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어떻게 과노동 시대로 들어섰는가?”
가정도 직장도 일터가 된 현실을 고발하다
이 책의 저자인 일본을 대표하는 경제학자이자 노동문제 전문가 모리오카 고지는 세계의 노동시간에 주목한다. 1980년대 초를 기점으로, 이전까지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던 노동시간이 다시금 증가하기 시작한 점에 눈을 돌린 것이다. 예컨대 미국의 연간 노동시간을 살펴보면, 1969년에는 1,786시간이었던 것이 1989년 조사결과에서는 1,949시간으로 163시간이나 늘어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유럽 역시 마찬가지다. 유럽 내에서 노동시간이 짧기로 알려진 독일과 프랑스도 1980년대 초부터 21세기 초에 걸쳐 약하기는 하지만 노동시간이 증대되는 흐름을 보였다.
세계가 과노동 시대로 들어섰음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2002년 1월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일본어 ‘과로사’를 의미하는 ‘karoshi’라는 단어가 새로 등재되었다. 한국 못지않게 장시간 노동으로 악명 높은 일본의 노동현실이 드러남과 동시에, 과노동과 관련한 문제가 단지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 퍼진 일반적인 현상임을 시사한다.
이렇듯 저자는 세계 곳곳에서 ‘일본인이 무색할 만큼’ 맹렬하게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이어서 완만하고 착실하게 이루어져 온 시간 단축의 흐름이 역전해 노동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한 이유로, 크게 네 가지를 꼽는다. ‘글로벌 자본주의’, ‘정보자본주의’, ‘소비자본주의’, ‘프리타 자본주의’가 그것이며, 이 책에서는 각각 한 장(章)을 할애해 현대사회의 과노동 요인을 차례로 규명한다. 먼저 1장 ‘세계로 퍼지는 과노동’에서는 앞서 소개한 세계 노동시간의 변화 추이를 각종 데이터를 근거로 꼼꼼하게 분석하고, 세계화가 초래하는 글로벌 경쟁에 관해서도 언급한다. 2장 ‘가정도 직장도 일터가 되었다’에서는 정보통신기술이 현대 기업과 노동에 미치는 충격에 대해 살핀다. 우리 삶에 침투한 정보도구가 노동환경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피부에 와닿는 사례를 들어 고발한다. 3장 ‘소비가 바꾸는 고용과 노동’에서는 생활수준이 향상하고 매스컴이 발달한 대중소비사회에서 ‘소비 욕구’가 과노동의 새로운 요인을 창출하고 있음을 밝힌다. 4장 ‘노동의 규제완화와 양극화’에서는 고용 형태의 다양화에 따른 노동시간의 양극화, 특히 30대 남성을 중심으로 한 과노동을 고찰한다. 5장 ‘노동기준과 라이프스타일’에서는 일과 생활의 균형을 위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며, 과노동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출구를 모색한다.
‘죽도록 일하는’ 대한민국,
‘죽도록 일하는 사회’에 제동을 걸 수 있을까?
저자의 이름은 한국 독자에게도 익숙하다. 기업과 사회를 연구하며 노동문제에 관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높여 온 그는 학문 밖의 세계에 자리한 실천적 영역에 활발하게 개입하는 몇 안 되는 학자다. 2012년 10월 ‘노동시간 단축과 고용 창출’이라는 주제로 서울에서 열린 국제 심포지엄에 참가해 일본 사례를 발표했고, 2015년 9월 ‘과로사 방지법’을 주제로 서울에서 초청 강연을 했다. 2017년 11월에는 서울에서 열린 ‘과로사 예방 센터’ 개소식에 초대받기도 했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을 통해, 일본에서 말하는 과노동의 기준은 법정 노동시간이 아니라 ‘죽도록 일한다’는 말 속의 ‘죽음’, 요컨대 ‘과로사’를 가리킨다고 말한다. 이어서 과노동이 초래하는 죽음이야말로 심각한 사회문제이고, 정부 차원에서 연구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점을 호소한다.
한국은 오는 7월부터 종업원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한다. 문재인 정부는 연간 노동시간을 2,069시간에서 1,800시간대로 줄이는 것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아 추진했고, 이번 법 개정은 그 결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시행을 앞두고 기대와 우려가 뒤섞인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법은 늘 현실의 변화를 뒤늦게 쫓아간다. 힘들지만 가야 할 길이다. 불명예스럽게도 한국은 멕시코와 함께 OECD 국가 중 최장 노동시간을 기록하고 있으며, 현장 곳곳에서는 업계를 막론하고 노동자의 비명이 끊이지 않는다. 출퇴근길 붐비는 대중교통 안, 직장인의 머릿속은 안녕하지 못하다. 기술의 진보로 ‘언제, 어디서나’ 네트워크 환경에 접속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춘 만큼 ‘언제, 어디에서’ 업무 관련 알람이 날아들지 모른다.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주문과 동시에 송장번호가 찍힌 메시지를 받고, 다음 날 울리는 초인종 소리를 듣는다. 클릭 한 번이면 ‘당일 배송’이 당연시된 택배, 새벽이건 밤늦게건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24시간 편의점 등등. 누군가의 삶이 편리해지는 만큼, 누군가의 노동환경은 악화된다. 눈뜬 순간부터 잠들기 전까지 일하는 우리는, ‘더욱 오래, 더욱 열심히’ 일할 것을 강요받는 사회에 살고 있다.
이 책은 행간 마디마디에 ‘장시간 노동은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실어 보낸다.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며, ‘삶을 갉아먹는 장시간 노동’의 배경과 원인, 그리고 해결 방안을 함께 모색할 수 있다. 아울러 스스로 일하는 방식(일을 시키는 방식)을 되돌아보고, 일과 생활의 균형을 찾기 위한 귀중한 실마리를 발견하게 되리라.