가족을 구성하는 군혼을 결혼의 시초로 본다. 지금은 이해할 수 없지만 군혼에서는 가족을 비롯해 집단구성원끼리 자유로운 성관계가 허용되었다. 이후 농업혁명을 거치며 혈족 간 성관계를 금하고 남녀가 한 사람의 배우자를 선택하는 대우혼(對偶婚)이 자리 잡았고, 다시 일부일처제로 진화했다. 하지만 농업혁명, 계급사회, 부계사회로의 전환, 여성의 지휘하락 등의 변화를 거치며 결혼을 둘러싼 소유욕과 질투, 비즈니스적인 이해관계가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낭만적인 사랑과 결혼의 만남
결혼의 조건이 바뀌다
남녀 당사자들 간의 애정이 결혼조건의 우선순위가 되면서 연애와 사랑, 그리고 결혼 문화에 많은 것이 달라졌다. 특히, 계몽주의가 확산된 17-18세기 즈음에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 개인의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이 붐을 이루면서 사람들에게 낭만적인 사랑이 삶과 결혼의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되었다. 가문 간 비즈니스였던 결혼이 사랑을 전제로 한 개인 간 약속으로 변화되면서 결혼의 당사자들이 결혼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데이트’라는 연애문화를 창조했고, 페미니즘 운동은 남성과 여성 간 사랑의 역학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쾌락을 즐기는 인간
섹스와 결혼의 충돌
저자는 호모사피엔스, 즉 현생 인류는 ‘가장 특이하게 섹스하는 동물’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동물은 섹스의 목적이 ‘생식’인데 반해, 호모사피엔스는 섹스의 주된 동기가 쾌락이라는 것이다. 또한 다른 동물에게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금기'와 '수치심'이 인간의 성생활에는 존재한다. 이처럼 섹스에 대한 쾌락적 욕구가 강한 인간이 사회규범 때문에 도덕적인 성생활과 일부일처제를 지키고 살기는 쉽지 않은 일이며, 결혼생활에서 충돌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저자는 일부일처제를 반대하거나 정상적인 부부들의 성생활을 부정할 의도가 없음을 밝히고 있다. 저자는 진화심리학, 에로티즘, 폴리아모리 등의 개념을 소개하며 낭만적인 사랑, 정열적인 섹스, 가정의 안정감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결혼이라는 '올인원 패키지'로 해결해야 한다는 믿음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것인지에 대해 말한다.
현대인의 사랑, 연애, 결혼
새로운 문화를 만들다
사랑도 문화다. 저자는 사랑과 연애, 심지어 결혼까지도 시대의 흐름에 맞물려 돌아가는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자본주의가 '사랑한다면 소비하라'는 원칙하에 인간을 상품으로 전락시키며 사랑의 본질을 퇴색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디어는 사랑의 긍정성만을 편향적으로 다루고 범람하는 낭만의 합성 이미지는 '낭만 인플레이션'을 낳아 사람들로 하여금 사랑에 대해 터무니없는 환상을 갖게 만든다. 또한 러브스타그램, 온라인 데이팅과 같은 디지털 사랑 양식이 생겨나면서 사랑과 연애와 결혼에 관한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고 있다고 밝힌다. 만남과 연애의 중간 단계인 '썸'도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던 현대인의 사랑 방식이다. 기성세대 입장에서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저자는 이러한 문화적 변화가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말한다.
비혼, 동거, 이혼, 졸혼, 로봇과의 사랑, 가상현실 사랑
결혼의 종말이 다가오다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는 ‘2030년쯤이면 결혼제도가 사라진다.’고 예측하며 ‘이혼이 간편해지고 90%가 동거로 바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이제 결혼은 고체가 아닌 액체의 속성으로 변했다며 결혼의 종말을 예고한다. 여성의 지위 향상, 경제적 불안, 개인주의 확산 등으로 지금의 결혼방식은 구시대의 유물처럼 변해가고 있다. 특히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결혼 대신 동거를 선택하고, 로봇과 사랑을 나누고, 배우자를 임대하는 시대까지 예고하며 결혼의 미래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과연 결혼의 종말은 디스토피아일까? 분명한 것은 과거의 사람들이 오늘날 사랑과 연애와 섹스와 결혼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미래의 후손들은 현재의 우리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사랑하고 연애하고 섹스하고 불륜을 저지르며 잘 살아갈 것이라는 점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제는 그 누구도 결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사실을 그럭저럭 받아들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